◈타오르되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라 출3:1~5
◑ 서 론
♥시작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오늘 좋은 날 하나님 앞에 기도, 찬송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하는 시간되게
성령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 열망이
나타나는 시간되게 하소서...
♥감사할 때, 감사 온다.
우리는 감사할 조건이 새로 생겨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이 감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감사드린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 구원하시고 이제까지 인도해 주시고,
앞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순이야!”부르면 순이가 오듯이
감사의 고백이 입술에 넘칠 때.. 감사의 일이 (더) 온다.
♥은혜 받아 미인 되자
20세기의 미인관 -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기준이었다.
21세기는 '인상 미인관' - 평안, 천사의 이미지를 가진 것이 기준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혜로 마음에 평안을 채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넘쳐나게 하라. 그러면 모두 미남, 미인 된다.
◑ 본 론
불꽃은 꺼진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사는 인생이
진짜 인생이요, 복 받은 인생, 은혜를 받은 인생이다.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같은 인생을 살려면
모세가 광야에서, 불꽃 가운데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듯이,
성령의 불을 체험하며, 자기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처음 태어남은 운명적 출생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첫 번째는, 운명적으로 태어난다. 어머니 태에서 태어나는 것은 운명이다.
그렇게 태어난 인생은 희로애락, 생로병사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운명으로 사는 인생은 ~ 운명의 굴레에서 사라져버린다.
즉 열정, 꿈이 불타오르나, 그 불꽃이 쉬 꺼져버린다.
크리스천은 운명으로 태어나, 운명으로 끝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운명을 극복하고, 졸업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운명 속에 사는 자는, 자기 인생을‘나그네 길’이라고 말한다.
아무 삶의 의미를 못 깨닫고, 허무함이 극치를 이루기 때문이다.
모세를 볼 때, 80세 까지는 허무하게 나그네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첫아들 이름을 게르솜. ‘나그네가 되었다’고 지었다. 출18:3)
하나님을 알았지만, 피상적으로 알았고, 아직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 했다.
▲두 번째는, 중생重生으로 태어난다. (중생 - 다시, 재차 태어난다는 뜻)
중생으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삶의 이유, 목적, 근원을 분명히 깨닫는다.
그래서 운명의 굴레에 끝나지 않고, 새로운 영원한 삶(중생한 삶)을 살아간다.
중생의 체험이 사명자를 만든다.
사명자가 되면, 자기 삶의 목적, 이유, 방향을 분명히 정해놓고 걸어간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요, 항상 궁극적 목적지인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이 된다.
모세는, 40세까지는 자신의 혈기에 불탔고,
80세까지 황량한 광야에서 양의 꼴을 먹이며 방황하던 운명적 인생이었다.
그런데 호렙 산에서 중생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을 때
비로소 자기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었다.
▲왜 가시떨기 나무에 하나님의 불꽃이 임했을까?
가시나무 떨기의 특징은
1> 볼품이 없다.
2> 줏대가 없다.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지 않음)
3> 인정이 없다. (가시가 많다)
4> 이기적이다. (옆으로 뿌리를 내리므로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함)
5> 그늘이 없다.
광야에는 수분이 절대 부족하므로 크고 훌륭한 나무는 볼 수 없다.
그런 무성한 나무는 오아시스 근처에나 있다.
광야에서 바짝 말라비틀어진 가시나무를 보면서
평소에 모세는, 늙고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거기에 투영했을 것이다.
쓸데없고, 가치도 없고, 남에게 상처주고 고약한 존재가 바로
가시떨기나무 같은 자기 자신의 현실이었다.
▲어떤 나무에 불꽃이 임하는가?
광야를 거쳐야 한다.
호렙의 뜻은, 말라 있다. 건조하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자기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아무런 일을 할 능력이 없다>라는
자신의 한계성을 고백한다.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 3년을 보냈다. 메마른 떨기나무가 되는 과정이다.
기독교는 自신감의 종교가 아니라, 主신감의 종교이다.
자신감을 갖고 나가면... 종종 타인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하려면, 먼저 깨어짐이 있어야 한다.
생명에 가까울수록, 부드럽고 연하다. (갓난아이는 부드럽고 곱다.)
마음의 잘못된 습관. 죄의 경향성. 나의 이기심 등이 다 깨어지고
내가 말라비틀어진, 물이 갈급한 가시나무처럼 되어야 한다.
그 때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내게 임하여 주신다.
▲불에 타야 된다.
쓰임 받는 성도는, 성령의 불꽃으로 타야 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했으며
사도행전 1장에 마가의 다락방에도 성령이 임했다.
오직 성령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하며
억지로 하는 자는 불평을 하게 된다.
사명은 의무감이 아니라,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성령이 임하면 주님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불을 통과해야 빛이 난다.
일본국왕이 도자기가 유명한 마을에 가서, 공장을 관람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모양, 크기, 재료가 동일하게 만든 두개의 도자기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도자기공에게 하나는 빛이 나고, 다른 하나는 빛이 왜 안 나는지 물었다.
불속에 들어갔다 나온 도자기가 비로소 빛이 나는 것이다.
성령의 불꽃에 타오르는 인생이 될 때, 빛나는 인생이 되고,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사명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명자는, 내가 걸어가면서, 그 길을 만들어서 나아간다.
사명 못 받은 자, 은혜 못 받은 자, 아직 중생의 체험이 불확실한 자는
준비된 다음에 해야지....
애들이 좀 크면 해야지....
은혜로 뜨거워지면 해야지....
불타는 성령을 받은 다음에 해야지..등
여러 가지 핑계가 많다.
그러나 사명 받은 자는,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준비 안 된 모습이라도, 꾸준히 걸어간다.
가는 길에 서서히 다듬어 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온전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명자는 아가페 사랑으로 섬긴다.
모세는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 주소서
라는 진정한 사명의식이 있었고, 백성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오프라 윈프리의 저서「이것이 사명이다」에 보면,
1>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이 사명이다.
2> 남보다 고통이 많은 것도 사명이다
3> 남보다 많이 가슴 설레는 꿈을 가진 것도 사명이다.
4> 남보다 많은 부담감을 가진·것도 사명이다. 라고 했다.
진실하게 사명을 추구하다 보면
인생의 모든 면이 더욱 불타오르게 된다.
그런데 그 불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 더 활활 타오른다.
▲성령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인생은 - 사라지지 않는 불꽃의 인생이 된다.
하나님의 불꽃이 임하니까, 유용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이 모습 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불꽃이 임해서, 진짜 은혜를 베푸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자기 육체가 시들어 가는 것을 보고 절망한다.
그러나 성령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인생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겉사람은 점점 쇠약해져도, 속사람은 청년들보다 더 젊고 활력적이다.
그래서 갱년기와 늙어 감을 한탄할 겨를도 없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운명이 아니라, 사명으로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운명의 굴레에서 졸업하고, 생로병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목숨을 내어놓는 사명자가 되어서
죽음, 어두움, 죄악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모세와 바울같이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 역사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게 하소서
이기심, 내 능력, 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소멸되게 하시고
벼랑 끝에 선 자,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는 심정이 되게 하시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걸어갈지라도
타오르는 성령의 불꽃으로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명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8.01.15. 인터넷 설교 스크랩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중생한다'는 신학적 입장을 가진 교단도 있고,
침례교, 감리교, 순복음, 성결교 등의 교단은
예수를 영접한 후에도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2nd blessing-웨슬리의 강조)입장을 가진다.
거듭난 자의 특징은, 죄의 권능을 깨달음, 하나님을 두려워 함, 넘어지나 즉시 돌이킴,
지속적인 영적 성장,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삶,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감 등이다.
역사적 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은 대체로 '너는 거듭나야 한다'는 주제의 메시지로 일치된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강조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강조되어도 항상 분열이 일어났다...
누가 거듭났는지는 하나님만 아시므로, 이 문제가 '판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련 글] 복음 관련 http://blog.daum.net/bible3/13864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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