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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 사명감과 희생으로 무장하면...

LNCK 2008. 3. 25. 09:59
 

◈사명감과 희생으로 무장하면... 감사가 나온다.           행20:24



감사는 내 삶에 혁명을 일으킨다.

‘변화되었다’는 것은... ‘감사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감사는 환경에 관계없이 나온다.

햇볕나면 햇볕 때문에 감사, 비오면 비로 인해 감사한다.

즉, 감사는 환경의 문제이기 보다는, 신앙의 문제인데...



◑1. 사명을 깨닫는 사람이.. 감사한다.


만약 지금 내가 감사가 없고, 얼굴에 어둠과 눌림이 있다면,

그 이유가 뭘까?

사람들은 ‘환경이 어렵다, 문제가 안 풀린다’ 등 여러 이유를 대지만,

한 꺼풀 더 들추어 보면, <사명을 잃어버렸을 때> 감사가 사라진다.


바꾸어 말해서, 사명자는 언제나 감사하게 되어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이 본문에 감사한다는 말은 없지만, 분위기가 바울의 감사, 감격을 느끼게 한다.) 



►주의 일을 하면서, 자기 ‘사명’을 못 깨닫는 사람은

늘 수동적이 되면서, 조금만 불편한 상황이 되어도.., 입에서 불평이 튀어나온다.


한 참 놀고 있는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면...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부가 자기 ‘사명’인 사람에게는.., 아무리 공부하라 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자기는 계속 공부한다.

 


►자기 ‘사명’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되지? 쓸데없는 일이네? 귀찮은 일이야!’

하면서 끊임없이 불평한다. 


반대로 자기가 하는 일의 ‘사명감’을 깨닫는 사람은

일이 험난할수록 도리어 감사,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이 이루어지는구나! 주님이 이 일에 함께 하시는구나!’



►예를 들면, 성가대의 사명을 충분히 깨달은 사람은, 고된 연습에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가대의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연습이 약간만 길어도 불평이 나온다.


오늘 내 입술에 만약 감사가 사라졌다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혹시 내게 사명감이 식어버린 것은 아닌지..?’



◑2. 희생하는 사람이.. 감사한다.


►성경에 보면, 병을 고친 예수님이 계시고, 병고침을 받은 환자가 있는데,

누가 더 감사하는가 하면...

병 고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더 감사를 드린다.

병고침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5병2어의 기적을 봐도, 떡을 받아먹는 사람이 감사했는가?

아니면 떡을 떼어주시는 예수님이 감사하셨는가? 예수님이다.


►사도바울이 사역할 때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보다는,

애쓰고 힘쓰며 각 지역을 방문하며, 핍박 속에서도 견디며

복음을 증거한 바울이

시종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힘들고 괴롭다고 불평해야 될 상황인데... 도리어 감사드린다! 행20:24참조.



►우리도 마찬가지다.

‘받는 사람’보다, 언제나 ‘주는 사람’이 감사하게 되어있다.


자주 짜증을 내고 원망하는 사람을 보면,

받기는 무지 받는데... 감사가 없고 도리어 불평이 나온다.


→그러므로 내가 앞으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도권을 가지고 앞장서서 <봉사하는 사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때 감사가 나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쓰임 받는 사명자가 된다. 


주님 일을 안 하고 편할 때는, ‘불평’이 나오지만,

애쓰고 힘써서 주님 일을 할 때는, ‘감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정 반대다.

 

 

►그래서 순교하는 사람이 감사한다고 한다.

중세 종교개혁자 존 후스는 화형을 당하며 순교할 때

“주여, 제가 이제까지 입술로 증거 하던 것을

피로써 증명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며 순교했다고 한다.



►해외토픽에, 이집트에서 3천 년 전에 씨앗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야단이다.

나는 약간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았다.

3천 년 전에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었으면,

그 사이클을 지난 3천년 동안 수 천 번 반복했을 터이고,

그랬더라면 옛날 그 씨앗 한 알이, 지금은 온 지구를 뒤덮고 있을 터인데,

그 때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있으니, 3천년이 지나도 지금 여전히 ‘한 알’이다.


4천 년 전에 아브라함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었더니,

지금 온 세상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해 있다.


오늘 나는 어떠한가?

내 삶을 불평만 하면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러나 희생하는 삶을 자청할 때,

나도 아브라함처럼 영적 조상이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될 것이다.



►오늘의 미친 선수

축구 선수들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오늘의 미친 nom’


그날 유난히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수비와 공격 진영을 마구 휘저으면서

자기 혼자 약 5명 몫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공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 혼자 몇 골 집어넣는다. ‘오늘의 미친 nom’이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사명감당하고, 희생하기를 바라지만,

이런 사람도 나와야 한다. 사방을 휘젓고 다니면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 사람!

그 사람이 전체 팀을 살리고, 활력과 생기를 불어 넣는다.



임진왜란 때도 이순신 장군 한 사람이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 무장하여 ‘미친 듯이’ 전선을 휘젓고 다니셨다.


당시 조정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명나라가 즉시 파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이 부산에 상륙해서 의주까지 2주 만에 단숨에 진격해 올라오니까,

명은 처음에, 조선과 일본이 짜고 유인극을 벌이는 줄로 의심했다.


‘단 2주 만에’ 조선의 전국이 무너질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만큼 당시 조선에는, 군대다운 군대, 장군다운 장군이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다.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파죽지세로 모두 점령했다는 뜻이다.


당시 조선은 앉아서 서로 당파싸움만 하면서

아무 준비 없이 임진왜란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나타나 바닷길(보급로)을 끊어버렸다.

왜군은 바다에서 만큼은, 힘을 쓰지 못했다.

이순신의 함대가 보이기만 하면 도망갔다. 그를 피해 다녔다.

 

만약 그 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일본어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청년들 가운데 이런 ‘오늘의 미친 한 사람’이 나오기를 바란다.

‘믿음의 이순신’이 나와서, 마귀와 영적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어가는

‘사명감’과 ‘희생’의 지도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이순신 장군처럼 시대의 판도를 바꾸어버리는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사명감’과 ‘희생’으로 무장하면 된다. <08.02.15.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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