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삼가 들으라 눅8:16~18 <08.03.16. 인터넷 설교
많은 신학자들은, 이 본문은 '씨 뿌리는 비유'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즉 씨 뿌리는 비유(눅8:4~15)의 마지막 부분이라는데, 그런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자.
◑말씀을 삼가 들으라! 눅8:18
▲한 음악 애호가의 열심
바하의 최고의 걸작은 ‘골드베르크를 위한 변주곡’으로 꼽힌다.
그런데 어떤 음악 애호가(음악방송국 PD)가 이 곡을 감상하는 자세를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성경을 읽는 자세와 한 번 비교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준비한다.
내가 어느 날 그 곡을 듣기로 계획을 세우면,
그 이전 며칠 동안은, 다른 음악은 절대 듣지 않는다.
그 곡만 잘 감상하기 위해서다.
물론 지하철이나 길에서 여러 음악이 들려오지만, 가급적 나는 내 귀를 막아버린다.
그동안 내 귀를 아끼며 깨끗이 비워 두는 것이다.
마침내 그 날이 돌아오면, 당연히 일찍 귀가한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가급적 일찍 재우고, 아내까지 일찍 재우고,
화장실도 꼭 미리 다녀온다. 음악 듣는 동안에 조급하면 안 되니까!
드디어 오디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전화기, 휴대폰 다 끄고, 전등불까지 끈다.
드디어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듣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멈추어서 듣지 않는다. 단숨에 다 듣는다.
(그 변주곡은 총32곡이라서 꽤 길다.)
그 곡을 들을 때는, 온 몸의 감각을 곧추 세운 채
건반악기의 한 음, 한 음을 명쾌하게 따라가야 한다.”
물론 보통 사람이 이렇게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음악 감상에만 몰입, 집중하는 태도는 눈 여겨 볼 만한다.
▲이 글을 읽다가, 나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설교를 준비할 때), 이런 정성된 마음으로 하는가?
내가 정말 내 귀를 깨끗하게 비워두고, 다른 잡다한 것 안 들으려고 조심하면서,
그 시간에 집중해서 말씀의 음성에 내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부끄러웠다.
누구는 바하 음악 하나 듣는 데에도, 온 몸의 감각을 곧추 세우고,
한 음 한 음 놓치지 않고 따라 간다는데,
내가 과연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어떠한가?... 마음이 이상해졌다.
우리가 설교를 듣는 자세는 과연 어떠한가?
1년에도 수 십 번, 10년이면 수 백 번인데,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닌가?
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도 무덤덤하게 말씀 앞에 나아온 것은 아닌가?
▲하나님 말씀을 내가 어떤 태도로 듣는가?
‘씨 뿌리는 비유’(눅8:4~15)의 결론 부분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 까 스스로 삼가라 눅8:18
예수님은 <어떻게 듣는가>가 중요하다고 하신다.
<삼가서 들어야 한다>고 하신다. ‘주의를 깊이 기울여 듣는다’는 뜻이다.
씨 뿌리는 비유와 연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 말씀의 씨가 좋은 밭에 뿌려져 열매를 맺으려면
말씀을 들을 때, 위 음악 애호가처럼, 신경을 곧추 세우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눅8:18
▲4백년 전통의 고등어 초밥집의 정신자원
일본 교토에 가면, 1617년에 개업해서 지금까지 근 4백 년 동안
20대가 계속 가업을 이어서 내려오는
이우마타 가문의 그 유명한 ‘고등어 초밥집’(사바 스시)이 있다.
어떤 기자가, 지금 20대째 후손인
그 집 주인이 고등어 초밥을 만드는 이야기를 취재 했다.
“나는 4백 년 동안 내려오는 가문의 전통을 잘 잇기 위해서
최고의 고등어를 찾아다닙니다. 내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조사한 결과,
가장 품질 좋은 고등어는, 제주도 근해에서 잡히는 길이 30cm 짜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제주도산 고등어만 재료로 씁니다.
그 다음 중요한 재료는 ‘쌀’인데,
(초밥집은, 보통 햅쌀을 80%, 묵은 쌀을 20% 쓴다고 한다)
저는 쌀을 구하러 다닐 때, 언제든지 가서 쌀을 제 이빨로 직접 깨물어봅니다.
그래서 그 쌀의 맛, 향기, 수분 정도를 제가 직접 확인합니다.”
(같은 지방에서 생산되는 쌀이라도, 일조량, 태풍 정도에 따라 쌀 품질이 다르다)
4백년간 이어온 ‘고등어 초밥집’ 가문의 전통이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후손들은 이처럼 오늘도 목숨을 건다고 한다.
기자가 물었다. “돈 좀 버셨겠네요?”
“아니요, 저는 이 가게 하나만 잘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제게 인근 역에서 도시락을 납품해 보라는 요청이 들어왔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생선은 시간이 지나면, 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납품하는 도시락으로는, 저희 가게의 전통적 맛을 전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저는 포기했습니다.”
여러분, 초밥 하나 만드는 데도, 그 맛을 유지하려고 목숨과 열정을 다 걸고 있다.
무서운 자기절제가 그 속에 숨어 있었다.
우리가 만드는 설교가, 어쩌면 저 초밥 만드는 열정보다도 훨씬 뒤쳐지지 않는가?
▲저도 너무 많이 설교하는 편인데, 어쩌면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설교한 만큼 나 스스로) 그렇게 살지도 못할 거면서...!’
하나님께도 미안하고, 여러분께도 미안할 때가 종종 있다.
30년을 한 세대로 치면, 2천년은 66세대 쯤 된다.
우리가 영적으로, 예수님의 66대 후손 쯤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세대가 그 ‘복음의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야 되는데,
위 고등어 초밥집 이우마타 가문처럼, 복음의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과연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가?
말씀을 <삼가 듣고> 있는가? ...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말씀을 <삼가 듣는> 것이란? 눅8:16~17
▲1.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눅8:16
등불을 켜는 진짜 목적은, 빛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고, 밝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 깨달아 알라는 것이다.
흐리멍텅하게 어렴풋이 깨닫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삼가 주의를 기울여>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문맥이다.
‘무엇 때문에 주님이 오늘 내게 이 말씀을 들려주실까?’
그 말씀의 목적을 밝히 깨달고,
그 말씀을 주신 이유를 잘 캐내어 <삼가, 주의 깊게>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의 진짜 목적을 모른 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성경 말씀의 진짜 목적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이다.
자기 속사람이 변화되면서, 새로운 천국 생활, 진정한 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잘못 들으면,
고전적 ‘자기 계발서적’처럼 이해할 수도 있고,
훌륭한 ‘윤리 도덕서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고 오해하고, 곡해할 수 있다.
설교시간에도, 그 원래 설교의 목적은 도외시하고,
주변이야기, 엉뚱한 예화 붙들고 상처 받았다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는, 그 말씀의 진정한 목적을 밝히 발견해야 한다.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어 온 집안을 환하게 하듯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그 뜻을 환하게,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 말씀의 목적과 이유를 명확하게 깨달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의 진정한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 못 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삼가 들으라, 주의 깊게 들으라>고 당부하신다.
▲2.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감춰진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눅8:17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스스로 조심하라!)
무슨 뜻인가?
내가 말씀을 들을 때, <내 속마음을 하나님께 절대 숨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설교자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지만, 생각은 딴 생각을 품을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듣지 않는 것이다.
속으로는 딴 생각, 즉 ‘숨겨진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속으로는 막 자기 생각대로 말씀을 판단할 수도 있다. ‘저건 아니지..!’
사실 내 마음은 아무도 못 본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숨기는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 문 열어놓고 정직하게 말씀을 받으라는 뜻이다.
- 그것이 <삼가 듣는다>는 두 번째 뜻이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비평가의 입장에 서면 안 된다. ‘저건 말도 안 돼!’
그러면서도 잘 듣고 있는 척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숨겨진 마음’이다.
그것은 목사는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그것을 조심해서 <삼가 들으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씨 뿌리는 비유’의 결론이다.
<말씀을 삼가 듣는 것>이다.
특히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 말씀을 색안경 끼고 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삼가 들으라>고 권고하신다. 그래야 열매가 있다는 것이다.
▲저는 간혹 스님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을 때가 있다.
왜냐면 스님의 설법도 어떤 때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구원의 길’은 없지만, ‘삶의 길’은 있을 수 있다. (일부러 들으라는 뜻은 아님)
종교가 안 맞아도, ‘좋은 이야기’는 있을 수 있다. 손해 볼 것 없다.
(무슨 말을 들을 때는, 귀기울여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임)
▲귀 기울여 (삼가) 듣지 않으면, 있는 것 까지도 다 빼앗긴다.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조심하여라.
가진 사람은.. 더 많이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눅8:18
▲청담동 이태리 식당 ‘레스토란떼 에오’
그 식당은 참 좋다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먹으러 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예약 안 하면 절대 못 가는데, 예약하기도 쉽지 않단다.
그 이유는, 그 식당에 테이블이 달랑 4개 밖에 없단다. (일동 웃음)
그러니까 하루에 손님이 20명밖에 못 가는 것이다.
그 주인은 이태리에 가기 전에도,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호텔의 주방장이었다.
이태리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에는, 더 음식을 잘하는 달인이 되었다.
기자가 물었다. “이렇게 사업이 잘 되는데, 매장을 좀 키우시죠?”
“안 됩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테이블을 4개만 두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손님이 하루에 20명이 넘으면,
제가 집중해서 정성을 담은 최고의 요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만든 요리라도, 제 스스로 그 질을 보장할 수 없더군요.
만일 요리사가, 자기 요리를, 자기가 만든 요리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제 스스로 ‘음식 만드는 기계’가 되고 말지요!
저는 ‘요리사’입니다.”
돈 좀 더 벌려고 더 많이 가게를 늘이면
정말 자기 마음속에 정성과 실력을 담아내는 작품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10개, 20개 주문만 맞춰내는 ‘음식 만드는 기계’가 되기 싫단다.
그래서 여전히 테이블 4개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요리도 중요하고, 창의적인 요리도 중요하고,
뛰어난 테크닉으로 만든 요리도 중요하지만,
‘정직한 요리’가 가장 훌륭합니다!”
모든 사람이, 위 요리사의 철학을 그대로 따라 살 필요는 없지만,
그의 뜻을 깊이 새겨불 필요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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