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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존스의 독서법 / 로이드 존스

LNCK 2008. 4. 12. 23:25

◈로이드 존스의 독서법

 

백금산 목사님의 훌륭한 글을 인터넷에서 스크랩 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는 위대한 독서가

위대한 설교자들은 위대한 독서가들이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위대한 설교자들의 이름으로는

16세기의 루터, 칼빈, 쯔빙글리, 존 낙스

17세기의 리차드 십스, 토마스 굳윈, 존 오웬, 리차드 백스터, 존 번연,

18세기의 조지 휫필드, 요한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19세기의 찰스 스펄전, 존 라일, (그 외 부흥사로는 찰스 피니, D. L. 무디)

20세기의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등이 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교회사를 대표하는 탁월한 설교자들이 되었을까?

이 위대한 설교자들의 전기를 읽어보시라.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 중의 하나는 이들이 모두 탁월한 독서가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독서만 많이 하면 자동적으로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설교자를 만드는 요소에는 독서 외에도

선천적 재능과 영적 체험 등의 다른 많은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설교자가 위대한 독서가’라는 사실은

독서만이 위대한 설교자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탁월한 독서 없이 탁월한 설교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독서 없이는, 좋은 설교자가 만들어지지 않는가?

→ 설교에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설교가 ‘설교 내용’과 ‘설교 전달’의

양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언젠가 웨일즈의 한 노 설교자가 어느 집회에 참석했다가

두 명의 설교자가 하는 설교를 듣고

첫 번째 설교에 대해서는 ‘빛만 있지 열은 없군’이라고 평가하고,

두 번째 설교에 대해서는 ‘열만 있지 빛은 없군’이라는 평가를 했다.


이 노 설교자가 말한 ‘빛’은 설교의 내용을 말하고,

‘열’은 설교의 전달(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설교의 양대 요소인 빛(내용)과 열(전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탁월한 설교자와 평범한 설교자, 좋은 설교와 빈약한 설교를 구별할 수 있으며,

나의 설교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설교 내용과 설교 전달의 양면을 기준으로 설교를 분석하면

모든 설교는 다음의 4가지 카테고리로 구분된다.

첫째, 내용도 좋고 전달도 좋은 설교,

둘째, 내용은 좋은데 전달은 나쁜 설교,

셋째, 내용은 나쁜데 전달은 좋은 설교,

넷째, 내용도 나쁘고 전달도 나쁜 설교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교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설교의 양면 중에서 설교의 전달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선천적인 언어 사용능력, 기도를 통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음,

여러 가지 설교 기법과 방법의 연구를 통한 연습 등의 여러 가지 요인이 포함된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은 성경연구를 포함하는 독서 없이는 절대로 좋아지지 않는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고 아무리 성령의 능력을 크게 체험한다 할지라도

자동적으로 성경에 대한 깊고 넓고 높은 지식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교의 내용을 구성하는 성경에 대한 깊고 해박한 지식은

지속적인 성경연구와 폭넓은 독서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설교의 역사를 빛냈던 위대한 설교자들은

한결같이 깊고 넓은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설교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설교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

사람들은 모범을 통해서 가장 잘 배우는 법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복음주의 설교자로 인정받고 있는

로이드 존스의 독서법을 우리의 모범으로 삼아보자.


로이드 존스는 비록 목사가 되기 전에 의학박사 출신의 의사였지만

신학교는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사람이

20세기 최고의 설교자가 될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비결은 그의 독서생활에 있었다.

로이드 존스의 탁월한 설교 전달 능력

기도를 통한 주님과 깊은 만남과 체험, 성령의 부어주심을 경험함으로부터 나왔지만

로이드 존스의 깊이 있고 풍성한 설교 내용의 비결은 독서에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독학으로 독서를 통해 당대 최고의 신학자 못지 않은

성경과 신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고,

풍성한 설교 내용을 가진 설교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로이드 존스의 독서비결은 무엇이었을까?

①로이드 존스는 성경읽기 자체를 매우 중요시 여겼다.

로이드 존스의 신앙과 삶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성경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성경읽기를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사용하였지

설교 본문을 삼기 위해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매년 성경통독을 목표로 삼았다.


설교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성경을 통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매년 한 번씩 성경을 통독하기 위해서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성자 맥체인이 개발한 성경읽기표를 사용했다

(부흥과 개혁사의 ‘맥체인 성경읽기표’ 참조).


맥체인의 방식은 하루에 구약 2장, 신약 2장을 읽어서 1년에 구약 1번,

신약과 시편을 2번씩 읽도록 짜여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죽는 날까지 53년간 계속 지속했다.


그가 소천한 날이 1981년 2월 28일이었는데

이날도 그는 그 표에 따라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었다. 이 본문은 ‘부활장’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꾸준한 성경읽기에 대한 상급으로,

마지막 임종의 순간 부활을 확신시켜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셨던 같다.


②로이드 존스는 한 분야의 책들을 깊이 집중적으로 읽었다.

로이드 존스는 특히 청교도 저서를 폭넓게 읽었다.

성경 다음으로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 영향을 미친 책은

일반적으로 청교도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저서였다.


청교도에 대한 독서는 그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친구들이 보내온 결혼 축하 선물 중에는

청교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학자요 목회자인 존 오웬 전집 헌책과

리처드 백스터의 전집 헌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청교도 독서는 그 넓이와 깊이를 더해갔다.


사람들은 로이드 존스가 청교도 저서들을 대단히 열심히 탐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청교도 설교를 도용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청교도에 대한 그의 진정한 관심은 1925년 우연히

리처드 백스터의 최신판 전기를 읽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때부터 청교도와 그들의 저작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생생한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의 사역 전체가

청교도 독서에 의해서 좌우되어 왔다고 그는 솔직히 고백하였다.


③로이드 존스는 한 사람의 영적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의 전집을 독파했다.

로이드 존스는 29살에 2권으로 된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을 발견한 이후

이를 문자 그대로 탐독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 미국 최고의 신학자이자 설교자였다.

로이드 존스에게 에드워즈의 전집을 독파하는 것은

그의 초기 목회에서 성경 읽는 일 다음으로 가장 큰 자극이 되었다.


로이드 존스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내 경험상으로 볼 때. 내 목회 초년기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통해

얻었던 도움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간단하게 입증할 수 있다.

물론 에드워즈의 설교뿐 아니라 18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대 부흥을 일으킨

그의 행적도 마찬 가지였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위대한 저서 <종교적 감정론>도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이 모든 것이 가치가 있었던 것은

에드워즈가 영혼의 상태와 조건을 해결하는 데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의 초기 목회시절 그의 영적 성숙과 설교에 진보를 이루게 된

또 한 번의 결정적인 계기는 워필드(1851-1921)의 전집을 읽은 것이었다.

워필드는 혜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와 더불어 3대 칼빈주의자로 불린다.


워필드 사후 뉴욕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1927년과 1931년 사이에

10권으로 된 워필드 전집을 출판했다.

이러한 워필드 전집을 로이드 존스가 만난 것은 워필드 사후 11년이 지난 1932년.

로이드 존스의 나이 32살 때였다.


로이드 존스가 워필드를 읽기 전에는 아무도 그를 신학자나 ·교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워필드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학에서 교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워필드 전집을 읽은 이후 로이드 존스의 바울서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었다.


1950년대에 20세기 설교의 고전에 해당되는 로이드 존스의 유명한

‘로마서강해설교’와 ‘에베소서 강해’ 설교의 기초공사가

30대 초반 워필드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셈이다.


④로이드 존스는 다방면의 책을 균형 있게 읽었다.

로이드 존스는 신앙서적과 일반서적, 신앙서적 중에서도

신학 서적과 경건 서적들을 폭넓게 읽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단지 다방면의 많은 책을 아무렇게나 많이 읽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독서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로이드 존스는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독서라고 생각했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자신의 독서관을 이렇게 피력한 바 있다.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신학 서적과 전기 얽는 것을

서로 균형 있게 한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휴일에도 그랬고. 매일같이 그렇게 하려고 한다.

특히 휴일 아침에는 신학 서적을 읽고 밤에는 전기를 읽으려고 노력 한다"

(까다로운 신학 서적도 읽어야 한다는 뜻임)

 

 

▲나가는 말, 평생 꾸준한 독서가 필요

평생 꾸준히 독서하는 목회자만이 좋은 설교자가 될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의 독서법은

오늘 21세기 한국 땅에서 좋은 설교자로 쓰임 받고 싶은 설교자들에게

많은 귀감이 될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내 설교를 좋아지게 할 수 있는 독서의 비법이나 비방은 없다.

평소 꾸준한 독서만이 좋은 설교자를 만든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한 번의 설교가 당장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역도 선수가 한 끼 식사를 많이 먹었다고

갑자기 자신의 평소 능력 밖의 무거운 역기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겠는가?


위대한 설교자들은 모두 평생 성실하게 공부하는 목회자,

평소에 꾸준히 독서하는 독서가들이었다.



*백금산 목사님의 조나단 에드워즈 설교 번역문

 


◈목사가 학위 가운을 입는 이유                                            행17:11

      -평생 공부,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뜻

 

 

그 곳 유다인들은 데살로니카 유다인들보다 마음이 트인 사람들이어서 말씀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바울로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서를 연구하였다                                    행17:11

 

기독교 전통 중에 크게 두 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 전통'과 '성례의 전통'입니다.



말씀의 권위 전통

예배에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을 듣는 것을 매우 귀중히 여기는 전통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에 주로 하신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으로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하신 하나님나라 운동은 말씀 선포 운동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권위 전통’이 오늘날까지 개신교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석, 박사) 가운을 입습니다.

대학교 졸업식에서 학위 받을 때 입는 가운을 목사님들이 입고 계십니다.

이 전통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도 그렇습니다.


무슨 전통이냐? 개신교의 전통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목사님들의 가운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이런 학문적 전통이 현장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가운을 권위주의로만 입어서는 안 되고,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학자로서 입어야 하겠습니다.)



▲가톨릭의 성례 중심 전통

그럼 천주교를 가보십시오, 정교회를 가보십시오.

대학교에서 입는 학위 가운을 전혀 입지 않습니다.

대신에 완전히 성직자 가운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이 입는 가운으로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개신교의 전통이 갈릴리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데 있지만,

가톨릭은, 예루살렘에 오셔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했던 성만찬의 전통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천주교에서는 예루살렘 전통식 사제 가운을 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