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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실 족

LNCK 2008. 4. 12. 16:42

◈실 족 마18:5~10

 

 

▲한 어린 소년의 실족

1930년대 즈음, 한국 시골의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어떤 키가 작고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아이의 주일학교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야, 네 옷에서 냄새가 난다.

앞으로 교회에 올 때는, 옷을 깨끗하게 빨아 입고 단정하게 오렴!”

 

선생님은 선한 의도로 그 아이에게 그렇게 충고했는데,

그 말이 그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 날 이후로, 그 아이는 다시는 교회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아이가 바로 ‘박정희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언젠가 많은 목사님들과 함께 조찬기도회를 가지실 때,

“나도 한 때 교회를 다녔습니다”며, 그런 자기 어릴 적 일화를 소개했다고 한다.

 

그 때 그 선생님이 좀 더 그 아이를 잘 보듬어 격려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크리스천이 되었을 런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척 연약한 존재이다.

선생님이 무심코 던진 그 한 마디에, 그렇게 큰 상처를 받게 되니 말이다.

 

 

▲뼈아픈 과거의 실수

아주 오래 전에, 제게 마음에 크게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어떤 학부모님이 제게 도움을 청하셨다.

 

“목사님, 우리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서, 조금 이상하게 변했습니다.

주변에 불량한 친구들과 가까이하면서, 공부도 안 하고 집에 늦게 들어옵니다.

목사님이 우리 아이를 만나셔서, 좋게 타일러서, 좋은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거야 내 전공이지!’라고 내심 생각하며 자신감에 넘쳤다.

그리고 그 아이를 교회로 불렀다.

그날따라 유난히 말이 술술 잘 나왔다.

막힘없이 1시간 이상 그 아이에게 훈계를 했다.

예화도 적절하게 중간 중간에 넣어가면서, 정성을 다해 좋은 말로 타일렀다.

 

‘이제 얘는 말귀를 다 알아듣고 완전히 변화될 거야!’ 나는 내심 자신했다.

 

문제는, 그 아이가 그 다음주일부터 아예 교회를 떠나버렸다.

나와 상담을 나눈 바로 그 다음주일부터 말이다.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나는 그 아이에게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나 그 때 나는 철저히 깨달았다.

 

인간은, 얄팍한 사람의 충고로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때 한 시간 이상 쓸데없는 훈계 관두고

차라리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힘들지?” 하고,

“엄마랑 갈등 겪으면, 엄마도 힘들지만, 너도 얼마나 힘들겠니?” 위로해 주고

 

차라리 바깥에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간식을 사주며

“내가 보니 너는 참 괜찮은 애야,

엄마는 엄마라서 염려하시지만, 내가 보니까 너는 아무 문제없어!

뭐 맛있는 것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차라리 이렇게 격려하고 돌려보내었더라면..,

내 마음이 지금까지 심하게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내공을 쌓으라

 

본문을 묵상하는 중에,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래 2번)

 

▲1. 먼저 내가 타인을 실족시키지 말아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스칸달리조)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마18:6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18:7

 

위의 주님의 말씀대로, ‘실족하게 하는 일이, 살다보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뒤끝이 없어!’ 하면서, 무작정 폭발하면 안 된다.

 

▲2. 동시에 내가 자기 자신을 실족시키지 말아야 한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스칸달리조)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8

 

8절의 ‘범죄케’에도

6절, 7절의 ‘실족케’와 마찬가지로 ‘스칸달리조’가 쓰였다.

즉 내가 <남을> 실족케 할 수도 있지만(6, 7절)

동시에 내가 <나를> 실족케(본문에 범죄케)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8절)

 

자기 손이나, 자기 발이, 또는 자기 눈이(9절)

자기를 스스로 실족케 할 수도 있으므로

자기 스스로 실족하지 않도록, 스스로 강하게 내공을 쌓아야 할 것이다.

 

자기가 실족해서 넘어질 때, 내게 상처준 남만 탓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자기가 내공이 부족해서, 넘어질 수도 있다.

 

자기 남편에게 상처 받는다는 부인도,

사실 다른 남편 만나봐야 똑같이 상처 받는다.

자기가 내적으로 강해져야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너’ 때문인가?

과거에 이장희 가수가 유행시킨 ‘그건 너’ 라는 히트곡이 있다.

 

1모두들 잠드는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넘기는 책 속에 수많은 글들이/ 어이해 한 자도 보이질 않나?

(후렴)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3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모두들 잠자는 고요한 밤중에,

자기가 잠 못 자고 있는 것이 왜 ‘그건 너’ 때문인가? ‘그건 나’ 때문이다.

비가 쏟아지는 종로 거리를, 우산도 안 쓰고 돌아다니는 것은

‘그건 너’ 때문이 아니라, ‘그건 나’ 때문이다.

 

우리가 ‘상처 받았다’고 말할 때, 그 전제는 ‘그건 너 때문이야’인데,

아니다, ‘그건 나 때문이야’ 일수도 있다. (가요에서는 짝 사랑 한 사람이 잘못이다)

웬만한 상처에도 끄떡도 하지 않도록, 내 맷집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 말씀대로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마18:7

외향적 사람도 있고, 내성적 사람도 있고,

괄괄한 사람도 있고, 조용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남이 웬만큼 나를 건드려도... 내공을 쌓아서 그것을 이겨나가야 한다.

 

*관련 글 : 맷집이 튼튼해야

              신앙의 내공을 높혀야

  

 

◑보다 적극적인 대처법

 

정의를 초월하는, 은혜가 지배하는 공동체

우리가 남에게 충고할 때, 절대로 틀린 말로 충고 하지 않는다.

100% 다 옳은 얘기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충고할 때도, 다 약이 되고, 다 좋은 충고만 골라서 한다.

목사가 부교역자들에게 충고할 때도, 틀린 말은 한 마디도 안 한다.

 

그러나 부흥이 안 되는 교회일수록, 충고, 정죄, 공의, 비난이 난무한다.

부흥하는 교회일수록, 공의, 올바름을 ‘초월하는’(지키지만 그 이상) 은혜가 지배한다.

 

우리 가정도 업그레이드 되어져야 하는 부분은,

아버지부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 전통을 자녀 세대에 계승시켜야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뛰어넘는’ 은혜가 다스리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의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어야 하겠다. 

자녀를 실족시키지 않으려면! 

 

 

▲정대위 박사의 일화

그가 숭실중학교를 졸업하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졸업식하면 큰 파티를 벌였는데,

다름 아닌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 한 그릇씩 사먹는 것이었다.

 

정대위 학생은, 중국집에 가서 친구들과 자장면을 시켜놓고 졸업파티를 하면서

서로 장래의 꿈을 한 마디씩 나누었다.

‘나는 이다음에 과학자가 될 거야!’

‘나는 이다음에 교수가 될 거야!’

 

그 때 정대위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다음에 목사가 될 거야!’

 

마침 그 식당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도산 선생은 학생들이 너무 기특한 나머지, 식사를 하다 마시고

학생들 테이블로 찾아가셔서 격려를 해 주셨다고 한다.

 

“얘들아, 너희들이 장차 대한민국을 움직일 위대한 기둥들이구나.

방금 말한 너희들의 소원대로 다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시더니 이 정대위 학생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목사님, 앞으로 훌륭한 목사님 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시 길 기원합니다.”

 

정대위 학생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그는 교실에서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한국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인정해 주신 사람이다.

나는 훌륭한 목사가 될 것이다.

그 분이 나를 훌륭한 목사라고 불러 주셨으니, 나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정대위 박사는

그 때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살면서 가정에서 어려운 일이 있었고,

사회생활 하면서도 절망과 좌절에 빠지는 순간이 남들처럼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저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격려를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정대위 박사는 나중에 그 때 그 결심대로, 그 격려대로 목사가 되었고,

건국대학교 총장, 한국신학대학 학장까지 역임했다.

 

오늘 설교를 진취적, 적극적으로 끝맺고 싶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님처럼

<남을 격려하고, 살리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한 영혼을 실족시킬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회복시키려고 애쓰며,

한 영혼을 인정해 주고 세워주는 일에 집중할 때,

나는 누구보다 값진 인생을 살게 될 줄 믿는다. <08.03.02. 인터넷 설교 축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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