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을 것으로 썩지 않게 고전15:53~58
◑두뇌에는 ‘미래기억장치’가 있다.
▲내가 믿는 만큼, 신앙생활에서 능력을 경험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만큼, 예수님이 그만큼만 내게 역사하신다.
주님은 엄청난 능력을 갖고 계시지만, 내가 믿는 만큼만 역사하신다.
간간이 필요한 경우에, 주님께서 내 믿음의 한계보다 더 크게 역사하실 때가 있지만,
대개의 경우 내가 믿은 만큼, 주님은 그 능력을 나타내 주신다.
▲전두엽에는 미래기억장치가 있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 뇌 전문가 리처드 레스팅 교수가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뇌 속에는 ‘전두엽’이 있는데
그 안에는 ‘미래를 기억하는 부위 future memory’가 있다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한다고 할 때, 그것은 언제나 ‘과거’의 기억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뇌 속에는,
‘미래’를 기억해 낼 수 있는 어떤 능력,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들도
시간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로도 흐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튼 소리가 아닌 것이다.
▲긍정적인 미래를 담아두면
우리 인간의 뇌에는 ‘미래 기억 장치, 또는 무의식’이 있는데,
그것 속에는 알게 모르게 <나의 미래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미래를 평소에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늘 생각하다 보면, 그것은 기억 속에 저장되고,
결국 자기 행동도 자꾸 그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나는 ‘이런 미래가 나에게 펼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이렇게 진행되었으면 좋겠어!’ 하고 자꾸 미래를 설계한다.
그런 긍정적 생각을 담아놓으면,
나는 언제나 그런 담겨진 생각대로, 나도 모르게 내가 자꾸 움직이는 것이다.
▲부정적인 미래를 담아두면
반대로 ‘그건 안 될 거야! 그건 실패할 거야!’ 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정적 미래를 내 머릿속 ‘미래기억장치’에 담아 놓으면,
알게 모르게 내 행동이 그리로 끌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내 두뇌 전두엽 속의 ‘미래 기억장치’에
과연 어떤 것을 담아두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면 담아둔 미래의 기억에 따라, 그 방향으로
내가 자꾸 무의식중에 실제 행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제 단락을 바꾸어,
성경이 나의 ‘미래 기억장치’에 담아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자.
◑미래의 승리를 확신하는 삶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15:57
▲미래 승리를 바라보게 하신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사망의 권세, 마귀의 권세에서 이김을 주셨다.
좁게 보면, 이것은 죽음에서 부활승리를 뜻하지만,
넓게 보면, ‘나를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는’ 마귀로부터 이김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마귀의 파멸케 하는 권세를 이긴다, 마귀의 파멸은 나와 상관없다!>
는 승리의 미래를, 내 머리 속 ‘미래기억장치’ 속에 담아 놓고 살게 하신다.
▲자연인은 부정적이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나는 해 봐도 안 돼! 나는 실패자야!’ 라는 부정적 생각을 은연중에 갖기 때문이다.
‘미래 기억장치’에 부정적인 미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누적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이기게 해 주셨어!’, ‘나는 주님과 동행하며 살 거야!’
이런 긍정적 생각을 갖고 있으면, 결국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미래 승리를 확신하면, 말부터 달라진다.
여러분의 자녀나 식구가 지금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언젠가 <미래에 승리>할 것을 확신하신다면
여러분은 지금 그 자녀를 어떻게 대하시겠는가?
승리할 줄 아시면서도
‘너 같은 애는 안 돼’
‘너는 틀렸어!’
‘당신(남편)은 불가능해!’
‘우리 집안은 망했어!’
라고 부정적인 말들을 마구 쏟아놓겠는가?
미래의 이김을 확신하는 사람은... ‘말’부터 달라진다.
그 다음에 ‘행동’도 점점 달라진다.
◑썩는 것을 썩지 않게 하는 비결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승리에 의해 정복당하리라’고 한 기록된 말씀이 응할 것이다.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헌혈을 하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는 역사가 나타나는데..,
무슨 소린가?
내가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내 피와 살이 다 썩어 없어진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내가 살아있는 동안 헌혈을 하면, 그 헌혈이 다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이 또 헌혈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사람이 살아난다.
그래서 내 피가 썩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자꾸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썩지 아니함을 입는’ 것이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우리 몸속에 장기도 마찬가지다.
내 장기를 갖고 살다가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
그런데 만약 내가 죽을 때 장기를 누군가에게 제공하면,
그것으로 인해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죽을 것(내 장기)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난 사람이 만약 죽을 때,
자기 장기를 또 남에게 넘겨주면... 또 다른 새 생명이 끊임없이 산다.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수를 전하게 된다.
내가 기증한 장기로... 당신이 사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다 기증해 주셔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돈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을 때, 돈 가지고 가 봐야... 다 썩어 없어진다.
관 속에 넣어도 썩고, 통장에 담아 놔도 다 썩는다.
그런데 그 돈을 가지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면
‘썩지 않는 물질’이 된다.
왜냐하면 천국에 저축되기 때문에 ‘썩지 않는 물질’이요,
굶어죽던 사람이 살아나서 재기해서, 자기가 벌어서 남을 도운다면,
그 돈이 돌고 돌아서... ‘썩지 않는 물질’이 되는 것이다.
▲썩을 것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몸매에 관심이 많다.
그 몸매를 가꾸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썩을 것’(몸매)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몸도 언젠가는 ‘썩을 것’이다.
대신에 ‘썩지 않을 것’이 ‘나의 썩을 것’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부활의 승리’가 ‘사망 권세’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 기억장치’ 속에 이미 승리가 기억되어 있다.
‘썩지 않을 것’이 ‘나의 썩을 것’을 지배하는 기억이 되어있다.
그래서 앞으로 점점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기 몸매 보다, 더욱더 주님을 위해서 애쓰며 산다.
안 믿은 사람들은 자기 몸매 가꾸기 위해서 살지만,
크리스천들은 주의 일에 힘쓰며 산다.
이 모든 삶이 썩지 않고 영원한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15:58
더욱이 크리스천은
실패가 와도 실패가 아닌 줄 알고,
실패가 변하여 도리어 승리가 될 줄을 알고,
주를 위해서 더욱 열심히 산다.
자기 미래가 그렇게 기억 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느끼면 이미 다 나은 게야!
박준규 씨는 수퍼마켓을 운영하다가 화재가 나서 큰 화상 입었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손 발, 온 몸을 다 태워버렸고, 수술 후 목숨만 겨우 건졌다.
멀쩡하던 사람이 그런 일을 당했으니 살맛이 나겠는가?
수술을 끝내고 몸이 회복되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 인생은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자학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육신의 고통보다
‘내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의 고통이 훨씬 더 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쭈그러진 몸을 펴기 위해 재활센터에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는 재활센터의 간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그에게 했다고 한다.
“박준규 씨, 너무 힘드신데 어디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도 어딘가 가고 싶더란다.
왜냐하면 집에 가도 자기를 반겨주지도 않고
그 몸으로 밖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디를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간호사가
“혹시 전남 고흥의 소록도를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하더란다.
아시는 대로, 소록도는 나환자들이 사는 곳이다.
“아니, 그 곳에 가서 제가 무슨 휴식을 취하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가면, 아마도 쉬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 어떻게 사고가 났나며 자초지종을 물으실 게 아닙니까?
그러면 쉬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소록도에 가시면,
아무도 당신 몸이 그렇게 된 사연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기들도 다 비슷하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래서 남도 행 열차를 타고 소록도로 내려갔다.
며칠 지나서 어느 날 앉아서 쉬고 있는데,
자기 옆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홍 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누구를 보고 말했다.
“할아버지, 이게 어쩐 일이세요?”
보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나뭇짐을 해서 지고 오시는데,
그 발에 큰 쇠꼬챙이가 찔려 있는 채로 피가 철철 나고 있는데도,
(박준규 씨도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는 채 나뭇짐을 계속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홍 씨가 이렇게 말했다.
“박 선생, 우리 나환자들은 신경계통에 마비가 온 사람들이야!
그래서 저렇게 고통이 있어도, 고통을 전혀 못 느끼지!
여기서는 쇠꼬챙이에 찔려서 ‘아프다!’고 말하면,
그는 문둥이가 아닌 거요. 그는 이미 다 나은 게지!”
고통을 느낄 줄 알면, 이미 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연이어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박 선생, 당신 같은 사람은 환자도 아닌 게야,
부디 나가서 열심히 사시오!”
여러분, 지금 당신이 당하는 고통이 힘든 줄 아시는가?
그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벌써 다 나은 사람이다.
환자가 아닌 게다.
그러면 열심히 사셔야 한다. <08.03.23.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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