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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민13:1~33 2008.04.13. 출처
Lon Solomon / How to walk by faith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은 ‘사는 것’이다.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무엇인가? 민수기의 12정탐꾼들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
◑두 종류의 크리스천(정탐꾼)
▲믿음으로 사는 자 vs 뒤로 물러나는 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특별히 ‘더 사랑하시는 자’도 있고, ‘덜 사랑하시는 자’도 있다.
하나님의 친구였던 아브라함이 있는 가하면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아끼신 다윗이 있다. 시17:8
하나님은 욥을 사탄에게 자랑 하시기까지 했다.
그러나 뒤로 물러가는 자, 믿음이 뒤쳐지는 자들은... 좋아하지 않으신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자)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뒤로 물러나는 자)
히10:38
▲10정탐꾼들의 보고는 진실했다. 그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탐지해 본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 사는 사람들은 매우 건장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사는 성과 도시는 매우 튼튼한 요새처럼 보였습니다.” 민13:27f
오늘날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그들의 보고는 틀리지 않고 정확했다.
주전 14세기의 팔레스타인은 당시에 인구가 많이 살고 있었으며,
성곽의 규모도 매우 튼튼하고 견고했다.
그러니까 10정탐꾼은 매우 ‘정직하고도 사실적인’ 보고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우리는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거인들인데 비해, 우리는 그들에 비교하면 마치 메뚜기와 같습니다.” :31~33
그들이 이렇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보고를 했던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그들은 평소에 주님과 함께 동행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가나안 땅을 탐지할 때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이성적으로만, 사실적으로만 판단했던 것이다.
그들이 홍해를 건넌 것을 기억하고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여전히 성숙하지 못했다.
▲10정탐꾼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어느 시대든지 그런 사람이 있었고.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시각’을 잃어버리고
인간적, 이성적, 명철한 자기 판단만 갖고 있으면...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 크리스천이지만, 10정탐꾼들처럼
세상에 대해 두려움, 왜소함, 불안감, 패배의식 등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갈렙은 달랐다.
우리는 올라가서 이 땅을 능히 차지할 수 있습니다. 민13:30
어디서 이런 긍정적 사고가 생겼을까?
그가 방금 ‘적극적 사고방식’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왔는가? 물론 아니다.
갈렙이 그런 굳센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이 시내 산을 떠날 때, 주님이 주셨던 <약속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 신1:8
갈렙이 믿은 것은, 자기들의 뛰어난 전략이나 용맹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이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진 사람은... 갈렙처럼 담대하고 강건하다. ★
반대로 약속의 말씀을 못 가진 사람은... 10정탐꾼처럼 세상을 두려워한다.
갈렙은 담대하게 말한다.
우리가 그들을 밥처럼 삼킬 것이고, 그들의 보호는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민14:9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었다.
그런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실제 생활에서 믿음으로 살았고 walk by faith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 walk in faith 이란?
▲신앙의 핵심
유명한 달라스 신학교에는 거기서 유명한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가 계신다.
하루는 한 신학생이 박사께 질문했다.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에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신 넘버원 교훈이 무엇입니까?”
헨드릭스 박사는 다음 주 수업시간에 답해 주겠다고 했다.
드디어 다음 주 수업시간이 돌아왔다.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1주일동안 고민하고 내린 내 결론은,
예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가장 제자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치시려 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살 것인가? How to walk by faith? 일세!”
▲나(솔로몬 목사)도 헨드릭스 박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5병2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공생에 동안 행하신 모든 기적,
주님이 직접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조차도
그 모든 초점과 목표는 ‘어떻게 믿음으로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데 있었다.
왜냐하면 히11:6에 믿음(생활)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롬1:17에, 의인은 오직 믿음(생활)으로 말미암아 살live 것이니라! 하셨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그렇다면 그게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야 내가 믿음으로 살 게 아닌가!
오늘 본문인 갈렙을 통해서 한 번 설명해 보자.
▲1.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것을 믿는다. 주1)
▲2.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주2)
▲3. 제자도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Take Risks for God! ★
믿음으로 사는 길 walk by faith 은 언제나 위험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뒤로 물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과 ‘뒤로 물러가는 것’은 결코 같이 갈 수 없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0:38
여러분,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에서 전도해 보시라.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또한 여러분이 직장에서 상사에게
“저는 이렇게 못하겠습니다. 이것은 손님을 속이는 일이라서 안 됩니다!”
그렇게 해 보시라.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이런 예는 백 가지도 더 들 수 있다.
진짜 복음대로 살려면.. 결코 쉽지 않은 위험과 대면하는 것을
제자는 굳게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먼저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에 따른다.
그것이 세상 권세와 일치하면 다행이나, 어떤 때는 세상 권세와 어긋날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믿음의 시험에 직면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타협해서 쉽게 좋게 넘어갈 것인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험에 흔들거린다.
이 시험-위험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살기-은 결코 쉽지 않다.
10정탐꾼들과 온 이스라엘은... (마음으로 믿었지만) 세상 힘의 파워 앞에 굴복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위험을 감수하고, ‘믿음으로 걸었던’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올라가서 취하자고 말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 나아갈 때, ‘믿음으로 나아갔다.’ walk in faith
히브리 11장의 모든 믿음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살았다.’ walk in faith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할 때도 위험이 넘쳤지만 ‘믿음으로 행했다.’ walk in faith
하만이 다 죽이려 날 뛸 때도, 에스더는 ‘믿음으로 나아갔다.’ walk in faith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믿음으로 부딪혔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믿음으로 나아갔다. 쪼그라들지 않았다.
미국에 영적대각성 운동이 일어날 때도 조지 휫필드 등 그 주역들은
여러 위험에 직면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위험을 대면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갔다.’
선교사들도 언제나 위험을 직면했지만, 하나님께 순종해서 ‘믿음으로 나아갔다.’
밥 엘커드가 노스 캐롤나이나 채플힐에서 조롱과 핍박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도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전도를 받은 내가 지금 이렇게 목회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 중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시라.
그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래야 핍박 후에, 결국 좋은 결과와 열매를 거둔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다.
다윗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면.. 골리앗이 쓰러질 것을.
에스더가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면.. 하만이 사라질 것을,
여호수아가 위험을 직면하고 나아가면..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을
그것은 진짜 위험real risk이 아니라, 가장된 위험perceived risk이었다.
우는 사자가 성도를 삼키려고 무섭게 울부짖지만, 이빨 빠진 사자요,
쇠사슬에 묶인 사자인 것이다. 절대 하나님 허락없이 나를 해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험에 직면하지만, 그 위험의 거대한 장막(실제로는 아주 얇은 막)
을 반드시 뚫고 돌파해서 나가야 한다. 그것은 실제로는 종잇장 같이 얇은 것이다.
▲마치는 말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
그러나 히11장의 믿음의 조상 반열에 서는 것은, 결코 아무나 서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주님을 따르는데 따르는 위험을 기꺼이 직면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다.
(한국의 순교자들도 그랬다. 믿음으로 살았다. walk in faith)
이렇게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먼저 순종하는 사람
즉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주님은 존귀하게 여기시고 높이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삼상2:30
나와 여러분의 믿음이, 위험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직면해서
참된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시기 바란다.
물론 그 마지막 결과는 훨씬 더 좋아진다.
그러나 10정탐꿈처럼 타협하고 회피하면... 당장은 쉬워도, 그 결과는 좋지 않다.
가나안에도 못 들어가고, 여리고 성도 안 무너진다. 도리어 대적에게 쫓겨다닌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경멸히 여기신다. 삼상2:30↑
주1)
갈렙은 현실에 당면한 어려운 난제들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었다.
믿음이 없는 사람 눈에는 항상 문제와 장애물만 보인다.
그것은 과장과 꾸밈이 아니라, 사실이다. 매우 이성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눈에는, 그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보인다.
믿음의 사람은 장애물에 주목하지 않는다. 항상 전능하신 하나님을 주목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주목한다. 그 말씀을 믿고서, 현실적 장애물에 도전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장애물을 뛰어넘는 것이다.
주2)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삼상2:30
*관련 글 : 유다가 <위험을 직면한 후> 장자적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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