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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8 신앙생활의 최고봉

LNCK 2008. 5. 1. 14:34
 

◈신앙생활의 최고봉                 마5:43-48



미국 윌로우크릭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는

산상수훈을 ‘세상을 뒤집어 놓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대인관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족과 이웃의 관계를 회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일반적 세상 사람들의 대인관계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3 입니다.


▲ 이웃 사랑에 대한 교정

산상보훈의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가

계속해서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까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이러한 가르침을 받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마태복음 5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의 실례를 5가지로 일깨워주셨습니다.

①살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②간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③이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④맹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⑤다섯째는 보상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⑥이제 마지막 여섯째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 사랑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자의적 말씀 해석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받은 유전에 따라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마5:43


이러한 가르침을 레19:18에 나타난 성경적인 원리와 비교해 볼 때,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19:18

그들은 2가지 원리를 무시했습니다.

 

①그들은 사랑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는 원리를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웃만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②그들은 자기들의 가르침을 부각시키기 위해

성경에도 없는 <네 원수를 미워하라>를 임의대로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구약성경을 찾아보아도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서 중요한 말씀(네 몸 같이)을 빼버렸습니다.

또 없는 말씀(미워하라)을 임의대로 집어넣었습니다.


▲1. 말씀을 임의로 빼버린 이유

레19:18에서는 분명히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은 빼버리고

그저 단순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잔칫집에 가서도 언제나 상좌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자기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자기와 같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세리, 창녀, 죄인, 이방인들이.. 나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래서 내 몸과 같이>는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


▲2. 말씀을 임의로 덧붙인 결과

눅10장에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와서 시험적으로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의 의도는 <자기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따로 있고,

자기가 미워해야 할 원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서 질문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이 답변으로 주신 것이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아무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웃만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고 잘못 가르쳤습니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서

그 당시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끼리만 사랑했습니다.

유대인인 자기 동족들만 사랑해야 할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경우에는 무조건 미워해야 할 원수로 취급했습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은 이방인의 편에 서서 일하는 사람,

예컨대 세리와 같은 사람들도 이웃의 개념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아울러 율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사람들,

예컨대 창기들도 사랑해야 할 이웃의 개념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온통 미움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사라지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증오심만 쌓여 갔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해졌겠습니까?

악해질 때로 악해지고 말았습니다.



◑2. 예수님이 교정해서 가르치신 대인관계의 원리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


▲1. 사랑의 대상에 제한이 없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라고 하신 것은

사랑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선대하는 우리 이웃도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를 원수로 취급하고 핍박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2. 사랑의 출발은 기도

그리고는 그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 첫 번째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b


그러면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평안이 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바뀝니다.

누가 우리를 핍박하면, 본능적으로는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이 바뀝니다.

그를 이해할 수 있고, 긍휼히 여길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수학을 배울 때 미적분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덧셈 뺄셈부터 배우듯이,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도

좀 더 가까운 사람부터 좀 더 쉬운 대상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껄꺼러운 사람, 미운 사람, 못된 사람, 별난 사람부터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관련 글 : 아버지의 기도노트 [클릭] 

 


◑3. 왜 악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하며 기도해야 할까요? (45-47절)


▲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45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의 구분이 없이

또한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구분이 없이,

햇빛을 내려주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언젠가는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의 너그러우심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은 미워하고 원수로 여긴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자녀로서 떳떳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우리는 천국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6~4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어떠한 수준입니까?

자기들이 원수처럼 취급하면서 미워했던

세리나 이방인의 의의 수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런 의를 가지고 천국의 백성이 되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천국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는 당연히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는 나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이웃도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의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 선교사 선발법 [클릭]  


▲허드슨 테일러, 사랑하니까 화를 안 낸다. [클릭]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런데 다들 경험해 보셨겠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같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우리가 <한 가지를 빼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레19:18

다시 말해서, 우리는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시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굉장히 선하고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합니다.

비록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 속에는, 나만 알고 있는 온갖 추잡한 생각과 마음이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나를 내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나 자신 만큼은 사랑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추한데도,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듯이

마찬가지로 이웃과 원수도, <네 몸처럼>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깨달으면서

제 마음에 생수가 흘러넘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악인에게 호감을 가져라는 말이 아닙니다.

악인을 의인처럼 여기라는 말도 아닙니다.

잔인한 행동이나 배신행위에 대해, 못 본체 하고 그냥 지나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4. 결론. 너희도 하나님처럼 온전하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마5:48


이 말씀은 5:21-47절의 요약입니다. 결론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갈 때만이 우리가 온전해 질 줄 믿습니다.


▲온전해 지려면 사람을 좋게 보시라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못생긴 남자가 있었습니다.

눈도 작고, 얼굴로 형편없이 못 생긴 사람입니다.

고심 끝에 잘 생긴 사람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다녔습니다.


가면 쓴 생활을 10년 넘게 했더니

나중에 가면을 쓰지 않았는데도

그 남자의 얼굴이 그 가면의 얼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가면에 눌려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위장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루이스는 이것을 복음의 본질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니 사실 미운 사람.. 밉다고 하지 말고,

안고와도.. 곱다고 생각하며 기도하며 선대하면...

내가 고운 얼굴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를 보면 찡그려지는 내 인상을 가면 뒤에 감추고, 선대하다보면...

내 속의 얼굴이 진짜 선하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자꾸 사람을 미워하고, 흉하게 보면

10년이 지나면.. 나 자신이 실제로 그렇게 흉하게 변해 버릴 것입니다.


이런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돐이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는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아기가 마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말합니다.

“젖 많이 먹었니? 배불러? 기분 좋아?”


아기가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는 것같이 계속 말해 줄때,

비로소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나 자신과 상대방을 자꾸 선하고 좋게 볼 때,

처음에는 내 말을 상대가 못 알아듣지만, 계속 알아듣는 것처럼 말을 하면,

그 상대방도 결국에는 좋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계명과 그 둘째

한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말에 잘 따릅니다.

부모님이 물 떠오라면 물 떠오고, 가게에 가서 뭘 좀 사오라면 사오고

이런 사소한 명령은 모두 잘 듣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가장 절박하게 요구한

결정적인 말은 안 듣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이 아이가 부모님의 말에 순종한 것입니까? 불순종한 것입니까?

결과적으로 불순종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다른 많은 명령들은 잘 따릅니다.

그러나 계명 중에 가장 크고 첫째와 둘째가 되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외면한다면... 이것은 순종이 아니요, 불순종입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나아가기 위해

계속 ‘원수 사랑'을 시도하는 순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죄악된 세상을 뒤집어서...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사역에

능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07.09.23 설교 정리 *원제목 : 신앙생활의 최고봉, 마5:43~48

 

 [주제별 분류] 은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