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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일 vs 위대한 하나님 왕하10:34 성영 탠 Siang-Yang Tan 2007.10.15.
▲위험한 경향
지금 미국교회는 물론이고, 아시아와 전 세계 기독교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있는데,
그러나 그 속에 매우 위험한 경향이 한 가지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꾸 ‘성공’에 대해 갈망하며 교회로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위대한 일’을 하겠다고 꿈꾸는 일에 너무 도취되어 있다.
▲윌리엄 캐리의 말에 관한 곡해
윌리엄 캐리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으며, 사람들은 그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Expect the great things from God,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and Attempt the great things for God.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그런데 사람들이 그의 말을 곡해하고 있다.
캐리가 강조한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은 ‘위대한 일, 위대한 성취’이다.
세상의 가치관이 그대로 교회에 유입되어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성공’에 도취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뭔가 ‘성취’를 이뤄내고, ‘업적’을 남기고자 한다.
그런 자기 야망을 이루는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얻으려 한다.
여러분, 무엇이 기독교적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후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러분,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려고 분투하지 마시라!
대신에 <위대하신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어 무슨 ‘작은 봉사’라도 하든지...
그 일은 <위대한 일>이 된다.
▲‘일 중심’에서 탈피하자.
여러분, 하나님이 내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부르실 때도 있다.
만약에 하나님이 여러분께 ‘너는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라고 명하신다면,
여러분 심기가 과연 편하겠는가?
아니다, 대부분 내심 괴로워 할 것이다.
오늘처럼 ‘일 중심, 업적 중심의 사회’에서는,
‘일을 중단하고 가만히 쉬고 있으라!’는 제안은 모욕에 가깝게 들린다.
유교 문화의 아시아인들은 ‘업적, 출세’ 이런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이것은 사실 미국 백인들도 마찬가지다.
즉, 모두가 일을 버거워 하면서도, 일을 안 하고 쉬는 것은... 더 버겁게 여긴다.
오늘날 사회 문화가, 자꾸 무슨 일을 끊임없이 계속 하도록 사람들을 몰고 간다.
활동적인 사람activist이 우대받는 사회가 되고 있다.
일을 하되 가급적 ‘큰 일, 위대한 일’을 하도록...
끊임없이 잠재적으로 사람들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
여러분, 자기 야망에 도취되어 뭔가 큰일, 위대한 일을 하려고 늘 분주한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쉬는 것이 더 낫다.
이 단락의 요지는, 그래서 ‘일을 아예 하지 말라’가 아니다.
‘자기 야심을 위한 큰 일, 자기 야망을 위한 위대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을 섬기지, ‘위대한 일’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라 waste time with God!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일정 기간 동안에
주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라 waste time with God! 고 명하실 때가 있다.
외로운 광야 가운데서, 그 침묵과 고독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대면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는 때가 반드시 있다.
참된 기독교의 영성은
‘일 중심, 업적 중심, 성취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에 주님과 친밀한 관계... 이런 것이 더 본질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풍조의 영향을 너무 강하게 받아서,
‘일과 업적’으로써 ‘자기 신앙의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하다보니까
자꾸 오버하게 되고, 과장하게 되고, 더 나아가 외식까지 하게 된다.
▲참된 기독교 영성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
‘위대하신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큰 일/작은 일에 구분이 없다.
모두 다 동일하게 ‘위대한 일’이다.
*관련 글: 존 뉴턴, 종의 도리
우리는 하찮고 작은 일small thing을 행하더라도, 큰 사랑big love으로 할 수 있다.
주님을 위한다 하면서도, 그 이면에 자기 야망을 위해 자꾸 (큰) ‘일’ 벌이지 말고,
지금 굶고 있는 이웃을 위해 국 한 솥(작은 일) 끓여서 나눠주시라.
거동이 불편한 이웃 노인에게, 자기 차로 운전 봉사 한 번 해 드리시라!
그것이 참된 기독교의 영성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본질적 성경의 가르침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너무 ‘작은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부르심 과 예외적인 특별한 부르심
물론 우리 중에는 ‘큰 일’에 부름 받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래서 혹자는, 작은 개척교회로 출발해서 수 만 명 큰 교회로 부흥시키기도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크게’ 불러 쓰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예외적이며, 극소수 특정한 사람>에 국한 된다.
우리 <대부분의 신자들>은, ‘크고 위대한 일’이 아닌,
‘크고 위대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았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큰 일', '작은 일'의 구분도 재고해 보아야 한다.
위의 관련글 '존뉴턴의 종의 도리'를 꼭 읽어보시라! (노란색)
성도들은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충성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하는 대부분 일들은 99% '작은 일'들이다.
이것이 성경의 전반적 흐름이다.
이것이 바로 ‘제자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이다.
이 길을 가는 데는, ‘고난과 겸손’이 반드시 동반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일'이니까!
그래서 ‘고난과 겸손’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다.
이 때 우리 심령은 깊은 평강과 안식을 누린다.
‘큰 일’을 쫓아갈 때는 그런 평강과 안식이 없다.
대신에 강박관념과 불안과 초조가 가득하다. (후략)
<07,10,15. 성영 탠 박사 강의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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