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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 나아만의 자기중심성 치료

LNCK 2008. 6. 13. 23:19
 

◈나아만의 자기중심성 치료        왕하5:1~19



최근에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자존심이 조금 상해 있었는데,

하나님이 아래 말씀을 통해서 제게 해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편집자.



▲내 예상과 다르게 일이 처리될 때

(전략)

나아만은 여러 수행원들과 함께,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마차를 탄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계산이나 짐작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를 찾아가면, 이제 그 선지자가 황송하다며 나아와

안수하든지, 약을 바르든지... 친절히 나의 병을 고쳐주고,

제발 내 병이 나아야 할 터인데... 안 나으면 할 수 없고, 쯧,

어쨌든지 나는 그에게 선물을 주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리아로 돌아가리라!’


그런데 막상 되어지는 일들이 ‘자기 예상’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일어났다.

선지자란 양반은 전혀 예상 밖으로 처신하고 나왔다.


그 일개 변방의 선지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감히 자기 종을 보내어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만 전해 준다.


외교 의전 같은 것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를 똥개 취급하나?’

‘병 옮을까봐 지레 겁먹었나?’

‘이스라엘 왕이 (병 고쳐주지 말라고) 뒤에서 사주했나?’

순간적으로 별의별 생각이 그의 뇌리를 막 스치고 지나갔다.


▲내 생각에는...

나아만이 드디어 뚜껑이 열렸다.

그 순간 나아만의 입에서 아주 솔직한 자기 심리 상태가 표출된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왕하5:11~12


나아만 같이 지체 높은 장군이요, 인정받는 지도자는 보통 어떤 사람인가?

자기 머릿속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미리 다 정해 놓고,

거기에 다른 사람이 모두 맞춰 주기를 은근히/노골적으로 바란다.

 

내가 다른 사람/사역에 대해 ‘이러 이러해야 한다’고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서

그 사람이 만약 행동하지 않을 때, 불같이 화를 낸다.

한 마디로,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일처리 방식>이 너무나 뚜렷하다.

모두가 잔말 말고 그것을 수용해야만 한다. 아니면 불호령 or fire(해고)다.


▲이 나아만의 절규 속에서 바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이 나의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기대대로 나를 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은근히/대놓고 그에게 화를 내고

그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내 부족한 모습을 투사해서 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나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나아만 속에 퍼져있었음을

우리는 그의 말에서 알아챌 수 있다. 왕하5:11~12

자기가 모든 판단의 중심이 되어,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병

바로 그것이다... 바로 내 속에 있는 고질병이다.


이 병은 지도자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서서히 '바보'가 되어간다.

독일어나 영어로 바보 멍청이를 idiot 이라고 한다.

이 “이디�”이라는 말은 (미국 애들이 유치원가서 첫날 친구들에게서 배우는 욕)

‘자기만의~’, ‘자기에게 속한’을 뜻하는 그리스어 idios에서 왔다.


자기의 판단, 자기가 가진 가치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의 생각에 맞춰 주지 않을 때, 쉽게 분노하고 모욕감을 느낄 때,

나는, 나 자신만 생각하는 idiot, 즉, 바보가 되어간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참된 '관계'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바보!


▲뜻밖의 결과

모욕감과 분노에 떨고 있는 나아만에게 부하들이 다가왔다.

“장군님, 그 선지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왕하5:13


듣기에 따라서 이 말은 나아만을 더 모욕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너희들마저도 나를 무시하는 거냐?” 하면서 더 크게 화를 내며

그 부하들에게 화풀이 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인지, 나아만 장군은 조용히 자기 입술을 깨물거나

아니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기 자존심을 다 죽이고, 요단강 물속으로 향했다.


내 뜻이나, 내 생각으로 내 삶을 이끌어가고

다른 사람들까지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아만!


그러나 그의 몸이 물에 잠기고 또 잠기는 동안,

7번씩이나 ‘자기’를 꺾는 동안,

그의 존재 깊은 곳에서는 분명 어떤 내적인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면서 외적으로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자기중심적 병에서 치료 받다

정말로 나아만의 문둥병(또는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

하지만 문둥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자기중심성, 자기주장이라는 무서운 병에서

그는 자유함을 얻었다.


자기 생각을 버리니까, (자기 생각에는) 일이 안 될 것 같았는데,

도리어 일이 되더라는 것이다.


어쩌면 엘리사 선지자가 치료하려고 했던 것이,

그의 외적 문둥병 말고도,

그의 내적 자기중심 병이 아니었을까?


아니, 내적 자기중심 병이 치료되기 전에는

외적 문둥병도 치료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가 먼저 나아만의 나병을 치료하기 전에,

그의 자기중심 병을 먼저 툭툭 건드려 일부러 상처를 낸 것이 아닐까?

그래서 먼 길을 온 나아만 장군을 영접하기도 전에,

그를 문전박대한 것은 아닐까? 


▲자기중심 vs 하나님 중심

‘자기중심적’ 병에서 진정 자유로워진 사람만이

온전히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살 수 있다.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왕하5:17


만사에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살아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자기 식대로 규정하려던 나아만은

이제, 참된 중심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이다.

(나도 그렇게 변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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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례 받은 사람이다

나아만의 요단강에서 일어난 변화는,

내가 세례 받을 때 일어나는 변화이다.


세례란,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에서 죽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임을 확인하기 위해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건이다.


루터는 자신의 옛 자아가 살아나 영혼의 평정이 깨질 때마다,

자기 책상에 앉아 백묵으로 “Ich bin getauft.”(나는 세례받은 사람이다!) 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평온한 마음으로 책상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분도 내면의 상처이나 자신의 고집스런 자아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책상에 앉아 “나는 세례 받은 사람이다” 하고 써보기를 바란다.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흙을 만지며 요단강을 추억하듯,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베풀어진 세례를 회상하며,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데서 오는

가뿐함과 자유함으로써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 바란다...


<08.05.25. 인터넷 설교, 펀글을 토대로 정리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