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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2~2003

1406 경험의 차원, 깨달음의 차원

LNCK 2008. 7. 31. 23:48

◈경험의 차원, 깨달음의 차원               요20:27          -출처 보기-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7



◑1. 경험이 중요하다.


살아가는데 경험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경험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배고픔의 경험,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입니까.

사람이 배고픈 환경에 처하게 되면 아주 단순해집니다.

그리고 본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생각이 넓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또 실패의 경험, 이 경험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살아가다가 실패가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일부러 실패할 필요는 없지만

실패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를 소중한 기회로 맞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고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낙방의 경험도 좋은 경험입니다. 그 당시는 눈앞이 캄캄해 오겠지만

그 경험은 두고두고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런 낙방의 경험 없이 세상을 살면,

자신이 꽤나 능력 있는 사람인 것처럼 인식되어 자만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또 암담한 현실에 부딪쳐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중병에 걸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사람은 겸허하게 되고, 신비의 세계를 보게 되고,

침착하게 되고,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합니다.


이런 경험들은 살아가는 동안 참 소중한 체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우리조상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강조해왔습니다.


▶북한에 살다 월남한 분들은 이남 사람들 보다 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거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월남하는 과정에서 뼈저린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보통 길이었습니까? 그래서 그 길을 사선을 넘었다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그 사선을 넘어오는 동안 수많은 죽은 시체를 넘어왔을 것입니다.


그 사선을 맨몸으로 넘어와 이 땅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것이니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뼈아픈 경험들은 그때는 고되고 아팠겠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렇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교훈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해 줍니다.



◑우리민족은 고난의 역사를 경험한 민족입니다.

(타 민족에 비교해서 굉장히 큰 강점입니다.)


▶우리민족이 일본으로부터 압제를 당하는 동안

암담한 현실도 경험하고 죽을 고비도 넘기고 배고픔과 서러움도 경험했습니다.

나라 없는 설움, 내 땅에 살면서도 남으로부터 지배를 당하는 수치,

농사를 다 지어놓으면 모두 뺏기는 아픔, 젊은 처녀들이 공출당하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꿈과 미래를 잃어버리고 짓밟혀 살아가는 아픔 등

우리민족은 그런 일 아니었으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는 민족입니다.


우리민족은 누구를 밟고 침략하고 전쟁을 하는 그런 민족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사를 보면 모두 남에게 당하고 <고난당한 역사>가 전부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민족이 비로소 강해지고, 비굴함도 경험하고

나라 소중함도 경험하고, 민족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서 우리민족이 지혜로워지고 눈을 뜨게 되고 근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민족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때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고, 세계를 보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경험은 아주 유익한 체험으로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의 그 경험이 오늘 이 나라를 건설하는데 기여하고

의지를 발휘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습니다.


경험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점점 흘러, 그 귀한 일제의 고난의 경험자들도 한 둘 타계하고,

625의 처절함을 겪었던 세대도 점점 사라지고 있고,

군대는 월남전의 경험용사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2. 경험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


그런데 경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를 보고 깨닫는 지혜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지난날의 역사를 통해서, 지난날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간접 경험인) 역사를 보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고, 듣고, 배우고 나서, 스스로 판단해서

내적으로 깨닫는 것이 더 강한 힘이고 지혜입니다.


과거의 대구 지하철 방화 사고는 한번 체험으로 족합니다.

내가 꼭 직접 경험해야만 깨닫는다면 그것은 무지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모든 것을 꼭 자기가 직접 체험해야만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고난이 많을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체험하지 않고도, 듣고 가르침만 받고서도

얼마든지 경험 이상으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에 교훈을 주실 때 보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매를 드시지 않습니다. 한사람만 매를 때리십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그를 보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랬는데도 깨닫지 못하면, 또 때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는 또 때리셨는데 지금 신약시대는 또 때리시지 않습니다.

그냥 놔두십니다. 그 그냥 놔두시는 것이 바로 저주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인가 매를 맞는 것이 아니고

아주 무서운 화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구약시대 때 보다 어쩌면 더 무서운 방법으로

오늘날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교육하시고 움직이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경험이 다가 아닙니다.

경험보다 더 좋은 것은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이 복중의 복입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예수께 와서 병을 고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앉은뱅이, 소경, 혈루병자, 중풍병자 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께 와서 병을 고치고, 기적을 보고 경험하고, 직접 목격했습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하고, 체험했으면 끝난 것 아닙니까?

더 이상 보여줄 것이 무엇입니까? 


그랬으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믿음이 컸어야 합니다. 믿음이 깊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경험하고 체험하고 목격한 사람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으실 때, 모두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복음서를 보면 그중 한사람도 후에 제자가 되고, 무슨 일을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경험하는 일이나 체험이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 체험이 다가 아닙니다.

무지한 자는 보여주고, 만져주고, 쥐어주어도.., 뻔히 보고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경험이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그들이 출애굽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까!

그들은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 열 가지 재앙은 재앙중의 재앙이고,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애굽인들은 장자가 다 죽는데, 그들은 안전했습니다.

이런 기적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또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갈라진 길로 직접 통행한 사람들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이 내려준 만나를 먹었습니다.

바위 속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마신 사람들입니다.

그 정도면 더 이상 보고 체험할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백성들은 매일같이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론을 통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하나님이다 하고

섬겼습니다. 무지하고 완악해서 그렇습니다.

그만큼 인간이 타락하고 순전성을 잃어서 그렇습니다. 참 불행한 모습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49:20

 


◑마치는 말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경험>이고 <체험>입니다.

이 경험과 체험은 사람에게 힘이 되고, 자신감을 주고, 능력이 되어줍니다.

또 삶에 지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믿음)은, 경험보다 수준이 높고, 체험보다도 그 차원이 더 높습니다.


참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보고 믿는 것은 인간의 자질입니다.

그런데 보지 않고 믿는 것은, 하늘이 주는 은혜의 선물이고 지혜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고 체험하고 만져보고 믿는 것이 아니고,

<경험>의 차원을 넘어서

은혜와 지혜로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6,25의 역사가 오래되어서 경험자들이 사라진다고 염려할 것 없습니다.

3.1절의 역사가 오래되어 체험자들이 없어진다고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때의 역사가 있고 교훈이 있습니다.


그 역사와 교훈만으로도 족합니다.

그 역사의 교훈으로 깨닫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세상이, 건전한 세상입니다. 

 

<03.03.02.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요약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