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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 사랑하므로... 두렵지 않습니다

LNCK 2008. 10. 17. 23:12
 

◈사랑하므로... 두렵지 않습니다       요3:16        인터넷설교 편집


요즘같은 불경기에, 나는 돈/건강/지위가 더해져야 행복하겠노라고 기도하는데,

주님은 내게 사랑을 더해 주십니다. 그래야 내가 참으로 행복해 진다고...

 

 

요3:16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을 2가지만 설명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매 맞아도 달려와서 덥석 안기는 자식

5살 난 아들이 말썽을 부리다가 아주 값비싼 장식품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엄마가 열을 받아 아들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그런데 종아리를 맞던 아들이 갑자기 엄마의 목을 앉고는 울면서

“엄마, 엄마도 한번 맞아봐, 얼마나 아픈데, 내 다리에 피나면 좋아?” 하니


엄마가 그만 아들을 안고 울면서

“엄마가 잘못했다. 얼마나 아팠니? 다시는 말썽 부리지마!”


그 장면을 보고 목사님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자식을 기르다 보면 가지각색인데

체벌을 하면.. 도망치며 부모의 맘을 아프게 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맞으면서도 엄마 품에 뛰어드는 자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OOO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제대로 깨달은 성도는

설령 잘못해서 하나님께 매 맞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품속으로 파고듭니다.

평소에 그 사랑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 손으로 치시나, 다른 한 손으로 붙드신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요.


▲행위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못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상은 상식적으로 사실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불순종 하는 여부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징계하실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하나님이 OOO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입니다.

즉 나 자신의 행위의 선/악에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혹시 징계를 받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맞는 것이지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없다는 것입니다.


순종의 삶도

사랑에 감격하고, 사랑에 더욱 깊어져 가면서.. 자발적으로 순종의 삶을 삽니다.

율법에 억눌려서 억지로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참 신앙의 길이 아닙니다.


▲요한이 깨달은 무조건적인 사랑, 요3:16

내가 말씀대로 좀 살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런 생각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들겠죠.

그러나 이런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못 깨달은>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게 인간적 수준의 품격이 낮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제대로 사느냐/못사느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못 받느냐와 (큰 그림으로 볼 때)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죄인 된 상태에 있어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허물투성이인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무조건적 사랑, 롬5:8

우리가 의로워서 독생자를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 상태로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상대가 사랑 받을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해서 죽고 못 살던 사람들도

상대의 조건이 바뀌면 돌아서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합니다.

매일의 생활이 감사합니다. 예배가 즐겁습니다. 교회생활이 천국입니다.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이 힘들고 짐이 되시는 분이 계십니까?

요3:16절을 암송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멸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그 대가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아들을 주셨다면 못 주실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화 - 독생자를 버려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

1937년, 미국 미시시피강을 가로지르는 긴 철교가 놓였는데,

이 철교는 중간 부분이 위로 들려 올려 지도록 만들어져서

배가 지나갈 때면, 다리가 올려지고

배가 지나간 후에 다시 내려져 기차가 지나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다리를 조정하는 책임을 맡은 존 그라피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침 이 사람의 7살 난 외아들 그레그가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찾아왔습니다.

아빠인 존 그라피스는 기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전망대에 올라가

아름다운 관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렸습니다. 존 그라피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다리를 올려놓은 채로 전망대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계실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들 그레그가 아버지 뒤를 따라 내려오다 떨어져

기어에 왼쪽 발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기계실 창문 너머로 아들이 기어에 발이 걸린 채로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대쪽을 보니 수백 명이 탄 멤피스행 특급열차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존 그라피스는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다리를 올려 둔 채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을 살리느냐/수 백 명 승객의 목숨을 살리느냐 기로에 놓였습니다.


몇 십초 동안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고, 머리의 피가 거꾸로 쏟는 것 같았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존 그라피스는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며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육중한 굉음과 함께 기어가 돌아갔습니다. 아들은,,,


철교의 다리는 내려졌고 그 기차는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존 그라피스가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니

창가에 한 여인이 화장을 고치고 있었고, 신사가 신문을 들고 읽고 있었습니다.

또 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재잘거리고 있었습니다.


존 그라피스는 “당신들을 살리기 위하여 내 아들을 죽였다!

당신들을 살리기 위하여 내 아들을 죽였다니까!”하고 외쳤지만

기차에 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 피맺힌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큰 사랑을 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리시고 나를 사랑하신다!’ - 이 확신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섭리를 이해하면, 불만이 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라면

내 생활과 환경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가?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내가 미련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므로’ 요셉은 자신의 환경을 원망, 탓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해했습니다. 자기의 철천지원수인 형들까지 다 이해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모두 은혜, 그때 당시에 깨달으면 더 큰 은혜

제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우리 가정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저희 집은 잠자리가 좁아서, 저는 교회 성가대 의자에서 3년을 자야 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가끔씩 혼절하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군 입대 후에는 더 어려운 일들이 겹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하지 못한 저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후에 돌이켜 보니, 그 어려움은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그 일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고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이해할 수 없어도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결국은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이다”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내 삶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항상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로 믿으면, <세상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믿음이 무엇인가?’ 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믿는다. 믿습니다!” 하는데

믿음을 가졌다는 교인들의 생활이나/세상 사람들의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 믿음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나중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깨우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치시려고 실례가 되는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고향을 떠나라고 하였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정말 겁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단적으로 말할 때 썼던 표현 중의 하나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떠나라는 말씀에 떠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믿었기 때문에 그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도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었고,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도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 주심을 믿었기에

소년이면서도 9척 장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 장군 앞에서 아무도 그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지 않을 때

비록 소년이었지만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나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은 전혀 무섭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되면,

세상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심판도 두렵지 않습니다.

심판도 있고, 지옥도 있고, 영원한 형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믿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것이 믿어지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람도 두렵지 않고, 시험도 두렵지 않고, 환란도 두렵지 않습니다.

무서운 것이 내 안에서 떠나버립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너무너무 놀라운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한번도 그동안 우리가 살아보지 않았던 믿음으로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하면 모두 견딥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영화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 영화는 유대인들이, 러시아에서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

고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너무 너무 살기가 힘이 드니까 주인공의 아내가 불평을 말합니다.

그러자 주인공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나를 사랑하오?"


아내는 이 말에 대꾸도 않고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당신에게 시집와서 25년 동안 행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둥

이 어려운 살림과 궁핍 속에서, 아이 낳고 고생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불평을 다 듣고 나서 또 아내에게 묻습니다.

"잘 알았소. 그렇지만 다시 묻겠소. 여보, 나를 사랑하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내 마음에 사랑이 식고,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고...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고통도 즐거움이 되고, 가난도 기쁨이 됩니다.

사랑이 있으면... 신앙생활이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 고전13:7

사랑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사랑이 없으면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때때로 우리가 생계 문제로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기도하면, 주님은 물으십니다.

"OO의 아들 OO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너를 지극히 사랑하는데,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

<2008.08.07. 인터넷설교 스크랩, 편집                 [주제별 분류] 사 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