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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만 내세우고, 자기는 잠잠하기

LNCK 2008. 10. 18. 21:12

예수만 내세우고, 자기는 잠잠하기                 시46:10      설교 축약

 

 

▲예수님이 내주, 동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고 산다는 일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고,

나와 동행하시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먼저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세례요한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사역도 예수님보다 먼저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인기 절정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공생애 초기에는, 어느 면에서 보나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선 자였습니다.

그렇다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말할 때,

한쪽 다리를 떨면서 약간은 건방진 어투로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는 내 동생뻘이지요.

사역자로서 제가 선배라고 할 수 있지요, 뭐.” 라고 말하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말도 안 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힘, 건강, 능력을 주셔서 하신 것인데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합니다.

 

“제가 목회를 잘 했지요. 제가 힘을 좀 썼지요. 제 가족들이 큰 몫을 했지요.”

이것이 예수님 앞에서 다리 떠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인 것을 아십니까?

아직 예수님을 깊이 모르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그렇게 드러낸다 말입니다.

 

▲잠잠한 사람이 됩시다.

우리는 내 생각 내 고집 내 원함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성경말씀, 하나님의 뜻까지 빙자해 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말은 자꾸 우리 자신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 의견, 내 생각, 내 감정, 내 마음에 있는 분노,

내 마음에 있는 혈기, 그런 것을 자꾸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떨어진 사람의 증거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앞세우기를 원한다면,

먼저 잠잠하게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46:10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려면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건방진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어려운 어른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될 때

말이 함부로 나옵니까?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럽지요.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가로막을까봐 얼마나 조심스럽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데 예수님이 내 삶을 통하여 드러나려면

가만히 있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 앞에서(우리는 24시간 그 앞에 있습니다) 말을 참을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설교, 예수님을 드러내는 설교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너 왜 그렇게 설교 준비를 은혜롭게 하려고 애를 쓰느냐?’

 

아니, 설교 준비 은혜롭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질문을 통해서 제게 말씀하신 것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 하나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보다는,

‘이왕 설교하는 것,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지.’

이런 인간적인 욕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설교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인데도

설교자 자신이 자꾸 드러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면 설교를 해도, 저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설교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집안일을 하든지 청소를 하든지, 직장 일을 하든지 

어떻든지 예수님을 드러내려고 하면서 산다면... 그는 진정 주님의 제자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예수님을 높여드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워낙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면, 하나님이 이기시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선배 목사님과 무슨 일로 분쟁에 휩싸였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시시비비를 분명히 밝히고

일의 전후좌우를 밝혀서 누가 보아도 ‘아, 그 선배 목사님이 잘못했구나’

하는 것이 다 드러나도록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지지자도 모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위의 권위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너무 억울하더랍니다. 너무 답답하더랍니다.

그러나 기도할수록, 나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이것이 내 자존심을 세우는 일, 나의 의를 내세우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시비비만 따지다가 만약 교회가 큰 혼란에 빠진다면

하나님이 결코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깨달아져서

결국 자기가 나서서 모두 사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

교회를 분란에서 건지시려는 하나님이 이기셨고,

마귀와의 영적전쟁에서 하나님이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자기의 패배와 죽음’이 먼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과 또 내 의가 워낙 강해서

때때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주 건방진 노릇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은 쉬우나, 죽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14:7~8

 

 

여러분, 우리의 고민은 ‘사는 것’은 주를 위하여 할 수 있겠는데,

‘죽는 것’은 주를 위하여 쉽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때.. 나도 따라 영광을 받는 일은 즐겁고 좋은 일인데,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일이 이루어져야 되기 위하여

내가 죽어야 되는 일은.. 참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주를 위하여 할 수 있겠는데,

실패는.. 주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실패도 주를 위하여 할 수 있다는 본을 보았습니다.

바로 스데반 집사로부터 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은 것 생각하면, 그는 큰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그 일로 인해 사도 바울이 일어났고, 그리고 엄청난 복음의 열매가 맺어졌고,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 앞에 말할 수 없는 영광의 존재가 되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깊이 알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면 내가 성공하느냐/실패하느냐 상관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면 충분한 것입니다. 

 

▲자기 옷을 찢은 사도바울

사도행전 14장에,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라는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루스드라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오셨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으며>

무리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행14:15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고쳐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바울 되게 한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교회에 유익한 존재입니까?’

제 스스로 ‘하나님께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설교를 잘 하냐/못 하냐로 판단하실까?

심방을 잘 하냐/못 하냐로 판단하실까?

교회 행정 능력으로 판단하실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능력의 차이는.. 하나님이 보시는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언제나 예수님만 앞세우는 자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도, 제가 유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능력의 많고 적음이 하나님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하나님께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제가 유익한 존재입니까?”

'나는 언제나 스스로 잠잠하고, 예수만 앞세우고 있습니까?'

 

<06.10.01 설교스크랩, 축약       *원제목 ; 언제나 예수님을 먼저 앞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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