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측 고전12:12 도서 읽고 정리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2
◑거듭남의 패턴도 다양하다
▶P형 크리스천은, 자기가 언제 거듭났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사실 ‘거듭남’이 무엇인지에 관한 견해가 사람마다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냥 모태교인으로서 계속 예수를 믿어 왔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점진적progress이란 뜻에서 P형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R형 크리스천은, 자기가 언제 거듭났는지 확실히 안다.
적어도 사춘기가 지난 이후에,
‘죄의 권능’(죄의 무서움)에 대해 확실히 깨닫고
자동차 사고를 세게 당하면 그 기억을 절대 안 잊어버리듯이
예수를 만나고 거듭나게 된 ‘강력한 회심 radical conversion’의 체험이 있다.
편의상 R형으로 분류.
이들 R형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체험을 단순한 거듭남 born again과 구분하기 위해
‘회심conversion’이란 말을 잘 쓴다.
▶문제는, 강력한 회심을 체험한 사람들 중에
어릴 적부터 예수를 믿어온 사람들,
또는 단순한 방식으로 신앙을 결신한 사람들을 두고서
‘저들은 아직 구원 받지 못했다’고 의심하고, 억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강력한 회심을 강조하는 전통은,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피니 등
과거에 한 시대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주장이기도 했기에
더욱 신빙성이 뒷받침되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체험한 방식을 선호/옹호하게 되어있다.
다만 우리가 절대 조심해야 할 것은
내 체험과 내 판단을 근거로..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비난하는 일이다.
이것을 찰스 콜슨은 ‘억측의 죄, sin of assumption’ 라고 부른다.
찰스 콜슨은 R형 크리스천이다.
그래서 그는 간증집회를 할 때, 자기의 강력한 회심 체험을 나눈다.
문제는 그의 부인이 P형 크리스천이라는 점이다.
콜슨이 집회를 마치고 나면
거기 참석한 R형 크리스천들이, 찰스 콜슨의 부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콜슨 부인, 당신은 언제 거듭나는 체험을 하셨나요?”
그러면 특별히 간증 거리가 없는 P형인 그의 부인은,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긴장하고,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것은 단지 제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찰스 콜슨은 참 딱하네, 자기 부인이 아직 거듭나지 않았으니까..”
▶사실 ‘구원 받은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우리는 ‘억측의 죄, sin of assumption’를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자기 심중으로 뚜렷한 확신이 있더라도
1%라도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문제는 다만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이런 억측 대신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호 존중과 하나됨의 유지’이다.
그런 억측은, 역사적으로 교회 공동체를 항상 분열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이런 것을 ‘억측의 죄, sin of assumption’ 라고 부르는 찰스 콜슨의 주장을
나중에 뒤엎는 또 다른 주장이 나올지 모르나,
현재까지로는 <그런 오만한 판단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대세이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부인 루스 그레함도
어릴 적부터 쭉 예수를 믿어왔는데, 아직 레디컬한 회심의 체험은 없다고 한다.
찰스 콜슨 「이것이 교회다」p.130.
그리고 세계 선교지를 둘러보면, 4영리보다 더 간단한(엉터리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있다.
십자가의 한 편 강도가 구원받았다고 볼 때,
아무도 그런 단순한 방식으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서
‘당신은 아직 구원 못 받았다’고 억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해야할 일은 억측 대신, 상호 존중과 기본적인 존경심이다.
‘자기 체험과 다른 방식은 다 잘못 되었다’고 무조건 폄하해서는 안 된다.
P형이나 R형이나 모두 의인이면서도, 또한 모두 죄인이긴 매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회심을 체험한 R형 크리스천도, 깨어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실족할 수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일례로 다윗처럼.
◑가톨릭이나 동방정교는 정통 기독교가 아니다 라는 주장
그러므로 그들이 받은 구원은 ‘의심스럽다’고 믿는 개신교인들이 아직도 많다.
비슷하게 개신교인들이 ‘정통 기독교’에서 떨어져나간 분파라고 믿는
가톨릭 교인들도 일부 있다.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공유, 그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 등
기독교의 기본 신앙의 90%(수치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는 서로 일치한다.
개신교가 가톨릭의 ‘성상숭배, 마리아숭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는 반면,
개신교도 ‘물질우상’을 섬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후자가 더 무서운 우상숭배다.
가톨릭 신자 중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고,
개신교 신자 중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가톨릭, 개신교가 마찬가지다.
▶찰스 콜슨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렇게 교파가 다른 것을 두고 서로 약점을 찾아내려 하지 말고,
반대로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개신교인들이, 가톨릭을 무조건 비판적 시각으로 보지 말고,
<저들 신앙의 장점은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찰스 콜슨 자신이, 침례교 전통을 굳게 갖고 있으면서도
가톨릭 신학에서도 많이 배운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확고한 교리적인 신념을 갖고 있지만,
다른 교리를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람들과의 사귐을 통해 영적으로 깊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가톨릭, 영국성공회, 정교회, 루터교 형제자매들의 도움이 컸다.
나는 그들과의 영적 사귐을 통해서 안수, 성찬식, 그리고 다른 예배예식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상게서p.154
(우리나라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려면
개신교와 아울러 가톨릭도 크게 부흥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가톨릭의 보편구원론universalism을 거의 대부분 개신교가 수용할 수 없지만,
일반 신자들은 그런 것 안 따지고, 자기 개인구원을 중요시한다.)
가톨릭에 진정한 구원이 없다는 주장은 역시 ‘억측의 죄’에 해당한다고 본다.
반대로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편견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므로,
너무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양 단정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더 테레사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신중한 크리스천은 그런 천박한 비판에 자기를 연루시키지 않는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나는 가톨릭 신학자들의 연구가 내 견해를 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우리와 다른 전통을 존경하고 귀중히 여기는 태도는
우리 신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 겸손하게 만든다. 상게서 p.154.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주께서 우리를 아신 것같이 우리가 온전히 주님을 알게 되는’ 고전12:13
그 때를 향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가운데
우리가 한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이 신비 속에서 서로를 존경해야 한다.
사탄의 가장 큰 무기가 불화와 내분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위대한 목사 헬무트 틸리케는 “하나님께서는 한 형제인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로 분쟁하기보다는, 상대방보다 자신을 냉철하게 살핌으로써
각자가 좀 더 성숙해지기를 원하신다”고 충고했다. p.156, 157.
◑방언, 신유, 성령의 체험에 관하여
마찬가지다. 이런 것을 ‘귀신의 역사’라고 은사주의자를 깎아내려서도 안 되고,
(실제로 미국 침례교는 오랜 세월동안 오순절 운동을 인정하지 않았음)
또한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너무 자기 체험을 우월하게 높여서도 안 된다.
한 외국 교회지도자가 한국의 어느 찬양으로 유명한 장로교회를 방문하고
이렇게 감탄했다.
“한국 교회의 예배 열기가 놀랍습니다.”
그러자 한 오순절주의자가 말했다.
“그래도 저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없을걸요?” (대부분 방언을 못 한다는 뜻)
그러자 그 분이 말했다.
“저렇게 춤추며 간절히 찬양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
<도서 편집 [주제별 분류] 믿음론
'분류 없음 > 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랑의 목적 1722 (0) | 2009.02.01 |
---|---|
사랑은 영원합니다 1721 (0) | 2009.01.31 |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비전 1719 (0) | 2009.01.30 |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1717 (0) | 2009.01.29 |
신앙은 일희일비 하지 않습니다. 1716 (0) | 2009.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