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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오픈 엔드 open-end 1730

LNCK 2009. 2. 5. 10:39

 

◈오픈 엔드 open-end                         행28:30~31                  설교 녹취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행28:30-31

 

 

◑사도행전의 오픈 엔드

 

▲마지막은 항상 열려있다. open-end

사람들은 누구나 무슨 일을 할 때 ‘빨리 끝내고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인생이란 것이 뭘 ‘빨리 끝내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빨리 끝내고 편하게 쉬려고 할 때, 또 다른 할 일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한 가지 일을 잘 끝내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세계가 열리게 된다. 항상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그 한 가지 일을 정성스럽게 잘 끝내야, 그 다음 일이 쉽고 더 좋게 열린다.

더 발전적인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계에서 open-end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무슨 거래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끝나지 않았다. 끝이 항상 열려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제적 용어로 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오픈 엔드’인 것 같다.

 

이 일만 치르면 끝인 것 같은데, 아니다. 죽을 때까지 새로운 일은 계속되고,

죽고 나서도, 천국과 영생에 새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인생은 ‘오픈 엔드’가 맞다.

 

▲사도행전은 끝이 나지 않았다. open-end

개역성경에 사도행전 마지막 구절은,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종결형으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은 그렇지 않다.

 

①그 마지막 문장의 끝맺음이 ‘부사’로 끝난다. ‘방해 받음이 없이’

이런 식의 문장은, 교육 받은 사람이 쓰지 않는 형식이라고 한다.

한 문장으로서 정상적인 끝맺음이 아니었다. 당시 문법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문맥상으로도 정상적 끝맺음 같아 보이지 않는다.

 

바울이 온 2년을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28:30~31

 

글의 문맥상 끝맺음은, 전체 내용 종합, 주제요약, 결론 등으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사도행전의 끝(↑)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복음서만 해도 끝맺음이 멋있다. 주인공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난다.

문학작품이나 연속극을 보면, 끝에 주인공이 죽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멋있기 때문에 작가들이 일부러 그렇게 몰고 간다고 한다.

더군다나 주님은 부활까지 하셨으니, 더 극적인 끝맺음이다.

 

여러분, 논문을 쓸 때, 결론 부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쓰면 절대 안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서두나 본론에서 나와야지, 결론 부분에 나오면 안 된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살짝 여운을 남기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명확히 끝을 맺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다른 사람이 사도행전을 계속 이어서 쓰라고 저렇게 오픈 엔드로 끝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한다.

거기에는 오늘날 우리도 포함된다.

 

 

◑내 인생의 오픈 엔드

 

▲나아가 우리 각자 인생도 마찬가지다. open-end이다.

나는 좀 더 세밀하게, 좀 더 정확하게 그 이유를 추적해 볼 때,

사도바울 또는 누가가 사도행전을 이런 식으로 마감한 이유는,

 

<성도들의 마지막은 항상 열려있다는 오픈 엔드의 비밀을

이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나) 누가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본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지막은 열려있다.

지금 어려우신가? 절대 끝장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 뒤가 열려있다.

그 다음이 반드시 있다.

 

▲오픈 엔드의 비밀

반대로, 잘 되고 계신가? 뭔가 성취하고 있으신가? 그게 끝이 아니다.

그 다음이 반드시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 조금 잘 되고 성취하고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것으로 너나 내가 할 것 없이 모두 착각하며 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시작과 끝, 다시 시작과 또 끝,

또 다시 시작과 끝을 반복하다가(오픈 엔드의 삶을 살다가)

결국 천국에서 새롭게 또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되어있다.

지금의 실패, 지금의 성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는 이것을 ‘오픈 엔드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이 원리는 자연세계를 봐도 적용된다.

하루가 지나고 밤이 오면, 그 다음 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다시 해가 떠오른다.

한 해가 끝나면,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니까 하루의 끝, 한 달의 끝, 한 해의 끝은,

막혀있는 세계가 아니라, 열려있는 세계인 것이다.

 

‘졸업이 시작’이라는 말은, 너무 자주 듣기 때문에 거론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는 대학교 졸업식을 commencement라고 하는데, ‘시작’이라는 뜻이다.

학문을 다 배워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오픈 엔드’의 내 삶에 적용

 

▲1. 사도행전이 ‘오픈 엔드’로 끝나는 것은,

하나님 일에 우리가 끼어들도록involve 초청하신다.

많은 성도들이, 내 계획, 내 꿈,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인발브 시키려 한다.

나는 여기에 <신앙의 큰 분기점>이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소원에, 내가 끼어들어야(인발브되어야) 한다.

 

우리가 오픈 엔드의 삶을 살아가는데,

한 마디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마디의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내 꿈과 계획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꿈과 계획에 내가 끌려들어가는 것인가?’를 분명히 점검하셔야 한다.

 

내 아젠다agenda에, 내 인생의 계획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신앙은

아직 초보에 머무는 신앙일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이 이렇게 끝이 열려 있는 것은, 그 열린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다.

내 계획에 주님을 끌어들이지 말고, 주님의 계획에 내가 인발브 되는 것이다.

 

▲2. 다음 세대와 연결되는 오픈 엔드의 삶

2008년 여름에 개성 성균관(박물관)에 가보니

학이 그려진 상감청자를 볼 수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서 오래 쳐다보았다.

 

안타까운 것은, 상감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청자의 제조 기술이

그 시대에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 다음 세대로 전수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그 상감 기법의 청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에 ‘동역’이란 말이 나오는데 (특히 빌립보서에)

같은 세대 안에서만 동역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가 다음 세대와 동역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오픈 엔드의 신앙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인생을 계주(이어 달리기)로 본다.

앞 사람의 바통을 받아서, 자기가 달리다가, 다음 세대로 바통을 이어주는 것이다.

그 연결 고리로서의 자기 세대 사명을 잘 감당한다.

 

위대한 인물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다른 사람들을 열어주는 인생을 살았다.

즉 ‘오픈 엔드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연속극 허준>에 보면, 허준의 스승되는 유명한 의원이 나오는데,

그가 임종할 때, 제자인 허준에게, 자기 몸을 해부하도록 내어준다.

그 때만 해도 해부학이 발달하지 못해서, 사람 속을 잘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그 스승은, 다음 세대인 허준을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예수님도, 자기 혼자서, 자기 세대에, 모든 세계를 두루 다니시면서

전 인류를 전도하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다 이루시고는, 나머지 세계 복음화는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

그 바통을 다음 세대에 잘 넘겨주셨다.

 

우리가 죽으면 다 천국으로 가서 새로운 삶이 열리지만,

살아 생전에도, 자기 죽음을 통해서 다음 세대가 내 바통을 이어 달릴 수 있도록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그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사람이

바로 오픈 엔드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3. 누가는 바울에 주목하지 않는다.

아시듯이 사도행전은 그 유명한 1:8절에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이 복음이 전파될 것이 기록됨으로 시작하고 있고,

28장 마지막에서 그 복음이 로마에 까지 전파되었고,

그것도 ‘방해 받음이 없이’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 복음 전파에 사도바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는 했지만,

사도바울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사도행전의 결론 28장에서

사도바울을 높이며, 사도바울의 전도사역을 개관하며, 바울 사역을 결론 내리고 있지 않다.

 

사도바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그 복음이 계속 전파되고 지고 있다...’ 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되, 일부 사람들은 자기가 유명해져야 복음이 더 잘 전파된다는 의식을 가지는데,

전파자가.. 복음보다, 예수님보다 더 유명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4. 방해 받음이 없이 복음을 증거한 바울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방해 받음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본문에는, ‘방해 받음이 없이’ 전하였다고 한다.

 

방해 받음이 있을 때는.. 방해가 있어야 복음이 더 잘 전해지기 때문이고,

방해 받음이 없을 때는.. 방해가 없어야 복음이 더 잘 전해지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할 때, 늘 방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 방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래 저래 피하다가는, 아무 경우에도 못 전한다.

방해가 있을 때에는, 방해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면 된다.

바울은 감옥에 가서도 전도하며, 서신서들을 썼다.

 

방해가 없을 때에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면 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면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장애’로만 보는 사람은,

자기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 ‘장애’가 계속 될 것이다. 

 

<09.01.11. 인터넷설교 녹취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