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수인들보다 더 악한 사람 시90:8 편집자 칼럼
주께서 우리 죄를 주님 앞에 내놓으시니, 우리의 숨은 죄가 주님 앞에 환히 드러납니다 시90:8
▲욕하는 그 사람을 닮는 이유
시어머니를 욕한 며느리가, 세월이 흘러 나중에 자기가 시어머니가 되면,
신기하게도 자기가 그렇게 욕한 그 시어머니를, 고스란히 닮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그렇게 욕한 아들이, 세월이 흘러 나중에 자기가 아버지가 되면,
신기하게도 자기가 그렇게 욕한 그 아버지를, 자기가 고스란히 닮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다른 요인이 있겠지만
영적/신앙적인 요인을 따져보면,
‘시어머니의 죄를 비판만 했지, 자기 속에 있는 죄성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남의 죄는 잘 발견했는데, 자기 죄는 발견하지 못하니까’
결국 시어머니와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자기도 시어머니와 똑같은 죄를 범하더라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을 보고 기절한 유대인 생존자
2차대전이 끝나고,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했던 아이히만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때 증인으로 나온 유대인 집단수용소 생존자 ‘예힐 디누어’가
재판정에 나온 아이히만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진짜 저 사람이 맞나?)
갑자기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그에게 소름끼치는 과거가 되살아났다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힐 디누어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재판정 바닥에 쓰러져 울었던 이유는
‘아이히만이, 그가 항상 생각해왔던 사악한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고,
너무나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는 점에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힐 디누어는 정말 정직하고 용감한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두려워졌습니다.
나도 그와 똑같이 그런 잔인한 짓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이히만을 증오하고, 침뱉고, 욕을 퍼부어버리면,
자기 소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대중과 여론이 그것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힐 디누어는, 정말 소신 있게 정직한 자기 고백을 했습니다.
‘저가 저토록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데 놀랐다’
라는 것입니다.
▲죄, 죄성을 방치하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럼 무엇이 평범한 아이히만을 수백만을 학살하는 살인마로 만들었을까요?
그 속에 있는 ‘죄’입니다.
죄를 방치하고 그대로 두었을 때,
그런 상황이 오고, 그럴 조건이 오면, 사람은 갈데까지 가는 것입니다.
가설이지만, 그런 상황이 오고, 그럴 조건이 오면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예힐 디누어는 그 사실을 정직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죄성을 끊임없이 회개하며, 정결케 다루어야 합니다.
아직 그럴 상황, 그럴 조건이 오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가 죄를 숨길 수 있고,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착각)만 있으면,
보통 사람은 누구나 흉악범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자기 속에 있는 죄와 죄성을 방치할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나면, 그럴 상황, 그럴 조건이 되면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끼리
서로 총을 쏘고, 죽창으로 찔러 죽였던 뼈아픈 역사를 우리 민족이 갖고 있습니다.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이념이 다르다고, 서로를 죽였던 것입니다.
죄가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돌변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 죄성이 무서운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예수 피로 끊임 없이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연쇄살인범을 면담해 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범인 역시, 아이히만처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가 큰 정신병자일 것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많은 경우 ‘매우 이성적’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런 보통사람, 그런 이성적 사람이
왜 연쇄적으로 그런 악행을 저질렀을까요?
그 속에 있는 죄가 그를 악한 사람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그 속에 있는 죄를 그냥 방치하고, 키웠던 사람입니다.
그가 보통 사람과 달랐던 점은,
그럴 상황과 그럴 조건이 그에게 왔고, 그는 죄성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누구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대하면, 일반 사람들의 태도가,
서두에서 언급한 ‘시어머니를 욕하는 며느리’처럼 행동하는 것,
즉, 자기 죄성은 못 보고, 남의 죄성만 보고 혀를 차는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의 태도는, ‘예힐 디누어’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자기 속에 있는, 똑같은 죄성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성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소리를 지르며 울었던 것입니다.
▲이 글의 요지는
크리스천들이 그런 흉악범을 보고 손가락질만 하고, 비판만 하면서
아담의 후예인 보통 인간이 가진 <자기 죄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기독교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흉악범을 볼 때마다
인간의 (내) 죄성이 얼마나 무서우며,
그것을 십자가에서 처리해야 하고(거듭나야 하고)
거듭난 목욕 이후에도 ‘손과 발을 계속 씻어야’ 함을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서두에 언급한 ‘며느리’처럼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를 비판만 하다가는, 그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불행하지만, 이런 일도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헨리(가명)씨는 그 지역 사회와 자기 교회의 중추적인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직장 성경공부 모임 주최자로 지명도가 높았습니다.
그는 그 도시의 정, 재계 유력한 인사들을 초청해서
자기 사무실에서 매주 성경공부 모임을 주최했고,
그 모임에 유명 강사를 초빙해서 성경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한 번은 찰스 콜슨이 그 모임에 강사로 초빙되었고,
그는 ‘인간의 죄성, 전적타락’ 이런 주제를 강도 높게 가르쳤습니다.
이 글의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아마 비슷한 내용을 가르쳤나 봅니다.
인간의 본성은 무시무시하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설교 후 질의응답 시간에,
그 성경공부 모임의 주최자인, 거기 참석한 모든 유력 인사들에게 존경받는
헨리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글쎄요, 나는 ‘모든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선한 사람이고, 지금까지 일평생 선하게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충실히 출석하고 있고, 또한 사회봉사도 많이 했습니다...”
근엄한 그의 음성은, 그 자체로 무게와 권위가 있는 듯했습니다.
순식간에 성경공부 장소는 분위기가 조용(싸늘)해졌습니다.
이에 설교자 찰스 콜슨이 말했습니다.
“헨리 씨,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 싫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 스스로 그렇게 믿고 이제까지 살아왔다면,
당신이 행한 그 많은 선한 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히 깨달은 저 교도소 안에 있는 수감자들보다,
지금 천국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나중에 헨리 씨는, 자기가 죄인임을 철저히 인정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흉악범을 볼 때, 또는 내 주위에서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
자꾸 그들의 죄만 보고, 그들을 비판만 하지 말고, (크리스천의 태도가 아님)
그들의 ‘거울을 통해' 내 속에 있는 죄성, 내 속에 있는 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죄성이 사람을 얼마나 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거울을 통해’ 깨닫고
내 죄성을 예수님 앞에 늘 내어놓고 회개하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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