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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풍랑을 헤쳐 나가는 3가지 길 1753

LNCK 2009. 2. 18. 21:35
 

◈경제풍랑을 헤쳐 나가는 3가지 길         행27:22~26       설교 녹취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경제위기>라는 큰 풍랑을 맞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풍랑은, 엄청난 허리케인이 되어

우리나라를 향해 밀어닥치는 중이다.


어느 신문에, 이번 경제위기로 미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겠지만

그 다음으로 일본과 한국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어떤 세계적 경제전문가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일본과 한국은 경제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은데,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수출이 잘 안 되니,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손해를 많이 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듣기로는, 10년 전 IMF 때는, 우리나라 경제는 어려워도

세계 경제가 괜찮아서, 수출을 많이 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내었는데,

지금은 수출까지 어려워지니까.. 우리가 상당히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긴장해서 기도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경제적으로 큰 풍랑을 만났다.

특별히 이런 풍랑이 닥칠수록, 경제 기반이 약한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우리 교우들이 대부분 서민들이라서, 저도 염려가 많이 된다.


▲풍랑 속에서도 담대한 한 사람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 라는 큰 태풍을 만났다.

바울은 지금,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는 항해 중이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에 부딪히고, 돛이 다 찢어지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선장과 선원들은 배의 모든 짐을 다 바다에 내버리고 사투를 벌였지만

‘구원(구조)의 소망이 다 사라졌다’고 했다. 행27:20


배는 하늘로 치솟았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람들은 토하고 뒹굴었다.

해와 달을 보지 못한 날도 며칠 되었다. 살 희망마저 다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한 사람을 보게 된다. 바로 사도바울이다.

바울은 이 풍랑가운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배에 탄 276명을 안심시키고 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배는 잃겠지만, 여러분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을 것입니다.’ 27:22


도대체 바울은 어떻게 이런 담대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이 거대한 풍랑 속에서, 바울은 어떻게 그런 침착함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것이 바로, 오늘날 ‘경제 풍랑/개인적 풍랑’을 만난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다.



◑1. 주님의 음성을 들으므로... 바울은 담대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두려워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27:23~24


우리가 어떤 무서운 풍랑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떤 풍랑도 무섭지 않고, 어떤 광풍도 두렵지 않게 된다.


▲<단절>이 가장 무섭다

오래 전에 미국과 이라크가 전쟁을 할 때

일부 서방 사람들이, 바그다드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서

전쟁의 공포를 고스란히 겪었던 적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 바그다드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전쟁 와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미군의 공습이 아니었다.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것은, 외부와의 단절이었다.

시내에 폭격이 계속되고, 미사일이 날아와서 터지는데도

바그다드가 포위되어 있었고, 그들은 아무런 통신장비도 없었으므로

바깥세상과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자기들이 딱 고립되어서, 아무도 자기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그 생각!

그것이 자기들을 가장 두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하나님과 단절>이 가장 무섭다.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풍랑을 만났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이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또한 가족/회사/교회 공동체와의 단절이다.

이 단절이 사람을 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도

누군가 곁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나를 인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힘을 낼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풍랑을 이기고

두려움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


▲<연결>되면 살고, <단절>되면 죽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것이다.

어느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서 사람들이 두 곳에 갇혔는데

그래서 구조작업을 하는 수 일 동안 하는 과정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에 두 곳을 파고 들어가서 갱도를 연결했는데,

한 쪽은 거기 갇힌 사람들이 다 죽어있었고, 한 쪽은 다 살아있었다.


이유는, 죽어버린 곳에는, 아무런 외부와 연락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캄캄한 칠흙 같은 어두움 속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들이 며칠을 참으면 되는지, 구조 상황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그들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결과 다 죽고 말았다.


그러나 광부들이 살아있는 그 곳에는, 밖으로 연결되는 전화가 있었다.

그러므로 고립된 광부들은, 계속적으로 외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결국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었던 바울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속 소식을 들어야 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너는 내 자녀이다. 내가 인도하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듣는 사람은

우리는 인생에 닥치는 그 어떠한 풍랑 가운데서도, 이겨나갈 수 있다.


보시라, 지금 이 유라굴로 풍랑가운데서

바울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바울 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다.


망망대해에서 그 배가 나뭇잎처럼 거친 파도에 흔들렸지만,

‘배는 손상되겠지만, 사람들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을 것이다.’

라는 음성을 들으니.. 바울은 걱정할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연결>되어 있는가, <단절>되어 있는가?

여러분은 지금 이 ‘경제위기’라는 풍랑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계신가?

하나님과 기도로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으신가?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은

그가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바울이 기도도 안 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사자(천사)가 나타나

무슨 계시를 주실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바울은 풍랑가운데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바울은 하나님의 응답을,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하나님, 우리 민족을 건져 주소서, 주여, 제가 실족해서 미끄러지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이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 손을 붙잡아 주시면, 문제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아직도 하나님이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고 계신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내 가는 길이 내 길이 아니요, 주님이 시키시는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않노라,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지금 이 풍랑 속에서 듣고 계신가?

그러면 문제없다. 그 음성이 들리는 한 내게 두려움은 없다.


그리고 지나놓고 보면, 이 풍랑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내가 강하게 단련되는.. 귀한 축복의 기회가 됨을 알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런 내적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그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작은 풍랑에도, 금방 전복되어 가라앉고 말 것이다.



◑2.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바울은 풍랑 속에서도 담대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27:25 


▲믿음은... 사람을 담대하게 한다.

풍랑은 거세게 일고 있지만, 방금이라도 배가 깨어지고 다 수장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생명은 손상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으니

나는 그 말씀하신 대로 믿는다고 그 말씀하신대로 믿노라 하면서... 바울은 담대했다.


그렇다. 아무리 풍랑이 거세게 일어나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 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쉽게 믿어지지만,

안 믿어지는 사람은.. 도무지 안 믿어진다.

믿음생활이라는 것이.. 무슨 공허한 뜬구름 붙잡는 것 같아 보인다.

이 사실이 믿어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 말씀, 헌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풍랑보다 더 큰 충격 받은 웨슬리

요한 웨슬리가 신앙에 각성을 하게 된 유명한 계기가 있다.

그가 처음에 미국에 선교사로 갔다.

당시에 그는 믿음이 너무 연약한 목사였다.

풍랑을 보고 너무 두려워하는 것을 봐서도, 그의 믿음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영국에서 미국 신대륙으로 선교하러 갔다가

거의 실패해서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자기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된다.

모든 승객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고, 웨슬리도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 풍랑의 와중에, 배 한쪽 구석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다.

웨슬리가 거기 가 보니, 모라비안 성도들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그 험한 풍랑 속에서도,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웨슬리가 신기해서 물었다. ‘당신들은 이 풍랑이 두렵지 않습니까?’

그들이 대답했다. ‘풍랑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데, 무섭기는요...

이 풍랑으로 인해 우리가 더 빨리 가게 될 줄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그날 밤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게는 풍랑의 충격보다 

그들의 대답이 더 충격적이었다!”


웨슬리는, 그 날 풍랑 앞에서, 자기에게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모태신앙으로 목사가 되어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그는 참 믿음을 갖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게 되고,

나중에 그는 성령충만을 체험하고, 근대시대에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종이 된다.


▲풍랑 앞에서 불안해서 떨면... 나도 믿음이 없는 것임!

문제는 나의 믿음이다.

‘풍랑가운데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는가?’

지금 경제의 풍랑이 휘몰아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모라비안처럼 든든한가? 아니면 웨슬리처럼 불안초조한가?


만약 불안초조하다면, 나의 믿음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이번 풍랑을 계기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귀한 기회가 되시기 바란다. 당신의 생애가 변할 수 있는 귀한 풍랑의 기회이다.


▲<풍랑>이 아니라, <믿음 없음>이 문제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거기서 잔뼈가 굵은 어부출신들이 ‘주여, 이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했을 때,

그 풍랑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우리가 짐작하게 된다.


주무시던 예수님이 깨어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지금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는데, 어떤 풍랑이 이 배를 파선시킬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왜 그리 믿음이 없느냐?’ 하시며 그들의 <믿음>을 지적하셨다.


그렇다. 지금 풍랑이 아니라 믿음이 문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누구도 나를 파선시킬 수 없다.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이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이다.


지금 <풍랑>에 초점 맞추지 마시고, <내 믿음>에 초점 맞추시기 바란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풍랑이 절대 그를 망하게 하지 못한다. 침착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풍랑 때문에 망할 것이다. 허둥대다가 물에 빠져 버린다.



◑3. 자기 사명을 확인했으므로.. 바울은 풍랑 속에서 담대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27:24

바울은, 이렇게 자기 사명을 확인하고, 풍랑이 잔잔해 질 것을 확신했다.

바울은 앞으로 로마에 가서, 황제를 만나고, 황제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리라는

그런 자기 사명을, 하나님의 사자의 음성을 통해, 풍랑 속에서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자기가 로마에 가지도 않았고, 황제를 만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 자기가 거기서 죽을 때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는 그 풍랑을 뚫고 나가서, 로마 황제 앞에 서는 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결국 승리한 것을 알고 나서, 녹화된 축구/야구경기를 TV로 보노라면,

중간에서 아무리 지고, 심한 수세에 몰려도.. 내 마음에 전혀 마음에 염려가 없다.

저 경기에서 이미 이겼다는 결과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기에게 사명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명 감당하기 전까지는, 자기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풍랑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 배에는 선장도 있었고, 백부장도 있었지만

풍랑이 일어나자, 하나님과 연결된 바울이 지도자가 되었다.

거기서 담대한 사람은 오직 사도바울 한 사람 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자연히 그 풍랑 속에서 지도자가 된 것이다.


▲사명 깨달은 때부터가 진짜 인생

사람은 자기 나이가 몇 살이든지,

자기 사명을 분명히 깨달은 그 때부터, 진짜 자기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60살이라도 아직 자기 사명을 못 깨달은 사람은,

아직 자기 인생을 1년도 살지 못한 것이다.


당신은 ‘자기 인생’을 지금까지 몇 년 살아 오셨는가?

자기 사명을 확인하고, 그것을 따라 살기 시작한지 금년이 과연 몇 년째인가?


▲사명 끝나기 전에는, 풍랑이 일어도.. 안 죽는다.

여러분, 지금 풍랑이 극심해서 죽을 지경이신가?

자기 사명이 확실하다면 아무 걱정 없다.

당신은, 그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결코 지금 이 풍랑 때문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완전히 주저앉고 절단나지 않을 것이다.


내 사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들..

그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풍랑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내 사명을 더 철저하게 만들고, 정결하게 만드는 목적의 풍랑이다.

나를 물에 빠뜨려 죽게 하는 풍랑이 아닌 것이다.



◑경제 풍랑에 적용


우리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가가 지난 60년간, 많은 위기가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가 확신했던 것은

‘이 민족이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였다.

사실 그 믿음대로 되었다.


지금 이 경제풍랑도 마찬가지다.

이 경제풍랑으로 인해, 세계선교의 사명이 더 빨리 가게 될 수는 있으나,

그 사명 감당 못하고 주저앉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911이후로, 미국선교사들은, 회교권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남은 지역인 회교권의 선교를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남은 카드인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지난 60년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고

신앙적으로도 세계적인 성장을 이룬 것은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교만했다.

마치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복을 받은 것처럼.. 착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 일들도 많이 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징계하고 계시는 것이다. 깨닫고 돌이키라고!


전체적으로 열심은 식어가고 있고,

일부 교회들은 자기 자랑하기에 급급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려라’고 이 어려움을 주셨다.

깨닫고 빨리 돌이키라는 뜻이다.


그렇게 돌이킬 때, 우리 경제/신앙은 다시 기적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돌이킨 후에 오늘을 뒤돌아보면,

지금 이 풍랑은 새 역사를 이루는 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믿음으로, 풍랑가운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드린다.

(일동) “아멘!”

<09.01.25. 인터넷설교 녹취                                                                    ▣ 시사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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