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네 몸처럼... 막12:28~34 설교 녹취
▲설교하기 어려운 본문
오늘 읽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이 본문은
목회자로서 설교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진리를 규명하는 정도로 끝내면 안 되고, 살아야 되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말하기도 쉽고, 설명하기도 쉽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런 힘이 실릴 수 없다. 자기 몸으로 살기 전에는 그렇다.
평소에 이웃을 자기 몸처럼 열심히 사랑한 사람만이
이 설교를 가장 힘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설교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도, 오늘 이 말씀 앞에 서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본문으로 설교한 유명한 설교집을
다 훑어보았는데도.. 오늘 이 강단에서 어떻게 설교해야 할지.. 내가 잘 모르겠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이 본문 앞에 오늘 우리 각자가 서서
주님께서 내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직접 듣는 복스러운 시간 되시기 바란다.
◑1. 내가 사랑할 때.. 내 삶이 행복해 진다.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막12:28~34절의 이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위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할 적에 내가 정말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여러분, 사랑이 없는 사람은, 절대 만족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여러분, 사랑이 없는데, 여러분을 정말 기쁘게 한 것이 있었는가? 절대 없다.
애완견을 보고 기뻐하는 것도,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야구경기를 보고 즐거운 것도, 그 연고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의 집 애가 우리 애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더 똑똑해도,
그저 평범한 우리 애를 볼 때.. 기쁘다.
사랑할 때 내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사랑이 없는데, 감동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
사랑하고 있으면.. 행복이라는 꽃은 아름답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사랑하고 있으면.. 소담스러운 열매가 내 가슴에 안긴다.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경쟁해야 되고, 남을 이겨야 되고,
많이 가져야 되고, 남을 빼앗고 모으고.. 이것이 전부인양 배워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랑하면서.. 나눠주기 시작한다. 손이 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놀라운,
사랑이 만들어 준 행복을 지금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면서.. 행복을 되찾은 록펠러
대표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가 존 D. 록펠러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소유했던 사람이다.
지금 빌 게이츠, 워렌 버핏이 큰 부자지만, 당시 록펠러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53세 때, 그렇게 키가 큰 사람이, 스트레스와 과로로 43kg까지 말라버렸다.
그는 병상에 누워서 우유 반 컵을 못 마시고, 토해 내었다.
토스트 한 쪽을 못 먹었다. 그래서 산해진미가 자기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의사는 그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래서 그 당시 기자들은, 록펠러의 생애를 총정리해서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한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특집으로 신문에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날도 휠체어에 앉아 병원에 진찰 받으러 가다가
그 병원 벽에 쓰여진 큰 성경말씀을 보았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행20:35
그는 어릴 적부터 교회 다닌 사람이었으므로, 이전에도 몇 번 들었던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 날,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조명해서 비춰주시자, 그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제까지 빼앗고, 모으고, 쌓고.., 이것이 내 인생인줄 알았는데,
주는 것이 더 복되다고?’ 그는 고민하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무료병동을 다니면서,
병든 소녀의 치료비를 대신 내주고,
거기 입원한 환자의 자녀들을, 비서를 통해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병든 아이가 치료되어서 밝은 미소를 띠는 것을 보면서
록펠러는 처음으로 웃기 시작한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그때까지 웃음 없이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웃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면서.. 자기 마음이 그들과 함께 펼쳐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기 마음이 그 동안 닫혀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렇게 웃기 시작하고, 자기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그의 건강도 점점 회복되어져 갔다.
그래서 그가 죽을 날만 기다리며, 그의 일생을 정리한 기사를
자기 가슴 속에 품고 다녔던 어느 기자는
그 때로부터 40년 후에, 물론 그의 ‘새 인생’ 기사를 더 보태어
신문에 발표할 수 있었다고 한다.
(53세 위기에서 벗어나 40년을 더 살았다는 뜻)
▲그의 인생이 얼마나 부요한 가는, 그가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달려있다.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고전13:8
사랑했던 추억들을 가지고 간다. 천국까지 가지고 간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최대로 실패한 인생이다.
◑2. 내가 형제를 사랑할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린다.
▲‘하나님이 과연 내 아버지신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우리들은 우리가 낳아주신 육신의 부모도
‘정말 이 분이 내 부모일까?’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살았던 적이 간혹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
‘과연 하나님이 정말 내 아버지일까?’ 하는 의심이.. 스쳐지나간 때도 있었다.
당연한 질문이요, 어쩌면 건강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화평할 때... 하나님의 자녀됨을 느낀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내 피부에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에 신분을
날마다 감격으로 누리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이웃을 사랑할 때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5:44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대적을 사랑할 적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내 속에서 감격적으로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의 가장 큰 속성은 ‘하나님은 사랑’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주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평생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해 따라 자라가야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속에서 이뤄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그 하나님 형상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내가 이웃을 사랑할 때>이다.
여러분, 내가 형제를 사랑할 적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으로 만난다.
그리고 내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내 속에서 성령이 확신시켜 주신다.
▲사랑은,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
그처럼 속 썩이는 자녀를 향해서, 부모가 포기한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부모는 절대적으로 자기 자녀를 믿는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사랑의 왕도는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특히 미운 사람이 생각날 때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내가 그를 바라보게 해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몇 달을 계속 기도하면..
반드시 그를, 사랑은 혹시 못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대하게 되어 있다.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는 것이다.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다.
미워할 것 다 미워하고, 욕할 것 다 욕하고, 지적할 것 다 지적하고
사랑하려고 하니까.. 사랑이 안 되는 것이다.
용서가 빠진 것이다.
용서는 이해라는 단계를 거친다.
이해하고 그 입장이 되어 볼 때, 그를 이해할 수 있다.
◑3. 내가 자매를 사랑할 때.. 내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8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5
①성도가 ‘자란다’고 말할 때, 그것은 지식의 성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우리 교회의 여러 좋은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그 과정을 마치면
내가 많이 <성장>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지식적 교육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두고 <내 믿음이 성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②혹은 내가 교회를 오래 다녀서 교회 생활에 능숙해지면
<내 믿음이 성장했다>고 쉽게 착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거기에다 직책까지 주어지면 <내가 성숙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란 사람은
그 아버지의 가장 큰 속성인 사랑이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그 사랑이 표현되는 사람이다.
오직 <내가 사랑할 때 내 신앙이 날마다 자란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신앙생활 해야 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사랑을 배운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못 믿고 살았다.
9남매라서, 자식도 많아서, 입학식 졸업식 때 아버지가 오실 수도 없었다.
소풍갈 때 어머니가 따라오시는 집을 보면 참 신기했다.
내 동생들도, 저처럼, 부모님의 세심한 관심은 받지 못하면서 자랐다.
그러다가 625가 나자, 아버지는 함평에서 전쟁 통에 생긴 고아들을 모아서
고아원을 여셨다.
그래서 우리들은, 고아들과 똑같이 고아원에서 밥 먹고 자랐다.
옷도 똑같이 남대문 시장에서 4~5백 벌 구입해서 오시면 저도 똑같이 입었다.
그렇게 고아들과 똑같이 지내다보니, 아버지 사랑을 더군다나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언제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었나 하면
내가 결혼해서 우리 두 자녀 낳아서 사랑하면서
그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요즘 우리 자녀들이 제 속을 썩일 때마다
‘내가 우리 아버지 속을 얼마나 썩였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 저희 아버님이 소천하셔서, 사과도 못하겠고 참 안타깝다.
특히 제가 아버지 속을 썩인 것은
제가 너무 예수를 안 믿으려고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예수 안 믿을 수만 있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도망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이 나를 속 썩일 때마다..
그런 나를 끊임없이 사랑하셨던.. 우리 아버지의 사랑을 만난다.
그런 육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다.
사랑은 교실에서 절대로 배울 수 없다.
▲사랑의 본체이신 주님, 이웃을 사랑할 때 만난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가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아주 비싼 고급 외투를
길에 지나가는 거지, 추워서 벌벌 떠는 사람에게 벗어줘 버렸다.
그날 밤 꿈에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한다.
자기가 벗어준 그 외투를 입으시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주님은 종종 헐벗은/갇힌/병든/목마른 이웃의 모습으로 와 계시므로, 마25:36
우리도 프란시스처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저희 아버지께서 해 주신, 과거 한국교회의 선교사 관련 일화를 소개하면,
구한말, 일제시대에 한국에 오신 선교사들 가운데,
정말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확연히 드러난다고 한다.
선교사가 시골교회에 오시면, 성도들이 정성으로 대접하게 되는데,
기왓장을 깨서 놋그릇을 깨끗하게 닦아서, 그 그릇에 식사를 대접하는데,
어떤 선교사는 그릇이 비위생적이라고 생각되는지,
밥을 퍼 주면, 그릇 가장자리의 밥은 남기고, 중간의 밥만 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선교사는, 밥을 그릇째 다 비우고
된장국까지도 ‘눈물 흘리면서도’ 먹었다고 한다.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된장은 모양, 색깔, 냄새가.. 외국인들이 먹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음식이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인 것이다.
<09.01.25. 인터넷 설교 녹취, 정리 ▣ 사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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