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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대령숙수의 고집

LNCK 2009. 2. 26. 13:59

https://www.youtube.com/watch?v=-ug_-27gFAI 

◈대령숙수의 고집          왕하18:1~8              -설교 스크랩, 출처-

 

 

남이 은혜받은 방식, 남들 성공한 방식을.. 평생 뒤꽁무니만 쫓다가는.. 망하기 쉽습니다.

신선하고 싱싱한 새로운 은혜의 공급자들이 되십시다!

 

 

 

▲드라마를 통해 받은 중대한 교훈

얼마 전에 끝난 TV드라마 <식객>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는데,

요리사가 요리를 할 때,

그 요리함을 통해서 재물, 명예, 성공을 추구해 가느냐?

아니면 요리 자체에 의미를 두느냐 그 싸움인 것 같아요.

 

다른 드라마(특히 사극)도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허준>을 볼 때,

의술을 가지고 출세를 지향하는 그런 의사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그 의술자체에 의미를 두고 평생을 사는 사람과의 대결구도!

드라마가 그렇게 진행되더라고요.

 

<드라마 식객>도 마찬가지로

그 요리자체에 생의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진정한 요리사와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서 성공을 꾀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하여 살아가는

그런 조리사를 대결구도에 놓고 이끌어 갑니다.

 

목사나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하나님 믿는 일에, 내 생의 의미를 다 올인해 버리는 그런 신앙과

‘하나님을 믿음’을 통하여 내 가정의 안정과 성공과 인생의 전성기를 꽃피우고 싶은

그런 욕심이 연결되어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싱싱한 재료를 고집하는 대령숙수의 고집

‘대령숙수’는 조선시대 왕궁에서, 왕과 가족의 식사를 맡아서 조리하는 사람입니다.

<식객>에 나오는 장면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대령숙수 최불암 씨가 손수 재료를 찾아서 땅 끝까지 가서

직접 고기를 잡는 어부들과 담판을 하면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에요.

 

생태찌개를 끓이기 위한 생태를 구하는데

생태가 좋은 것이 잡힐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닌데

그걸 끝까지 고집을 하면서 그러니까, 그 큰아들이 아버지와 싸웁니다.

‘이제는 아버지는 일선에서 물러나시지요. 우리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 그냥 주문하면 되는데,

굳이 여기까지 내려와서 이렇게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근데 그 대령숙수가 고집을 하는 거예요.

싱싱한 재료가 맛의 관건이 된다는 것을 계속 고집하는 겁니다.

조미료나 다른 재간을 피워가지고 음식 맛을 내려고 하지 않고,

그 싱싱한 재료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둘째 아들이 묵묵히, 첫째아들과 아버지의 싸움을 보면서

아버지의 철학과 아버지의 소신을 마음에 담아가는 그런 장면들...

아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에게도 그대로 필요한 고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 놋뱀을 부숴버린 히스기야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계속 분향했습니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히스기야 때)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18:4

 

놋뱀.., 한낱 놋조각에 불과한 것을..

사람들이 그 앞에서 계속 분향을 해 온 것은

수 백 년 내려온 것이니, 어떤 미신/신화의 거품이 잔뜩 끼어있었겠지요...

 

사람들이 이 우상을 건드리지 못한 것은

모세가 직접 만든 놋뱀이었고,

그 놋뱀을 보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었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없이 정당화되었었던 것 같아요. 묵계적으로 당연히 정당화되었겠지요.

 

히스기야가 모세의 놋뱀을 가져다가 땅바닥에 콱 깨트리면서

‘이런 놋 조각을 언제까지 분향하며 숭배할 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연상되어집니다.

 

▲이게 바로 <대령숙수의 고집>이라는 것이에요.

히스기야가 지금 대령숙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진짜 왕 이신 하나님께,

신선한 영적 예배, 향기로운 예배가 되게 하려고,

오래된 구습의 예배(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히스기야 당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했습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면 내 입에서 뱉어내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음식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택한 백성 이스라엘도)

뱉어 내버리신 사건이 히스기야 있을 때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대령숙수, 히스기야 왕의 고집의 내용이 뭡니까?

처음에는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나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 인정하고 그것에 계속 분향을 했어요.

병이 걸리면 나을까 싶어가지고...

그런데 이상하게 히스기야가 그걸 부숩니다.

 

왜 그래요? 싱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싱싱하지 않다는 얘긴 뭐예요?

 

하나님과 우리 신앙인 사이에서 무언가 싱싱한 것을

그런 우리 인생의 재료들을 사용할 때

싱싱한 예배가 되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마음의 입맛에 맞아하시는데요..

 

▲경제에도 ‘싱싱한 이론과 원리’가 늘 등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원칙을 찾습니다.

원리를 찾아냅니다.

그러나 그런 원칙, 원리가 만고불변의 원칙과 원리가 되지는 못 합니다.

 

(2008년 당시에)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금융회사가 망하고

메릴린치 금융회사가 관리에 들어가고하는 것 때문에

한국의 증권가에 굉장한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왜 매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학자들의 탁월한 이론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데

왜 세상의 경제는 문제가 계속되는 것입니까?

 

호황이라고 그래도 잠깐이고, 맨날 불황이고, 맨날 풍랑이 일고,

뭐 오일쇼크가 오고, 환율쇼크가 오고, 맨날 풍랑 소식들입니다.

도대체 그 경제학자들, 경제이론들 다 어디 갔습니까?

 

여러분, 경제에도 항상 싱싱한 원리 원칙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거에 잘 되었던 원칙, 과거에 잘 써먹었던 방식으로

그걸 계속 붙잡고 해 나가니까

새로운 싱싱한 원리 원칙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그만 큰 어려움을 당한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싱싱한 시도/실험’들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유명한 새들백교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교재를 가지고

40일간을 기도하면서 어떻게 한다고 해 봤습니다.

죄송하지만 이게 다 ‘놋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알파코스, 무슨 훈련, 무슨 초청전도잔치... 죄송하지만 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싱싱한 재료들이 공급되지 않는데,

옛날 방식/형식/스타일만 계속 고수하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집니다.

싱싱한 하나님의 뜻, 이번 주간에 받은 하나님의 싱싱한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간증 하라고 하면, 10년 전 것 들고 나오고,  

말씀을 받았다는데, 10년 전에 받은 말씀이고... 그러면 벌써 ‘놋뱀’인 것입니다.

깨어버려야 할 놋뱀!

 

2009년도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금년에 하나님께 직접 받은 (레마의) 말씀이 몇 개입니까?

2009년도 연초에 받고, 아직 없으면... 절반 놋뱀 섬기는 신앙행활 하는 것입니다.

싱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현장과 나의 인생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싱싱한 뜻을 항상 구해야 된다는 겁니다.

 

▲새로운 전도방식을 연구해 봅시다.

그래서 저(설교자)는, 말씀 CD를 제작해서 배포하는 방식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매주 수 천 개를 제작해서 배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많은 교회들이 설교를 MP3(오디오 파일)로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출퇴근 시간에, 전철 안에서, 다들 갖고 다니는 ‘MP3 플레이어’로

귀에 꽂고 다니면서 듣습니다.

또는 산책하면서, 자전거 타면서 ‘MP3 플레이어’로 듣습니다.

 

기독교 인터넷라디오 방송국도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곧 ‘차량 인터넷시대’가 올 터이니까요!

 

 

▲‘전통’에 얽매이는 것도 느후스단(놋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망한 이유가 뭐예요?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는 자긍심이 지나친 나머지,

아브라함 언약의 싱싱함은 다 잊어버리고,

쓸데없는 자긍심만 생겨서 교만해진...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지금의 하나님을 놓쳐 버렸다는 겁니다.

오늘 주시는 언약의 말씀을 놓쳐버렸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바로 이점을 깨달은 것이에요.

놋뱀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썩어 문드러진 (영적) 재료들을 가지고

자기 영적 인생의 생명력을 유지해 가려고 했던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놋조각을 아직도 섬기냐? 다 썩어버렸는데...’

하면서 내던진 겁니다.

 

▲남의 꽁무니 따라가는 방식보다, 창조적 방식을 계발해 봅시다.

아무리 삼성의 이병철 씨가 했던 일이라도, 엘지 그룹의 회장이 했던 일이라도,

그건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놋뱀에 불과한 것이에요

 

남의 교회에서 성공한 거 그거 갔다 쓰는 거 아니에요.

놋뱀에 불과합니다.

 

지금 내 목회 현장에 계신 그 하나님에게서

싱싱한 식재료를 지시받고 그대로 그 삶을 펼쳐 나갈 때

히스기야의 부흥이 오늘날도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영적인 대령숙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008년 인터넷 설교 스크랩, 정리                                                     ▣ 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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