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란 무엇인가? 행4:33 -설교 스크랩, 축약-
▲부활의 왜곡, 오해
오늘날 ‘부활’이란 말은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한 번 더 기회를 얻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게임에서 진 자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제공하면서 ‘패자 부활전’이라 말합니다.
권력을 잃은 사람이 다시 권력을 얻으면 ‘부할했다’고 말합니다.
경제적으로 망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면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부활의 의미를 교묘하게 왜곡합니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후세에 이어져 지금도 살아 있다.”,
“그의 몸은 죽었지만 그는 얼을 남겨 두었다.”,
“그의 몸은 비록 떠났으나 그의 작품은 계속 죽지 않고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그의 몸은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사상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다시 살아났다.”
이런 식입니다.
그런 일들이 세상에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부활>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교훈/정신이 부활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사랑은 후대의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으며,
기독교 정신으로 부활했다.” 이런 식입니다.
이것은 부활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참된 부활은, 예수님이 내 안에 부활해 계시는 것
예수님의 정신, 예수님의 희생,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상,
예수님의 가르침이 내 안에 살아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자신’이 내 안에 살아 계시지 않으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자는 기독교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부활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생명이 되어 주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누가 말하기를 ‘기독교는 부활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에
어떤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선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럴듯한 말이지만, 완전히 맞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부활 정신, 부활 사상, 부활 교리로 사는 이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부활이신 주님”을 반석이요, 뿌리요, 머리로 삼습니다.
부활은 신약 성경에서만 104번이나 언급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예수(과거 실재 예수)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해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까지...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 분명히 공개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온 유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요, 믿는 내용입니다.
예수가 역사에 실재했고, 예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의문을 다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 가치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더욱이 그 분이 부활하셔서, 성령을 통해 지금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은..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 예수'를 믿는 차원의.. 한참 이상입니다.
▲그 분께서 죽으셨다! 거기에서 끝이라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믿음입니다. 고전15:17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우리는 거짓 증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선포하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고전15:15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으셨는지,
그분의 죽음이 하나님께 받아 들여졌는지 우리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한 이의 말에 신뢰를 둘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그 분 역시 죄의 삯인 죽음에 매인 자요,
결국 그 자신도 죄의 권능과 사망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사망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죄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고로 부활이 없다면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성경대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고전15:3-4
우리가 믿는 주님은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목적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①첫째, 예수님은 우리의 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죄가 해결되고
부활을 통해 '의'가 해결되었습니다. 고후5:21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稱義)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롬4:25
②둘째,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사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롬14:9
주님은 죽으심을 통해 지옥에 가셨고
그곳에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벧전3:19 *이 부분 논란 있음.
죽은 자들에게 주님의 죽으심이 선포되었고,
그들이 먼저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주님은 죽으심으로써 죽은 자들의 주가 되셨고,
부활을 통해 산 자들의 주가 되셨습니다.
③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보노니 이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사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2:9
주님은 죽으심을 통해 모든 사람이 겪는 사망의 고통과 슬픔을 친히 맛보셨습니다.
④우리를 산 소망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시며 벧전1:3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어떤 소망도 산 소망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소망이 육신에 속한 것이 전부요,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가장 비참한 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이리라. 고전15:19
⑤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시고(부활) 너희에게 복을 주시려고
그분을 먼저 너희에게 보내사 너희 각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불법들에서 돌아서게 하셨느니라.
행3:26
▲부활은 믿음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실의 문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부정하고, 싫어한다고 해도.. 사람은 다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부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입니다.
이 말에 놀라지말라. 이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기 때문이니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영벌(永罰)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5:28-29
▲악인도 부활합니다. 부활해서 영벌에 처해집니다.
누구나 다 한 번은 죽듯이(히9:27), 죽은 자는 다 한 번은 부활합니다.
주님은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활하는 날이 온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생명의 부활과 영벌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 종교인들로부터 전혀 들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살아 계십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볼지어다,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계1:18a
서머나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처음이요 마지막인 이
곧 전에 죽었다가 지금 살아 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계2:8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다면 그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죽으신 분이 지금 살아 계시다! - 성경은 바로 그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주님의 죽으심이 구속의 가치를 지녔음을 선포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한 죽음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고전15:17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 피가 대속의 죽음인지 순교자의 죽음인지, 아까운 죽음인지, 억울한 죽음인지
그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심을 통해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대속한 죽음이요,
그 피가 구속의 피(골1:14)란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주님은 부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했습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파도와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등의 이적들이
다 주님의 신성을 입증한다 할 수 있지만
죽음으로써 다 끝이 나고 말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던 사람도 결국은 죽고 말았다는 말 밖에 들을 것이 없게 됩니다.
살았을 때나 능력을 행하지 죽은 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동정어린 평가가 고작일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죽음에서 일어나심으로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롬1:4
부활의 권능은 존재하는 모든 능력 가운데서 가장 큰 권능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믿는 자들 안에 권능이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지만(고전15:31) 날마다 살아납니다.
우리는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지만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걷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누리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들에게 날마다의 삶에서 넉넉히 승리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줍니다. 빌3:10a, 고전15:58
내 안에 부활이신 분이 살아계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 죽일 수 있어도 혼을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히2:14)에게 종노릇하던 데서 벗어나
도리어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치게 됩니다.
부활의 권능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빌3:10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통해 부활의 권능을 통해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산 소망을 통해 우리는 현 세상이 아닌 다가올 세상을 바라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자신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이 부분은, 많이 알려진 내용이므로 후략)
<08.03.23. 인터넷설교 스크랩 ▣ 부활, 추수, 성탄,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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