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7

3부류의 아버지 1786

LNCK 2009. 3. 11. 11:08
 

◈3부류의 아버지              창26:1-11              -스크랩, 출처-  

 


◑1. 자식을 무지 사랑한다는 아빠...


▲자기 사랑의 연장선상에서 자식을 사랑한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다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 뭐가 그래요?’

잘 들어 보세요.


부성애, 모성애, 아빠, 엄마가 마찬가지인데, 오늘은 통털어 아빠로 얘기합니다.

아빠(부모)가 자식을 극진히 사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이 100%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사랑이라면

자연인으로서 내가 낳은 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기사랑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자기사랑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자식이 자기 얼굴이요, 자기 자랑이요, 자기 명예죠.

그래서 자식이 번듯해야, 아빠가 스스로 자랑스러운 거예요.


▲내 생각에 좋고 바른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합니다만

자기사랑의 표현이든 뭐든 상관없이, 자식만 사랑하면 된다지만,

이때 심각한 문제가 야기됩니다.

자기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자식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한다는 뜻으로 물건을 주던지, 먹을 것을 주던지,

뭐 인생을 지도하던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고, 보여주고, 가르치고,

먹게 하고, 입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열심히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망쳐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자면, 아들이 망쳐질 수가 있겠습니까?

왜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안 됩니까? 다 망쳐지고 맙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바로 아빠의 잘못된 가치관에 있다는 것이에요.


▲내 생각에 좋다는 것이 <육적>일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이렇게 한번 얘기를 해봅시다.

사도바울이 그리스도를 안 다음에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기 전에, 배설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들을

아빠가 아들에게 먹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인줄 알고...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오물이고 똥입니다.

그걸 먹이는 겁니다. 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가 배설물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귀한 것인 줄 알고,

자식사랑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식에게 그것을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모든 아빠들이,

또 예수님을 믿어도 ‘날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있는 모든 아빠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모든 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배설물들을 열심히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그러므로 모성애와 부성애를 무조건 찬양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거 무서운 겁니다.

차라리 사랑 안하는 게 낫다니까요.

아래 ◑2번처럼, 차라리 자녀에게 무관심한 것이 더 낫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 때까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알 때까지

마땅히 배설물로 여겨져야 될 것들을 자꾸 먹이는

그런 사랑을 통해서는,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식들이 망가지면 망가졌지, 절대로 자식이 올바르게 크지 않고,

아빠를 뒀다고.. 무슨 복을 받거나 도움을 받을 리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오래 다녀도 신앙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2. 자식을 등한히 하는 아빠


위 ◑1번보다는, 차라리 이게 더 낫습니다...


자식 키우는 일은, 엄마에게 다 맡겨놓는 스타일입니다.

아빠들이 직장, 사업에 바빠서, 자식들에게 더 여력이 없어서 등한할 수도 있고,

원래 이기적인 아빠들도 있습니다.


자식에 대해.. 괴로울 일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아빠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자식치고,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자식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마음 아프지 않으려고, 아예 관계를 멀리하는...


그리고 이런 아빠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

엄마가 열심히 길러서 자식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좋은 일의 몫은 또 자기가 꼭 챙기려고 하는 그런 성향의 아빠들이 있습니다.


▲이기적이라서 자식에게 무관심한 아빠도 있습니다.

갓난아기들이 어릴 적에, 밤에 응에 응에 하면서 웁니다.

그렇게 우니까, 아버지가 밤에 일어나서, 시끄럽다고 발로 미는 아빠도 있습니다.

엄마가 보면 아이를 발로 차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상처가 되어서,

‘어떻게 자기새끼를 시끄럽다고 발로 저렇게 밀수가 있을까? 저 사람도 사람이냐?’

이렇게 마음속에 생각하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 엄마도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아빠는, 아기를 장롱에 집어넣는다고 하잖아요, 밤에 시끄럽다고.

엄마들은 그렇게 못해요.


▲자식을 등한시 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여러 교인들을 보면서, 설교자가 통계적으로 생각한 것인데요,

많은 장로님들이 이런 고백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아휴, 저는 뭐 가정 일을 돌보지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참 잘 자라줬습니다.

제가 가르친 것도 없는데, 아이들이 너무 곧게 자랐습니다.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가 많아요.


차라리 어줍지 않게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로,

자식을 사랑해서 배설물을 먹이기 위해 날마다 자식과 씨름하느니,

그렇게 자식에게 등한한 게 더 낫다는 겁니다.


배설물을 먹이는 게 뭐냐?

‘너, 좋은 대학 들어가야 된다.

너, 연봉이 최소한 8천만 원 이상은 돼야지 살만 하다.’


이런 거 가르치는 말 자체가, 계속 그 아이영혼에게 배설물을 먹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배설물이 자기 입에 딱 익숙합니다.

그래가지고 성인이 되고 독립할 때쯤 되면, 목표를 세우는 데

돈, 뭐 좋은 직장.., 이런 식으로 목표를 딱 세우는 겁니다.


어떤 직장이던지 얼마를 벌던지,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삼는다.

이런 아이들이 될 수 있어야, 그의 장래가 행복해지고, 탄탄해 집니다.

그리고 영생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이 참된 성공이고 행복입니다.

돈 벌고 좋은 직장 갖고 나서 불행해지는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연예인 자살이 단적인 예 아닙니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자꾸 가르치고 주입합니다.

이거 배설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자녀들이,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고.. 자꾸 죽고 싶어 합니다.



◑3. 진정으로 도움 되는 아빠


가장 훌륭한 아빠(부모)는 아브라함과 같이, 자식을 번제물로 바치는 아빠입니다.


▲아버지 잘 둬서 복 받은 이삭

오늘 이삭을 봅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창26장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두 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26:24


네(이삭)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26:4~5


▲자식을 죽이려 했던 (잘 못 생각하면 비정한) 아버지 때문에, 자녀가 복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이삭을 죽이려고 했던 아버지입니다.

그 이삭을 죽이려고 했던 그 순간에

하나님이 완전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믿음의 조상의 자리에 앉히시고 세우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그 행동 때문에

그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려고 했던 그 행동 때문에, 자식인 자기가 복을 받는 겁니다.

이게 참으로 묘한 아이러니에요.


이삭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가 자기를 죽였던 그 행동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께 복을 왕창왕창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자녀에게 복된 아버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마음으로 자녀를 죽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처자와 자식을 다 미워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진정으로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아빠의 모습이라는 것이에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런데 자녀를 내 마음에서 없앤다고 하는 거, 참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것은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죽는 겁니다.


그 아들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 아들 때문에 내 마음이 빼앗기고,

아들 때문에 온통 생각을 해야 되는 상황이 생길 때

먼저 빼앗겨지는 마음을 그대로 따라가지 말고,

생각되어진다고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지 말고

우선 멈추고, 나를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고백을 하는 겁니다.


자식을 바라보지 말고, 자식 생각이 날 때 먼저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가 죽었음을 고백하는 겁니다.

내가 죽은 사람은, 자식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으로 내 마음에 가득 채웁니다.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해서, 아들을 내 마음에서 없애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십자가의 효능이고

결국에는, 그것이 바로 자식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라는 겁니다.


▲자식 신경 쓰는 마음을 빼 내고, 그곳에 하나님으로 채워 넣어야!

오늘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에게 가는 내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것으로 고백함을 통하여

자식에 해당되는 마음에 할당되는 부분만큼을

온전히 하나님께 다 드려서...


의리의 하나님께서 나(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 감동하시고

내 자식을 붙들어 주시는 이 방법을 차라리 채택하시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07.01.18. 설교 스크랩, 축약                                                     ▣ 행복한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