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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을 때도 소망 있다 1797

LNCK 2009. 3. 17. 21:58
 

◈작을 때도 소망 있다            요6:1~15        인터넷설교 스크랩


내가 지금 뭘 좀 하고 있다/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주님의 능력>은 내게서 멈추어 버립니다. 그리고 <내 능력>이 활개 칩니다.

능력이 오래 지속되는 사람은.., 늘 ‘자기 부인’이 잘 되는 사람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오히려 믿음에 뒤질 수 있습니다. 


▲자녀가 뒤떨어지면 속이 상해요!

자모실에서 예배를 드리던 한 젊은 엄마가 속상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모실에 있다 보면, 자연히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참 똑똑한 아이를 보았답니다. 그 아이를 보다가 자기 아이를 보니

괜히 짜증이 나서, 괜히 자기 아이 머리를 쥐어박았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머리 좋은 것을 기뻐하고, 머리 나쁜 것에 낙심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처럼 근거 없는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가치관입니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근거 없는 교만에 사로잡히거나

불필요한 열등감을 갖고 사는지 모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말이고, 역사에서 배운 것입니다.

행복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앞에서 쓰임 받는 것도 성적순이 아닙니다.


▲계산이 빠르고, 똑똑했던 빌립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똑똑한 제자도 있었고, 좀 둔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똑똑한 제자를 기뻐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5천명이 더 되는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빌립을 떠 보시려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평소에 빌립에 대하여 걱정이 있으셨다는 뜻도 됩니다.

무슨 걱정입니까? 빌립이 너무 똑똑한 것이 탈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상대로였습니다. 빌립은, 그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떡 한 조각씩

나눠줘도 2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즉각 계산해 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와, 대단하다!”하고 입이 벌어 졌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1백 명 점심식사를 준비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금방 계산 되십니까?

식당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얼마가 드는지 얼른 계산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빌립이 5천명이 먹을 것을 금방 계산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대답을 들으시고는 속으로 ‘아직 빌립은 멀었구나!’ 하셨습니다.

똑똑한지는 몰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자질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떨어져도, 색다른 능력이 있었던 안드레

그 때 안드레가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점에서 벌써, 안드레는 빌립보다 인간적 능력이 뒤떨어진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빌립 같은 사람은 그런 일은 아예 시도 안합니다.

사람이 5천 명인데, 그것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쓸데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먹여야 할 사람은 5천명인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어차피 소용없는 일인데 왜 수고를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드레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안드레는 똑똑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강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뭘 원하시는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재벌들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경험에 의하면,

<큰 일은 똑똑한 사람에게 절대 맡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대신에, <큰 일은 믿을만한 사람, 오너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머리가 좋은 것은 대단한 은사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입니다. (이 단락 삽입)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무리를 먹이고자 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역시 막막하였지만,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먹을 것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가 가진 도시락 하나 밖에 구할 수 없었습니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겠지만,

안드레는 그것이라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계산과 논리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충성스러움 만이 있었습니다.

그런 안드레를 통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한 주간 본문을 묵상하다가, 이것이 제 이야기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굳이 따지라면, 빌립 쪽 성향이 강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계산이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따져서 무슨 일이든지 하였습니다...


물론 안드레도 예수님의 마음은 알았지만.. 여전히 믿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으로 5천 명을 다 먹이실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병이어를 가져왔으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안드레는, (실례지만) 머리가 뒤떨어져서 그랬는지,

‘도저히 안 된다’는 식으로, ‘2백 데나리온 어치라도 부족하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믿음은 없었지만,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열어두었던 것입니다.



◑‘작은 것’을 들어서 ‘크게’ 쓰십니다!


▲모든 형편에 전천후로 대처하기

성경에 주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신다고 했습니다. 삼상2:7


과거에는, 위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내가 부유해지고, 높아지고,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리라.’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이 말씀을 이해합니다.

‘내가 부유해지고, 높아지고, 살아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내가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죽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리라.’


어떤 형편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형편과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겠다는 자세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도 어떤 형편이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단락 삽입)


▲내가 보잘 것 없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은 오히려 기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드러낼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약한 것이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약한 것을 기뻐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12:9~10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 자신의 약한 것을 보는 눈을 새롭게 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정말 나와 함께 계시고,

그 분이 친히 나와 동행하셔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고 나면

차라리 내가 약한 것이 훨씬 기쁘고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고 하셨던 것이고

또 우리가 오늘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때때로 여러분의 약한 것 부족한 것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개인적 열등감 나눔

어떤 분이 저를 보시고,

"앞에서 보아도 목사고, 옆에서 보아도 목사고, 뒤에서 봐도 목사더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저를 칭찬하신 것 같은데,

사실 그런 표현은 제게 늘 열등감 중의 하나였습니다.


‘영락없는 목사다! 모범생이다!’ 이런 평가는,

좋게 들으면 좋겠지만, 달리 말하면

<제게는 세상적인 매력은 전혀 없다>는 말로 제 귀에 들렸습니다.


‘이리 보아도 목사요 저리 보아도 목사’가 아니라,

‘이리 보면 연예인 같고, 저리 보면 만능 스포츠맨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제가 ‘영락없는 목사’로 비취는 것을, 어려서부터 부끄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 생각해 보니, 사실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깨닫는 것이

교회 섬기는 일 하나 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재주가 없으니, 한 눈 팔 데가 없었고.. 시간 낭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목사의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재주가 많은 분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제가 운동도 잘 하고, 취미활동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면

그런 것 하느라고, 시간과 마음을 얼마나 많이 빼앗겼겠습니까?


저는 제 설교에도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잘 전할까?’ 하는 생각보다,

‘말씀을 전하는 내가 어떻게 평가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의 좋은 설교에서 은혜를 받기는커녕, 저는 괴로웠습니다.

비교의식에서 나온 열등감 때문이었습니다.


▲내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말씀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전1:27-29절 말씀으로 저의 열등감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저는 은연중에, 하나님은 잘난 사람, 유능한 사람을 택하여 쓰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생각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강박 관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늘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공부 잘해야 하고, 유능해야 하고, 남보다 항상 앞서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에 진심으로 아멘이 되지 않아서 3일을 묵상하고 또 묵상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 만큼 내 마음의 열등감이 크고 완고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설교가 편해졌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에서 은혜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인간적인 능력으로, 그의 장래성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종


▲예수님은 ‘아이’를 쓰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보리 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은

이름도 없는 ‘아이’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던 오병이어로 주님은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아이’라는 말은 인간적으로는 안드레 보다 더 무능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할 때, 어른 데리고 일하겠습니까? 아이 데리고 일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생각이고,

예수님은 어린 아이 데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시려고 예수님이 쓰신 사람은 ‘아이’였습니다.


▲나의 오병이어 - 새벽기도 자리 지키는 것

이따금 새벽 기도회 시간이 되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하여

오늘만큼은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 일부러라도 벌떡 일어납니다.


교인들의 새벽 기도 자리가 빈 것을 보면 목사인 저도 마음이 허전한데,

담임 목사인 제 자리가 빈 것을 보는 교인들의 마음은 얼마나 허전하겠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새벽기도회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교인들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비록 졸더라도 가겠습니다.

사실 담임 목사로서 제가 할 일이 새벽기도회 자리 지키는 정도인 것임을 깨닫습니다.


교회 부흥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벽 기도 용사들에게 힘을 주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제 할아버지/할머니의 오병이어

어느 날 새벽 기도 때, 너무 피곤하여 눈만 감으면 졸다가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감리교 목사이셨습니다.

6.25 전쟁 때 순교하셨지만 일제 시절 목회한다는 것은 먹고 살기도 어려우셨습니다.

그래서 잠깐 장사하러 시장에 나가셨던 적이 있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여보, 교회로 돌아갑시다.” 하셨답니다.

그 말을 들으신 할아버지께서 짐을 정리하고 다시 교회 일을 하시게 되었답니다.


제게 있어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그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었던 일은 굶더라도 목회의 길을 가셨던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이 그 제 <할아버지의 오병이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는 뵙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어려서 뵌 기억이 생생합니다.

할머니는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산에 올라가 기도를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어느 날은 기도하던 자리에 호랑이 발자국을 보기도 하셨답니다.


저를 목사로 바치신 것도 할머니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할머님의 기도, 그것이 그 분이 드릴 수 있었던 <할머니의 오병이어>였습니다.

그 분들은 그것으로 충분하셨습니다.


▲대를 이은 가문의 오병이어

한국을 위하여 일하는 스티브 린턴 선교사는 4대 째 선교사입니다.

스티브 린턴 박사는 지난 수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사랑의 구호품을 싣고

북한으로 가서 그 곳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나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스티브 선교사님이 오늘날 하나님이 쓰시는 충실한 나귀로 만들어진 데는

10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관련글 보기 -클릭-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895년 4월,

유진 벨 목사 부부(1대)가 선교사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들 부부는 평생을 목포, 광주 지역에서 선교하다가 한국에 묻혔습니다.

딸인 샬롯 선교사(2대)도 결혼하여 일생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스티브 선교사의 어머니 로이스선교사(3대)는 순천 기독 결핵 재활원 원장으로

평생 결핵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로이스 선교사는 최근에 호암상을 수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코 우리가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고 예하고 따른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병이어의 순종입니다.



◑자원은.. 사실 큰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물질적 자원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자원

마더 테레사가 고아원을 세울 때

"테레사와 이 적은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에게 테레사와 이 적은 물질만 드리면

하나님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조약돌 5개만 갖고도,

하나님이 지금 골리앗을 무너뜨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때, 자기의 능력, 군비... 다른 것을 일일이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만 갖고도,

하나님이 지금 히브리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히브리 민족과 애굽의 군사력 따위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요6:6

그러므로 오병이어와 같은 상황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맙시다.

주님은 어떻게 하실지 다 아십니다.

5천명을 먹이실 어떤 계획이, 예수님 마음에 이미 세워져 있으셨던 것입니다.


<07.04.15. 인터넷설교 스크랩, 정리  *원 제목 :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라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