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 시126:1~6 09.02.15. 설교 스크랩
◑욕심 때문에 발전하면서도, 욕심 때문에 망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은 동물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지만 자동차를 발명하여
어느 동물보다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새처럼 날 수 없지만 비행기를 발명하여
어느 새보다 빨리 높게 멀리 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저는 수 만 리 떨어져 있는 손녀와 거의 날마다 전화를 합니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서로 얼굴을 보고 화상 전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통하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정확히 찾아 가기도 합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의 온갖 잡다한 소식과 지식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엄청만 속도로 빨리 발전시킵니다.
컴퓨터의 속도와 저장 능력 만해도 정말 엄청나게 발전하였습니다.
지금은 조그마한 칩 하나가 몇 기가가 되어 엄청난 양을 정보를 저장합니다.
이런 발전의 속도에서 가장 앞선 나라 중에 하나가 우리 한국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자 산업은 세계 최첨단입니다.
삼성과 엘지 휴대폰이 미국 시장의 40%를 점유하였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새롭고 놀라운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끊임없이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내게 하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것을 ‘욕심 (욕구)’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끝이 안 보이는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입니다.
남보다 빨리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가 발전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그것이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세계의 발전은 인간의 본능인 욕심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큰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욕심 때문에 발전하고 그 욕심 때문에 망합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죄의 원인이 바로 욕심이 이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과도한 발전은 공해를 가져왔습니다.
과도한 발전을 위하여 사람은 자원과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지구온난화를 두려워하고 있고, 실제로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지구와 인류는 큰 재앙을 입게 될 것입니다.
입게 될 것이 아니라, 벌써 지구 곳곳에 그와 같은 재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세상은 발전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나빠지고 있습니다.
악해지고 있습니다. 어리석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불행해 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엄청나게 부요해 졌지만,
사람들은 부요해지면 부요해 질수록 상대적인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남에게 지면 안 된다는 욕심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들들 볶고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만족을 모릅니다.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가 절필을 하고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분이 라디오에 나와 그 이유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책을 내면 보통 30만 권 정도가 팔렸답니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기독교계는 1만권만 팔리면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20만 권 정도만 팔리는 책이 나오면
그것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0만 권도 정말 대단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것 때문에 불행해 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하고 더 이상 책을 내지 않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절필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는 꼭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은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탈세속주의’도 능사는 아닙니다.
그래서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 중에는
욕심을 버리고 그 어리석은 경쟁에서 스스로 내려옵니다.
용감한 사람들은 아예 세상을 등지고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무한경쟁 속에서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삶에 휩쓸려 가는 것보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삶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욕심으로 인해 세상과 자신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 모두를 다 부인하고 산으로 들어가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워 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욕심(욕구)을 올바르게 사용합시다.
▲성경은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욕심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의 그 유명하신 산상보훈에서 찾습니다.
8복 중에 하나는 심령이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욕심 때문에 망하니 그런 욕심에 휘말리지 않고
욕심 없는 마음 즉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주리고 목마름’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욕심’이 됩니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대해선 욕심 없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는 주리고 목마른, 즉 욕심 많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목사이기 이전에 한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힘쓰고 몰두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금전출납부를 쓰는 이유
여러분들도 혹 아시겠지만 저는 8년째 금전출납부를 써오고 있습니다.
목사로서, 사업하는 사람도 아닌데, 금전출납부 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금전출납부를 기록하는 이유는
<제 욕심을 구체적으로 좀 컨트롤 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큰 교회의 목사입니다.
교회에서 주시는 생활비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그 외 인세와 강사비도 만만치 않아, 그것을 제 욕심을 위하여서만 쓴다면
아주 큰 부자는 못 되도, 세상에서 제법 부자들이 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흉내 내며 살 수는 있을 겁니다.
제게도 그런 욕망이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큽니다.
그래서 장부를 씁니다.
제 장부는 수입과 지출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는 얼마나 쓰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얼마나 지출하는가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8년째 스스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방법을 스스로 정하고, 8년째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저는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힘이 듭니다.
제가 스스로 세워 놓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심지어는 괴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고 의에는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될 때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 가십시다.
남보다 더 잘 먹고, 남보다 더 잘 입고,
남보다 세상적으로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남보다 더 잘 예수 믿고, 남보다 더 의롭고 가치 있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되십시다.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매달 수입의 몇 %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쓰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길들여 지지 않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욕심을 버릴 수 있기를 위하여 새벽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한번 되어 보십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제 구체적인 목표는
현재 수입의 40% 미니멈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낮은 목표입니다.
큰 아이 가정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이고
아직도 제가 오늘 제가 설교하는 말씀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의 1/3은 하나님께 유산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1/3은 우리 부부 몫으로,
1/3은 세 아들 몫으로,
1/3은 하나님의 몫으로 떼고 싶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일 매일 싸워야 합니다. 저는 이번 달도 싸우고 있습니다.
막내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지나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래도 돈이 필요할 겁니다.
써야 할 돈들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과 약속한 돈을 떼기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여간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말씀을 실제 삶에 적용해 봅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울며 씨를 뿌린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그 말씀을 그냥 읽습니다. 그냥 말씀으로 읽습니다.
울며 씨를 뿌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적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큰 아들 유학비용과 막내 결혼 비용으로
힘들지만 나 자신과 약속한 하나님의 몫을 다 채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는 것이 바로 울며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체험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저는 이번 달에도 하나님의 몫을 떼고
그것을 어디엔가 결정하여 보내겠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큰 일이 이루어진다.
오늘 시편의 말씀 중에 여호와께서 대사를 행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126:2
그 일은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큰 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5
<기쁨으로 거둘 단>이 바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대사大事>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뿌린 씨는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씨를 오병이어처럼 사용하시어 하나님께서 대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눈물 없이도 할 수 있지만,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일이 귀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교회에는, 그 역할을 감당하려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크고 넉넉한 교회에는 그 역할을 감당하려는 교인들이 적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셔도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도 할 수 있고
정의교회 리모델링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정말 우리 높은 뜻 교회에 필요한 것은 눈물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는 너무 쓸데없는 세상에 욕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정말 너무나 욕심이 없습니다. 설교 하는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장부까지 써가며 발버둥을 치지만 그게 너무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자신에 대해서는 부요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가난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는 하늘나라에는 보물을 하나도 쌓아두지 못하고
썩어질 세상에만 잔뜩 쌓았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면 정말 가난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욕심 있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더 많이 투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대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09.02.15. 인터넷설교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