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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가치, 관계적 가치 1844

LNCK 2009. 4. 15. 20:07
 

◈객관적 가치, 관계적 가치                마13:31~35                07년3월 설교스크랩



◑보석 같이 소중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어요!


한 아가씨가, 자기 생각에도 과분하게 생각되는 남자와 약혼을 하게 되어

무척이나 가슴 벅차 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6개월간의 약혼기간이 끝나고, 결혼식을 며칠 남겨두고

갑자기 그 남자와의 파혼을 선언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약혼자가 찾아와 사정을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어머니가 사정을 해도 왜 파혼을 선언하였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이처럼 훌륭한 혼처를 지금 놓쳐버린다면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녀를 설득했지만

그녀는 요지부동 입도 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문상담자를 불러 그녀를 상담하게 하였습니다.

전문상담자는 그녀를 만나자마자,

그녀가 그 남자에게서 크게 실망하였다는 것을 감지하였습니다.


한참 침묵하던 그녀는 얼마 후에 고개를 들고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보석과 같이 소중히 대우받기를 원했어요.’


그녀는 자기 약혼자가 모든 조건을 갖춘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자기들의 결혼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외적 조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보석 같이 소중히 여김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한 인격자로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과 일생을 같이 할 자신이 없어요.’


모든 인간은, 마땅히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으며 살아야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며

그럴만한 자격을 충분히 타고 났습니다.


‘나는 보석과 같이 소중히 대우받기를 원해요!’

이것은 그 자매의 소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원함입니다.


OK 인생, Not OK 인생


대인관계 상담학자 에릭 버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사랑으로 접촉을 받고 싶은 갈망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육체적으로 사람들은 사랑의 터치를 받아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성적으로, 바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적, 정서적으로 보석 같이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으며

존중과 축복을 받아야

정신적, 정서적, 그리고 영적으로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릭 버언은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는가, 존중과 축복을 받았는가에 따라서

OK 인생을 살 수도 있고 Not OK 인생을 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Not OK 인생은, 무슨 일을 만나거나 누구를 만나든지

‘나는 자격이 없어. 나에게는 능력이 없어.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하면서

자기는 값어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OK 인생은, 자기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살아가며,

자기는 이 세상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하나님이 그 목적을 다하게 하실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알게 됨으로써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행복하고 건강한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여러분들은 Not OK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OK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왔다/갔다, 올라갔다/내려왔다 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OK 인생, Not OK 인생은 자기가치, 또는 자아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인간인가에 대한

막연하지만 하나의 판단, 즉 자기가치/자아상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켄더스 퍼트는 최근에 ‘감정분자이론’을 내놓았습니다.

감정분자이론이란 ‘생각이나 감정은, 몸 안에서 특정한 화학물질로 변해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살면,

우리 몸에서 코르티솔이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코르티솔은 우리 몸을 닫히게 하고 위축시키며 힘을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능력의 반의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면

도파민옥시토신 호르몬이 뇌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활력, 의욕적인 생각과 추진하는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살면

환경조건이 아주 좋고 모든 여건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결국 불행한 인생을 살 것이요,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살면

아주 열악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자기 마음에 말씀이 꽂혀야 합니다.

모세와 기드온을 예로 들어봅시다.


▲모세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하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 말은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은 위대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하여야 합니다.

나는 결코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자기를 비하했습니다.


그런 모세가 언제 그렇게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를 다시 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나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고 확신하고 일어섰을 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의 속에 있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씻어내고

긍정적인 자아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기드온도 부정적인 자화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드온 시대에 미디안이 이스라엘 나라를 침공하여 식민지를 삼고 착취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미디안에게 빼앗길까 봐서 숨어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말씀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계시도다. 너는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삿6:12,14


하나님이 보실 때에 기드온은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능히 미디안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이 말은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약한 자입니다.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나 같은 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 자기를 비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를 다시 보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을 보았을 때에 그는 힘 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신감을 회복하고

미디안의 대군을, 3백명의 용사만으로 물리치는 대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개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시각으로/말씀의 시각으로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를 다시 판단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자기를 높이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적용


▲겨자씨 비유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①겨자씨는 속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씨앗을 숨겨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싹이 나서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나무가 되는 씨앗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②농부가 겨자씨를 심고 가꿀 때, 그 작은 씨는 새들이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됩니다.

겨자씨 자체로는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명의 씨를 감추고 있다고 해도 <농부의 수고>가 없이는

싹이 나서 자라서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농부는 예수님)


우리가 아무리 하찮고 미약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또한 겨자씨 같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르친다면,

신약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인간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임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큰 죄로 여기십니다.

약3:9절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일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일이라고 암시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니.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무시하고 학대하고 미워하고

사람들을 저주하고 괴롭히는 일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가를 받게 됩니다.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사람을 무시/학대하는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왕국이 책망 받은 죄 가운데

가장 많이 지적된 죄들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사람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착취하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하고 거짓을 행하는 등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기나 저주에 빠지게 한 죄들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불신자들에게 행한 것까지 갚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무시하면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희생하며 섬기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반드시 갚아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함이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축복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에게 하늘의 평강으로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존엄성/권위를 가져야

그러므로 겉모습으로, 신분이나 학력으로, 나이나 성별 때문에, 재산으로,

똑똑함 때문에 재능을 보고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누가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차별하여도 그 때문에 흔들리지 마세요.


여러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엄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누구 앞에서도 꿀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가지세요.

이것은 경건생활을 통해 자기가 위로부터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며 하늘의 평강을 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가치는 물건의 가치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는 객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천만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천만 원이요,

여러분들 중 누가 가져도 천만 원이요, 전문가가 그것을 가져도 역시 천만 원입니다.


물건에는 제 각기 값이 붙어 있고 그것은 누구에게도 같은 가격이 됩니다.

물건은 객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객관적 가치>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관계적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이 설교문 제목   

그 말은 사람들은 누구와의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싫고 미운 <마이너스 가치>를 가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값어치>를 가집니다.


▲여러분 막가파 주범 최정수 씨를 아십니까?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두 번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의 진홍 같이 붉은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용서하여 주셨다는 확신을 받았을 때에 너무 감격하여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시골에 사는 할머니가 그 먼 곳을 찾아와서

교도소에 있는 흉악한 죄수인 손주를 만나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쏟으며

감옥의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있느냐고 말씀할 때에 울었다는 것입니다.


막가파 최정수 씨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벌레요, 오물이요,

미친 개 같은 놈으로 취급을 당합니다. 그는 악한 종자요,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너무너무 소중한 존재요, 눈물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관계적 가치로)

그렇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들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집시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 자신/이웃을/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최정수 씨같은 존재라 해도)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을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관계적 가치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처럼 소중히 여기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은 존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들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 이웃을 사랑하듯이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듯이 여러분도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합시다.


하나님의 눈으로 봅시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영의 눈을 여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영의 눈이 열려서 여러분과 이웃과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보석,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형상들임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2007년 설교 스크랩                                                    ▣ 행복한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