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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밤에 찾아온 손님 1813

LNCK 2009. 3. 27. 08:21
 

◈밤에 찾아 온 손님           눅11:5~13             -설교 스크랩-

 


본문은 우리가 그렇게 많이 들었고, 실제로 이 말대로 많이 해 보았던

‘강청하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비유의 말씀입니다.



▲본문 앞뒤로 둘러싸인 정황 context를 살펴봅시다.

제자들이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①이 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처럼, ‘주기도문’를 가르쳐주십니다.

②그리고 오늘 본문 ‘강청하는 기도’의 비유말씀을 해 주신 뒤에,

③그 유명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이 연이어서 나옵니다.


기도에 관한 교훈이 세 부분이 연이어 나옵니다.

이것이 기도에 대해 예수님이 갖고 계신 생각을

총 망라하는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 사회적 풍습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소재(밤에 빵 빌리는 일)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풍습 중 하나였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동 지역에 여행을 다니던 사람들은,

낮에는 해가 뜨거워서 잘 안 다니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니다가,

정오가 되면 그늘에서 낮 잠자고 쉬다가, 저녁때가 되면 다시 움직이고 했으니까,

아마 밤늦게 친구네 집에 방문하는 일은 다반사였던 것 같아요.


다 잠자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찾아오니까, 미리 준비해 둔 음식이 없었습니다.

혹시 옆집에는 빵이 있을까 싶어서, 옆집에 가서 빵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가끔씩,

먹다 남은 빵을 남겨 두어서 발효시켜 이스트를 만듭니다.

그래서 그 빵을 염두에 두고 이웃집에 찾아간 것 같아요.


왜 강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을까요?

아마 밤이 깊어서, 일어나서 불을 켜고, 식구들까지 다 깨우게 되고,

매우 귀찮은 상황이어서 아마 쉽게 응대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당시 사회적 풍습을 가지고, 예수님은 ‘강청하는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강청기도란?

 

▲1. 자기 체면을 돌아보지 않는 뻔뻔스러운 기도

주기도문은 기도의 <내용>을 가르치신 겁니다.

이 비유말씀은 기도의 <마음가짐, 자세>에 대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강청하는 마음가짐으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해 보시죠.


그동안 강청하는 기도를, 어떤 기도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강청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

말 그대로 <강하게 요청하는 기도>라고 생각해 왔어요.

흔히 우리는 강청하는 기도는 

<물러나지 않는 각오를 가지고, 이루어 주실 때까지 기도한다>라고 이해합니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금식과 철야로 기도한다.

그래서 다니엘 기도, 40일 약정기도. 등등을 강청하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강청하는 기도는 이런 기도가 아닙니다.


강청이라는 말의 헬라어 뜻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에요.

‘체면을 돌보지 않는다’ 는 뜻이 들어있어요.

쉽게 말하면, 뻔뻔스럽다는 뜻입니다. 즉, 뻔뻔스럽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한 밤중에, 이웃집 문 두드려, 빵 좀 달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얼마나 뻔뻔스럽습니까?

자기가 부모에게 무엇을 예치시켜 놓은 것처럼, 손 내밉니다.

그런데 다음 2번이 중요합니다.


▲2. 타인을 위한 기도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안의 소원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죠.

이 비유에서 이런 단어를 쓰시는 문맥은, 지금 누가 누구의 빵을 구하고 있습니까.


친구가 먹을 빵을 구하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기도의 초점이,

내 배가 고파서 잠자고 있는 이웃을 깨우는 몰염치, 뻔뻔함이 아니라,

친구가 굶주려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그 친구를 위해

자기가 체면을 돌보지 않고 염치없는 짓을 불사하고 있는 겁니다.

강청이 이런 거예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 다음에 주님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기도에 대해 계속 가르치시는데요...


▲3.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밤 중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강청 기도하는 것은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즉 기독교인의 기도는 뭐냐? - 배부른 자의 기도입니다.

<내 배가 부른 사람들이, 배가 고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체면을 돌아보지 않고 하는 기도>가 ‘강청하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배부르다’는 의미는

‘하나님으로 충만하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당연하죠. 자기 영혼이 은혜로 충만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갈급한/처절한/허기진 상태를 보면서

중보기도 해 줄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영적으로 지치고/허기진 사람은

옆 사람을 위해서 기도 못 해줍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의 상태는 <충만하지 못한 상태>

그런데 제자들의 상태를 보시더니,

제자들이 강청하는 기도를 드릴 수준이 안 되어있음을 아셨어요.


자기 배가 부른 상태에서, 즉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남의 배고픔을 위해, 즉 영적으로 굶주린 상태를 보고 안타깝게 여겨서,

자기 체면을 불사하고 강청할 수 있는데,

지금 제자들 수준이 영적으로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연이어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찾으라 그러면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너희가 먼저 배불러져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v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v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v.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

 

v.13.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영적으로 허기지면, 돈/자식/건강 문제가 크게 보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 있어요.

언제나 <주님은 성령님으로 배부른 상태>에서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린 상태>에서 말씀을 듣고(성경을 읽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해석이 너무나도 엉뚱하게 나와요.


강청하는 기도를 어떻게 해석 하냐면,

<지금 내가 배고파하는 것들을 얻기 위하여 땡깡을 부리라>고 이해해요.


여러분이 배고파하는 이유가 뭡니까. 돈, 건강, 자식.

이런 배고픈 상태를 해결해 달라고 강청을 해도

그것으로 배가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세요.


저의 집사람이 어디서 강냉이를 제 키만 한 것을 사왔어요.

밥 달라고 하면 강냉이부터 먹고 있으래요.

밥 하는 동안에, 그것으로 배를 채우라는 거예요.

강냉이나 옥수수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데, 강냉이는 이상해서 계속 먹게 되요.

지겹다고 하면서도 계속 먹어요.

그것 먹는다고 영양 없는데, 헛것을 자꾸 먹이는 거예요. 배부르라고.


여러분이 돈 때문에 배고프잖아요? 돈도 강냉이입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 안 불러요.

만주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들이 먹인 게 강냉이에요. 영양실조로 다 죽었어요.

돈, 자식, 이런 것으로 배고프시죠?

그런데 진짜로 왜 배고픈지 아세요?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래요!


주님이 하신 모든 말씀과 사역은 하나님으로 배부른 상태에서 하시는 것이라서,

이런 말씀을 바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렇게 돼야 합니다.

그러기 되기 전에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왜곡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돈이 없어 급급한 사람에게 강청하는 기도를 딱 설교합니다.

바로 아다리가 되어 그냥 구하게 됩니다. 이건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딱 한 가지!

제가 좋아하는 비유가 있어요. 병원에 가면 진료 과가 수십 가지 있어요.

각 과도 다시 전문분야로 과가 나눠지고요.

반면 알레르기 때문이든, 심장이 두근두근해서 가든, 손발이 차서 가든

한의원에 가면, 한의사들은 진맥만 합니다. 한군데 손목 맥만 짚어서 봅니다.

양의들은 보지 않으면 못해요. 내시경을 집어넣어서 봐야 알 수 있어요.

그런데 한의사 들은 눈을 감고 느껴요.


바로 이거에요. 자식 때문에 아프죠, 돈이 안 벌려 슬프죠.

그러면 우리는 돈 위해 기도하고, 자식위해 기도하고..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만 진단하면 되요.

자식문제도.. 하나님이 없어서 문제고,

돈 문제도.. 하나님으로 배부르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진짜 하나님으로 배부른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

그런데 하나님으로 배부르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속으로 ‘뭔 말을 하는 건지...’ 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자식이나 돈이나 부족한 점이 생기면, 얼른 진단을 하세요.

‘아, 지금 내가 하나님으로 배고프구나! 그래서 생활에 염려가 생기는구나!’

하고 빨리 깨달으세요.


그리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시는 이유가 성령으로 배 부르라는 겁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하는 일이 뭘까요.

성령이 하시는 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이 보게 하고,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을 느끼게 해 주고,

맛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맛보게 해 주시는 것이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내 삶에 만족을 주십니다. 배부르게 하십니다.


그제야 이웃의 허기짐이 눈에 보이면서.. 간청하는 기도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구해서 내가 먼저 배부른 자가 되지 않고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강청하는 기도’가 도저히 나올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입맛 바꾸는 시간이 필요함

17년 만에 얻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밥을 잘 안 먹어서 늘 걱정입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왔는데, 어느 날 옷에 뭐를 잔뜩 묻혀 와요.

다른 애들은 먹고 더 먹는다는데, 우리 애는 통 안 먹으니까 

옷에 음식을 묻혀 오면 집사람이 너무 좋아합니다. 얘가 급식 먹었다고...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젓가락질이 서투니까, (외국에 살다 와서 아직)

김치 하나를 집어서 떨어뜨리고, 그것 주어서 먹으려다 또 떨어뜨리고,

또 줍고 하면서 계속 옷에다가 흘렸고, 결국 안 먹고 말았는데,

집사람은 많이 먹느라 흘린 줄 알고 좋아했던 거죠.


1주일 식단을 보면 너무 맛있는 음식들로 영양사가 생각해서 계획되어있는데,

쫄쫄 굶고 와요.

자기 입맛이 아직 거기에 적응이 안돼서. 급식을 못 먹는 겁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다 차려져 있어요.

여러분의 입맛이 그것을 거부하고 안 먹고 있을 뿐이에요.

자, 이제 하나님으로 배불러 보세요.

그리고 세상을 보세요. 정말 굶주린 자들이 보입니다.

 

복음에는,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모든 준비가 다 차려져 있어요.

우리 입맛이 그걸 아직 모를 뿐이에요.

학교 앞에서 파는 불량식품에만 잔뜩 입맛 들여 있습니다.

애들이 불량식품 맛있다고 사 먹을 때, ‘나도 똑같구나!’ 속으로 회개하세요.


▲자기 배가 부른 사람에게, 이제 강청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나의 죽음이 실천되고 있는 동안에

성령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실재가 우리 마음에 느껴지고,

하나님만을 좋아하고 하나님으로 배불러지면

세상을 여유자적하게 보게 되고,


(영적으로) 허기지고 배고픈 친구가 찾아오면,

그 친구도 같은 하나님으로 배부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기도가

바로 강청하는 기도입니다.


▲정리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주기도문으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내용을 가르치시고,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으로 배불러야 하는데

나를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께 체면 내려놓고 구해야 하는데,


제자들이 하나님으로 배부르지 않은 것을 보시고

<먼저 성령을 구하라>고 하시면서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하나님으로 배부른 상태에서

밤 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간청하며 기도해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점점 바꾸어 가자...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교 :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강청하는 기도/ 눅18장                                 ▣ 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