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르시는 하나님 시125:1~5 09.03.01. 설교녹취
성도는.. 그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게/똑같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배려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1. 성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125:1
▲성도가 흔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흔들리는 모든 것은, 다 불안한 것이다.
경제 광풍이 불어오니 미국의 대기업도 흔들리고, 나라들도 흔들린다.
여러분, 세상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흔들리게 되어 있다.
문제는,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흔들리는 것인데
내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
하나님은 성도의 요동함을 허락지 않으신다. 시55:2, 125:1등 ↑
성도가 흔들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시어머니가 괴로운 며느리 ★
어떤 며느리가, 아주 고약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가 얼마나 며느리를 피곤하게 괴롭히는지...
하루는, 며느리가 남편에게 슬쩍 이렇게 물었다.
‘여보, 만약에 당신 어머니와 내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부터 먼저 구조할거야?’
‘거야 물론 우리 어머니부터 구조해야지!’
부인은 그만 단단히 시험에 들었다.
가뜩이나 시어머니가 힘든데, 남편까지 시어머니 편으로 여겨졌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우울증에 빠져서.. 상담가를 찾아갔다.
‘원장님, 보세요. 남편마저도 제가 믿지 못하겠군요!’
이것은 실제로 상담기록에 나오는 실화이다.
상담가는 이렇게 상담해 주었다고 한다.
‘부인, 남편이 누구를 먼저 구조할 것인가... 그런데 신경 끊고,
차라리 수영을 배워보시죠!’ (일동 웃음)
정말 간단한 해답이었다.
여러분, 주변 환경이 모두 나를 흔드는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빠져나오면 되는 것이다. 내가 수영을 배우면 되지 않는가!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평/불만/원망하면서도, 수영 배울 줄은 모른다.
불평/원망하는 시간에...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자.
더 이상 주변 환경 때문에, 누구 때문에 괴롭다는 생각/말을 하지 말자.
답은 내 안에 있다.
내가 빠져나오면 된다. 내가 바로 서면 된다.
내가 요동치 않으면 된다.
아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시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125:1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62:2
▲자기 몸에 힘을 빼시라
자기가 어떻게 자기 인생을 붙들어 보려고, 힘쓰고 용쓰지 말고,
자기 몸에 힘을 완전히 다 빼시라.
그리고 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한 번 느껴 보시기 바란다.
내가 막 용을 쓰면, 주님이 나를 잘 핸들하실 수 없으시다.
※관련글 : 주님게 맡기는 것은, 사실은 주님께 맡겨져 있음을 믿는 것이다.
◑2. 하나님이 두르신다 (완벽하신 보호자)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125:2
▲예루살렘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들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들이
자기 시야에 들어왔을 것이다.
예루살렘 동편에는 감람산이 있다.
북쪽에는 스코푸스 산이 있다.
남쪽/서쪽에는 여러 높은 언덕들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보호가 이렇다.
다른 시편은, 하나님의 보호를 이렇게 노래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시91:1~4a
▲그런데 성도들은, 자기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고 느낀다.
도단성에 게하시는, 완전히 적에게 노출/포위되어 있다면서 벌벌 떨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엘리사는,
하나님의 군대가 자기들을 둘러 진치고 지켜주고 있음을.. 보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믿지 못하는.. ‘게하시’들이 있고,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왕하6:15
천군천사 불병거의 완벽한 보호를 믿는 ‘엘리사’들이 있다.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보다 많다.’ 왕하6:16
적은 우리를 포위하고 있지만,
그 적들을 다시 포위하고 있는, 천군천사들의 위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 방어하려고 하지 않고, 방어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때.. 보게 된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시34:7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
칠레에서 한인 자녀들 여름 수련회를 인도할 때였다.
집회 마지막 즈음에, 청년들이, 시내에 바람 쐬고 오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했다.
“얘들아, 사람들 조심하고 빨리 들어와라!”
그러자 한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사람들이 아마 우리를 보고 더 두려워할 걸요?”
그들은 다 태권도 유단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각별한 은혜를 받았다.
비수처럼 제 마음에 꽂혀 왔다.
‘그렇지,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악한 영들이.. 우리를 보고 두려워하겠지!
하나님 백성이 그런 거야!’
여러분, 사실은 세상이.. 성도를 두려워하고 있다.
성도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히11:38
내 속에 계신이가 세상 보다 크심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자 요일4:4
◑3.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하신다.
악인의 규scepter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로다 시125:3
▲악인의 규 - 침략자의 막대기/폭정을 의미한다.
악인들의 심각한 공격과 핍박이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잠깐 동안은 하나님이 허락하실지언정
하나님의 백성이 자빠질 때까지는... 허락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사람이 오래 고난을 겪으면.. 죄를 지으면서까지 그 상황을 탈출하려고 한다.
일례로,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을 사람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너무 극심한 고난을 겪으면.. 어쩌면 죄를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악인이 강제로, 의인에게 죄를 짓도록 억누를/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나님은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신다.
그래서 의인으로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하신다.
하나님은 내 삶을 위해 완벽한 섭리를 진행하시기에... 우리는 참으로 안전하다.
▲악인이 주는 고통이 너무 힘들면.. 우리는 믿음마저도 버릴 수 있는 약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을 허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로다 시125:3
악인이 강하게 대적하면,
의인도 보복할 수 있다. 의인도 똑같이 일어나 칼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막아주신다는 것이다.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신다는 것이다. 고전10:13
구약을 보면, 이방이 이스라엘을 잠깐씩 이기는 것은.. 허락하셨다.
그런 계기를 통해서라도, 부르짖고 주께로 다시 돌아오라고.. 허락하셨다.
그러나 악인의 침략의 막대기는, 결코 이스라엘을 오래 괴롭히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돌이키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 막대기는 곧 부러졌다.
▲악인의 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오늘은 삼일절, 과거에 일제는 우리나라를 너무 괴롭혔다.
우리 언어를 말살했다. 창씨개명을 통해 우리 이름을 못 쓰게 했다.
선조들은, 일제에 맞서서 비폭력 무저항 운동(31운동)을 일으켰다.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만방에 선포했다.
그 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투옥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대해 완벽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기묘하게 섭리하셨다.
일본이 승승장구하면서, 그 기세가 영원할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1945년에 해방될 것을, 기한을 갖고 계셨다.
아무도 몰랐지만, 하나님은 줄을 그어놓고 계셨다. 일본은 패망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때 당시 성도들은 크게 2가지 문장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주여,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나간 얘기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라는 식으로 기도드릴 필요는 없었다.
주님은 놀라운 섭리와 완벽한 계획 속에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사실 우리 민족이 한 행동은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독립은, 하나님의 때에/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의 압제가, 영원한 것도 아니었고, (지나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09.03.01. 설교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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