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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 1902

LNCK 2009. 5. 22. 15:01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           창24:1-9               -07.01.15.설교스크랩, 출처- 

                                                                                      *원제목 : 사통팔달의 경지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창24:3



아브라함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설명은, 24장 이삭의 신부를 고르는 내용입니다.

24장을 끝으로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의 이야기가 나오고, 죽었다는 보고가 될 뿐이지

아브라함의 행적을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며느리를 구하기위해서 집의 일을 맡아보던 종과의 대화를 통해서 보여 지는

그 아브라함의 원숙한 믿음의 경지는

정말 ‘도통한 경지/사통발달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삭의 아내 구하는 일을, 종에게 맡겨버립니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 땅의 티끌처럼 많은 자손’을 허락하시기위해서

그러한 약속이 이루어지는 첫 번째 고리로 이삭의 아내를 구해야 되는 이 사건,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그 언약의 실현의 첫 번째 고리가 되는 이삭의 아내,


이것을 종에게 맡겨버립니다.

종을 보내고 종이 골라오는 여자를 이삭의 아내로 삼으려고 합니다.


사통팔달의 경지에서 이제 아브라함이 보는 것은

모든 사람 속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나와 관계해서,

적어도 아브라함자신과 관계해서

모든 사람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고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믿게 됩니다. 그 집사, 종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맡겨버리는 이유

-그 집사가 어떤 행동을 보였던지 간에

-종의 성품이 어떤 사람이던지 간에

-여자를 보는 그 여성상의 시각이 어떠하든지 간에... 상관없습니다.


왜요? 결국은 나와 관계된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손해를 주시고, 나에게 해가되고,

나에게 큰 장애가 될 일들을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안에서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믿습니다. 보냅니다. 임무를 맡깁니다.

이게 사통팔달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이야기에요.

 

▲도통한 경지에 이른 모세

바로 왕이, 모세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것을 막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왕을 격동시킵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로막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왕을 아주 완고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바로 왕이 아주 못되게/모질게 굴었지만, 약속을 여러 번이나 변개하지만,

모세는.. 더 위에 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놈이 못된 놈이다!’ 하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과 관점이 약간 다르지요?

말하자면 이것이 ‘사통팔달/도통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를 내버려두심

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팝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통해서 구원사건이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십니다.

그러니까 제지하지 않습니다.

그냥 끝까지 가룟 유다를 믿어주실 뿐입니다.


만약 그가 막장까지 가서, 스승을 배신하더라도..

또 하나님이 그 일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르니까 내 버려 둔 것인데

결국에 가룟 유다의 배신은.. 주님의 십자가를 이루는데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잘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막장까지 가는 잘못을 범했지만,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눅22:22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합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재판권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봅니다.

 

결국 만물과 만인에게서 또 만사에서

하나님의 섭리/역사/주권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생각/판단과 틀려도 .. 그냥 아버지께 다 맡겨버립니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며느리가 어떤 여자가 집안에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집안이 망하느냐/ 흥하느냐가 결정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형제간의 우애, 이것을 절대로 형제들끼리의 우애 갖고 되지 않습니다.

 

그 집에 들어오는 며느리들, 동서지간의 관계를 통해서

그 집안의 화목이 유지되는 것이지 남자들은 맥을 못 춰요.

어떤 여자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확 달라집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냥 종에게 맡겨버리고

그 종이 데려오는 여자를 그냥 아내로 삼으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믿어버립니다.


나와 관계된 사람 속에서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 사람 자의대로 나에게 행해서

내 인생의 장애가 되도록 만들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됨됨이나 모든 것들을 깡그리 무시해버립니다.

이게 도통한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의 잘/잘못을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사람을 껴안을 수 있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가 나를 해롭게 할 수 없는 것은 (결국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은)

나와 관계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삶을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  창24:3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라고 아브라함이 부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땅의 일’도 세밀하게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땅의 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었다는 것이죠.


 

▲예수님도 ‘현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땅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합화를 보라 저 백합화가 옷을 만들고 천을 만들지도 않지 않냐?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이 저 꽃 하나만 못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땅에 도달한 백합화를 보면서.. 하나님을 주시하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게 사통팔달의 경지에요.


아브라함은 ‘땅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면,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 말씀하신 것이죠.

그래서 과거에 ‘일거수일투족을 다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을 자주 썼습니다.

(손 하나 드는 일, 발 하나 움직이는 일까지 하나님이 다 주관하신다는 말)


▲손놓고 있는 요셉

요셉이 형들에게 팔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라.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먼저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닙니까? 두려워하지 마시옵소서.


요셉은, 형들의 모든 행동에 대해 손놓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엄밀한 의미로, 내게 <원수>는 없습니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누구도 내게 장애가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찾아와서 ‘누구가 당신의 원수’라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원수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내 삶을 형통하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아무리 원수가 악하고 그 능력이 크다고 해도

나를 관계하는 동안에 있어서는

하나님에 의해서

‘나에게 그 원수가 (결과적으로는)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원수>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내 돈을 뜯어먹고, 나를 상해했습니다.

내 명예를 추락시켰습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절대로 저 사람이 나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를 상해할 그때에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셨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길을 열어주고 계시고,

내게 꼭 이루어져야 될 일들을 위해서

저렇게 역사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내가 믿게 됩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보내면서, 아브라함은 이 종을 믿었습니다.

종이 선택하게 될 여자(며느리)가, 누구를 선택하게 될지 모르고

어떤 여자상을 택할지.. 아브라함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관계된 이 종이 하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고려하실 것이다.

저 종이 선택하고 저 종이 마음을 먹고 쓰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서 나를 생각하셔서 역사하실 거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만물 만인 만사에서 하나님을 보게 될 때.. 천국이 임합니다.

천국이 뭐예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천국 아닙니까?

원수가 내 옆에 있어도.. 원수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내 옆에 있는 것이고

일이 되던 안 되든 그 일속에 계신 하나님이.. 내 옆에 있는 것이고

이게 천국입니다.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원수에게서까지 하나님을 봅니다.

아이들이 말썽피우는데 그 말썽피우는 아이들 속에서까지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면서 이 집안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하늘나라가 가득한 것이 보입니다.

온 천지가 하나님으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후략)


 

{질문} 그러면 여름수련회 같은 행사할 때, 팀장에게 일임하고 뒷짐지고 있으면 다 되나요?

현실은 다 망치잖아요. 맞습니다.

먼저 팀장을 신실한 사람으로 뽑아야 하겠죠.

그리고 팀장과 팀원들이 밤새워 철저히 준비해서 잘 끝났다고 하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말이 '교회가 자꾸 이벤트로 간다' 아닙니까!     *이벤트 (신앙적 본질이 빠진 행사 위주)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