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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십자가와 선교 1884

LNCK 2009. 5. 11. 19:54
 

◈십자가와 선교                           막8:34                       09.04.08.설교녹취


 

◑선교는 실제로 <고난>을 통해 진척되어진다.                                   


기독교 선교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다.

선교의 실제는 <십자가의 고난>이다.


선교는 요구되는 대가를 누군가 치르지 않고는, 결코 열매가 나오지 않는다.

십자가의 고난 중에서,

오늘날 우리 시대에 감당해 줘야할 우리의 몫을.. 누군가 채우지 않으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기독교 선교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 교회의 부흥에 따라서 치러진 대가

지난 3~40년 사이에, 중국 교회에 놀라운 부흥이 있었다.

수 십 만 명이던 기독교인들이.. 1억 가까이로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그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어째서 중국에 이런 일이..?’


간단한 대답으로 ‘성령의 역사다’라고 말한다.

지난 3~40년 사이에, 중국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고,

사도행전에 기록된 모든 기사와 표적이 그대로 중국에 재현되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도, 심지가 있어야 타오른다.

이것은 비유로 설명하면, 마치 벙커C유와 같다.

벙커C유는 원유를 정제할 때, 가장 나중에 나오는, 가장 뻑뻑한 기름이다.

그래서 휘발유와 달리, 성냥불을 벙커C유에 갖다 대도, 오히려 성냥이 꺼져버린다.


벙커C유에 불이 붙으려면..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단 불이 붙기만 하면, 벙커C유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갖고 타오른다.


설교자가 성령의 역사를 벙커C유에 비유하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곳에는, 누군가 심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 인생을 심지처럼, 희생/고난/십자가의 길을 간 것이다.

심지를 통해서, 전체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것이다.


중국에 큰 부흥이 일어난 이유도

수많은 성도(젊은이)들이, 그간 3~40년 사이에, 자기 인생을 심지처럼 내어드렸다.

십자가를 지고서, 고난의 대가를 치렀다.

심지들을 통해, 중국 전역에서 성령의 불이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여러분, 이것은 중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2천 년간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성령의 역사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났다.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특별히 귀하게 사용하신 사람들의 공통점도 한 가지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서, 자기 길을 꿋꿋이 걸어갔던 사람들이다.

마치 심지처럼, 자기 삶을 불태워 드렸고,

심지를 통해서, 그 시대 전체에 불이 붙는 큰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유럽 대륙에 기독교 전파를 가져온 아일랜드의 켈트족 수도사들 / 5~7세기

기독교 역사에 의하면, 그들은 5~7세기 경, 해외선교의 선두주자였다.

그들은 선교사로 떠날 때 ‘빼레그레나찌오’ 라는 서약을 하고서 떠났다.

그 서약을 하면, 그들에게 3가지 색으로 된 조그만 깃발을 달아주었다.

(마치 프랑스 국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이 3가지 색깔의 깃발은

<내 인생 가운데 3가지를 포기하겠다고 나는 서약했다>는 것을 뜻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포기한다.

-나에게 익숙한 고국/문화/환경을 포기한다.

-나에게 편안한 모든 미래를 포기하겠다... 를 의미했다.


여러분, 잠시 30초만 묵상해 보시기 바란다.

어느 한 가지도, 우리는 절대 포기 못할 것들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그 ‘아일랜드 켈트족 선교사’들 때문에

5~7세기에, 독일에 복음이 전파되어졌고,

벨기에 지역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유럽의 (남동쪽 로마가 주춤하는 사이에) 반대로 북서쪽에서부터 선교가 번져나갔다.

‘빼레그레나찌오’의 놀라운 위력이었다.


성령의 역사는 그저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반드시 자기를 태워서 죽이는 ‘심지’가 필요하다.

5~7세기에는, 아일랜드 캘트족(영어로 셀틱)이 심지 역할을 감당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놀랍게 사용하셨다.


▲윌리엄 보덴 이야기   William Boden

그의 부모가 대부호여서, 그는 세계 일주 여행을 다녔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을 다녀보니

아주 불쌍하고 가난하며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고, 마음에 큰 부담을 느꼈다.


그는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신학교 입학하기 전에, 자기가 물려받을

어마어마한 유산을 다 정리해 버렸다.


그는 신학교에 입학해서, 자기 성경책 첫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당시 자기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글을 한 문장 남겼다;

No Reserve!  (나를 위해) 아무 것도 남기지 않겠다! 는 뜻이다.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집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부친이 돌아가셨다. 이제 집으로 와서 집안을 대신 이끌어라’


그는 고민하고 기도했다.

그 때 그는 다시 성경의 앞 페이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No Retreat! 후퇴하지 않겠다! 는 뜻이었다.


그는 중국에 가서, 중국의 소수민족 무슬림들에게 복음 전하기 원했다.

그래서 먼저 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이집트에 도착했다.


그가 이집트에 도착한지 얼마 후에

미국의 그의 가족들은 비보를 듣는다.

‘윌리엄 보덴이 이집트에서 병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에 가서 4달 밖에 안 되었는데 척수뇌막염에 걸린다.

그리고 그 병에 걸린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사망하게 된다.

그의 나이 겨우 26세였다. (이 단락, 다른 설교에서 펌)


그는 자기가 원하던 선교지에 발도 디디지 못했다.

그의 유품이 미국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성경책 앞장에는 마지막 세 번째 이런 문장이 기록되어 있었다.

No Regret! 절대 후회 없음


그의 묘지에 이런 비문이 적혔다고 한다;

윌리엄 보덴  1887~19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


윌리엄 보덴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의 란초우에 가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병원을 세웠고,

중국의 무슬림들을, 그 병원을 통해서, 주께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놀라운 ‘십자가 희생정신’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져서 (이렇게 한국에서 설교에 언급될 만큼)

수많은 제2의, 제3의 보덴을 낳고 있다.

No Reserve/ No Retreat/ No Regret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계속 낳고 있다.

 

          윌리엄 보덴 


▲신학교 제 교수실에는 독특한 달력이 하나 걸려 있다.

몇 년 전 달력이지만, 제가 계속 걸어두는 이유는

중국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 달력에 많이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뿐만 아니라, 어떤 분들은 자기 가족의 목숨까지

(선교사든지, 자국인이든지) 중국선교를 위해 목숨을 다 버렸다.


그들 중에는, 제가 이름을 아는 사람도 있고,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중국의 소란스런 정국가운데서 폭도들이 일어날 때, 종종 순교가 일어난다.


그들이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교회를 세웠고, 얼마나 전도했는지.. 저는 잘 모른다.

그 달력에도 그런 소개는 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은 <십자가의 고난에서 자신들의 몫을 기꺼이 맡아서 담당했던 분들>이었다.

그러다가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무도 기대 못했던 이적을 중국 땅에 행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에 맞추어서,

십자가의 고난의 몫을 이어갈 사람들이다.

자기가 감당해야할 몫을 기꺼이 심지처럼 드려서

자기를 통해서 성령의 불이 활활 크게 타오를.. 그런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저희 신학생 중에 한 명이 위클리프 선교사가 되어서

이리안자야(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 선교를 꿈꾸고 있었다.

참 훌륭하고 깨끗한 형제였다.

어느 날 제가 믿지 못할 소식을 들었다. 그 형제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리안자야를 탐방하기 위해서 갔다가,

왜 죽었는지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냥 물가에 죽은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형제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품었다.

‘저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괜한 희생 아닌가?’

괜히 선교한다고 애쓰다가, 선교를 해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으니...

차라리 선교 안 했으면, 죽지도 않았을 터인데...


제가 그 형제의 장례식 때, 이렇게 조사를 했다.

‘이 형제는, 십자가의 (남은 )고난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을 감당했다고’..

‘그래서 그의 삶은 누구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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