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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웃다가

LNCK 2009. 5. 20. 21:00

 

◈울다가 웃다가        시35:1-28           -09.04.14.설교스크랩/정리-

                                                                                                           

 

▲본문 구조 분석

이 시의 배경은, 사울 왕에 의해서 쫓김 당하던 시절에 쓴 시에요.

본문 시35편에서 바울은 감정의 아주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줍니다.

울다가/ 웃다가 하고 있습니다.

 

 

A : 1~8절까지, 대적들에 대한 원한이 가득 서린 듯한 기도가 있다가

B : 9~10절, 갑자기 분위기가 180도로 바뀝니다.

    펄쩍펄쩍 뛸 만큼 기뻐하는 마음의 표현이 이루어집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9

 

A : 그러다가 또다시 11~17절까지 원수들이 대적하는 상황,

    어떻게 나를 괴롭히며,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얘기를 쭉 하다가

B : 18절에, 또 갑자기 감사 찬송을 노래합니다.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다. :18

 

A : 또다시 19~26절에 부당한 원수들의 처사에 대해 다윗이 울다가... 

B : 마지막 27~28절에, 또 찬송하며 끝을 맺습니다.

                                    나의 혀가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28

 

여러분,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현실에서 어려움을 당하면... 울다가

주의 구원하심과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 웃고

이렇게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일상의 삶입니다.

 

 

▲1절,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지독한 이기주의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혼자 독점하고, 마치 전세 낸 것 같습니다.

자기와 다투고, 싸우러 오는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대적이라는 뜻이지요.

 

세상에 어느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과 한편인 자가 있겠습니까?

하여간 자기와 다투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거예요.

 

다윗이 이렇게 큰 소리 치는 이유는

자기가 완벽하게 하나님과 한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다윗처럼, <하나님과 한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바로 9절과 10절에 답이 나온다는 거예요.

 

▲9절,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즐거워함’은 히브리어로 ‘길’인데, 그 뜻은 ‘빙글빙글 돈다’ 입니다.

너무 기뻐서 빙빙 돌면서 펄쩍펄쩍 뛰는 걸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다윗은 지금 대적들에게 둘러싸여있습니다.

 

 

대적이 둘러싸여있는 가운데서도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과 손을 잡고 강강술래 춤을 추듯이

펄쩍펄쩍 뛰면서 빙글빙글 돌면서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고 기뻐하는 환희의 마음이 있어요.

 

성도의 삶이 그렇습니다. 울다가/웃다가 합니다.

현실의 삶은, 대적에 둘러싸여.. 울상이지만,

기도를 드리다보면, 도리어 하나님의 구원으로.. 기뻐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내 대적은 모두 하나님의 대적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워주실 것이다’ 35:1

이런 (어쩌면 과대망상적) 자기중심적 신앙이 생기는 것은,

주님의 도우심과 구원하심에 대한 확신이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9절b,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다윗이 지금 원하는 것은 사울 왕이 쫓아오고 있는

그 곤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해주셔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수 있어야.. 그것이 자기에게 기쁨이 된다는 거예요.

 

(적용) 그러니까 지금 내게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는데 형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형님이 도와주시더라도

분명히 하나님이 형님을 통해서 도와주신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그때 기쁘다는 겁니다.

무조건 돈이 생겨서 돈의 곤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아니에요.

돈 자체의 의미가 없어요.

 

여러분, 만약 우리가 다윗처럼 곤경 중에 찬양이 아직 안 나온다면

작은 곤경을 겪었고, 작은 구원(해결)을 받았기 때문에, 극적인 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받은 응답이 너무 작아서, 춤이 안 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다윗처럼 정말 절체절명의 상황 가운데서 구원을 받으면,

다윗처럼 빙빙 돌며 춤을 추게 되고(즐거워하며, 9절)

원수들을 향하여 큰소리까지 치게 됩니다. (1절)

 

예를 들어, 아들이 공부 안 하고 늘 말썽부린다고.. 엄마 입에서 매일 불평만 나오죠..

그런데 그놈의 아들 한 번 집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봐요... 찬송 나옵니다.

 

 

 

(예화) 남편 바람끼로 평생 마음 고생하면서도, 예수 의지하고 행복하게 사신 할머니

어떤 할머니가 만주에서 시집을 오셔가지고 두 살 아래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셨습니다.

16세에 결혼을 하시고, 그 때 할아버지가 14세 되셨어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하여간, 여러 분들과 저희 아버지의 증언을 따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클라크케이블 같이 너무너무 잘 생기셨대요.

 

그런데 하여간 뭐 얼굴값을 하시느라 그러셨는지

고등학교를 서울에 경신고등학교에 유학을 보내놨더니

아프다는 전갈이 와서 그 할머니가 불원천리하고 서울에 병간호하러 내려왔는데

아, 그 하숙방 문 앞에, 세상에 여자신발이 있더라는 겁니다.

 

만주에서부터 불원천리하고 그 어린신랑을 간호하겠다고 내려오신 할머니의 심장이 어땠겠습니까?

덜컥 내려앉지요. 그리고 그 길로 만주로 다시 올라가셨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바람기를 죽이지 못하셔가지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시고

그런 와중에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되셨지요. 그러니까 예수님 신랑을 얻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가 고맙지요.

따뜻하고 자상하고 아내에게 잘하는 남편이었다면 예수님 안 믿으셨을 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하여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단 하루도 새벽기도를 안 빠지시고

쭉 나가시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 기쁨에 젖어 평생을 사시다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사람이 삶에 희로애락이 있잖아요. 아무리 깊은 신앙인이라도 울다가/웃다가 합니다.

이놈의 신랑이 집에 돌아와야 말이지, 그러니까 속이 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주 벌판에서 겨울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데

그 들판에 있는 샘물가로 가서 망치로 얼음을 깨가지고

그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시면서 그래서 마음 달래시고 사셨다는 이야기를

제가 그 할머니께 직접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제게 그런 말씀 하셨어요.

‘태목사, 나는 천국에 가면 남자도 여자도 없고 결혼도 아니 한다 그러는데

결혼을 좀 하는 천국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시는 거예요.

얼마나 이 마음에 한이 맺히셨으면...

 

그래도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 이렇게 다 승화되셔서

길 가는 사람들이 할머니를 보시면 ‘아, 할머니는 진짜 예수 믿는 사람 같아요.’ 라고 말할 만큼

그렇게 온화하신 그런 표정을 지으시고, 많이 행복해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마는

어쨌든 현실의 삶에 그런 한이 있는 거예요. 그런 아쉬움, 안타까움...

 

아무리 깊은 신앙의 경지에 올라간 사람도.. 울다가/웃다가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와 함께 행복하게 살면서도.. 얼음물 들이킬 때가 있고..

천국에 가더라도 결혼생활 한 번 제대로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또 주님 손 붙잡고 강강술래 하며 춤추며 기뻐하고..

 

 

▲10절,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 같은 이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자다.

 

‘뼈가 말한다’ ..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대적들에게 둘러싸여있고

착취하려는 악랄한 사람들에 의해서 포위되어있지만, 쫓겨 다니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자기 뼈에서부터 우러나는 거예요. 뼈에서부터.

그 뼛속으로 심층적으로 흐르고 있는 안도감.., 이걸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평강과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뼈들을 갖고 있는 자들을

이 세상 그 무엇이 그들을 짓누를 수 있겠습니까?

 

'뼈가 노래한다’는 것과 비슷한 뜻으로 조수미 씨가 그랬어요.

조수미씨 얘기가 인터뷰하는 기사를 봤더니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악기는 우리의 몸이다’ 라면서

자기가 노래를 할 때 온 몸의 땀구멍이 다 열린대요. 세포가 다 열린대요.

 

허리도 열린대요. 허리에서 소리가 난대요.

완전히 서라운드 스피커. 허리에서 소리가 나와요.

온 몸이 다 뚫려서 소리가 나와야

정말 자기가 소리에 빠져서 노래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인이 뭡니까?

뼈가 노래하는 사람이예요.

뼛속에서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평강과 안도의 노래와

감사의 노래가 뼈에서 나오는 거예요.

 

이 세상 현실적인 차원의 삶이 잘되건/못 되건.. 그래서 울고/ 웃고 합니다.

때로는 화도 냈다가/ 울다가 합니다.

그러나 뼈에서부터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평강의 감사가

이 모든 슬픈 현실을 다 묵사발 내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의 삶이라는 거예요.

 

내 원수가 이렇게 둘러치고 나를 괴롭히고

이유 없이 나를 학대하는 너무너무 힘든 상황에서조차도

하나님의 손 붙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강강술래를 부르듯이

하나님과 함께 랄라랄라 춤을 출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되고

 

내 뼈로부터, 내 뼈로부터,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감사가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다투는 자를 하나님이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를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겁니다.

나의 대적이 곧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아버지!

표층적인 현실의 삶에 우리의 마음이 매여서

현실의 삶에서 웃는 것이 웃는 것이고

우는 것이 우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현상적인 삶의 층에서 우리 마음이 죽게 하시고

뼛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감사가 살아날 수 있게 도와주시며

어떤 상황이 주어져 나를 둘러 진 칠지라도

하나님 손 붙잡고 기뻐서 빙빙 돌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나와 다투는 자는.. 하나님이 다투시고 싸우신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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