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가려느냐? 요6:67 07.06.10. 설교스크랩, 축약
*원제목 : 흔들리지 않는 확신 위에 서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6:67
▲사람 따라서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신앙.. 안 됩니다!
누구나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마련입니다.
전도해 주는 분도 있고, 기도해 주는 분도 있고,
말씀으로 양육해 주는 분 도움을 받는 등
다른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단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는 단계>에서 빨리 성장해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 따라갔다가 낭패 본 예화
어느 목사님이 미국 유학 시절에, 미국 프로 야구를 보러 야구장에 갔습니다.
약 5~6만 명이 들어가는 야구장인데, 주차장이 엄청나게 크더랍니다.
미국 야구장에 처음 간지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무척 당황했나 봅니다.
주차지역 번호를 확인하고 나온다는 것을 깜빡 잊고
그냥 옆에 ‘큰 트럭이 세워져있는 것’만 확인하고 나왔답니다.
주차장 대부분이 승용차인데, 큰 트럭이 있으니
금방 주차 위치를 알 수 있기에.. 안심하고 야구장에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야구 경기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왔더니, 큰 트럭이 보이지 않더랍니다.
순간 아찔한 것이 수 만대의 차 중에
자신의 차가 어디에 주차되어 있는지 찾을 길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간 친구들과 함께 다른 차들이 다 빠져갈 때까지 기다렸답니다.
밤늦은 시간에, 차가 몇 대 남지 않았을 때,
멀리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의 자동차가 보이더랍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이야기입니까?
큰 트럭 옆에 주차했다고, 안심하고 있었다니!
그러나 우리가 꼭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시는데, 그 기준이 분명한 진리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정확한 복음 위에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큰 교회나 큰 사람 옆에서... 마냥 안심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을 보고 예수를 믿어서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몰려가도 흔들리지 않고, 다 떠나가도 흔들리지 않을
분명한 영적 분별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그 큰 차가 떠나가 버리고 나면,
큰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같은 기독교를 믿지만, 걸음걸이는 각자가 다 다릅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지만 그 삶은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그것은 영생에 대한 확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골 길을 가다가 밭 일을 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더 가야 시가지가 나오는지 물었습니다.
그 농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기다려도 대답을 못 듣자,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냥 걸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지나서 그 농부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보슈, 한 시간 쯤 걸릴 거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화가 났습니다.
"아니, 아까 물을 땐 가만히 있더니
이제 가는 사람의 등 뒤에다 대고 말하는 이유가 뭐요?"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걸음걸이를 보지도 않고,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알겠소?
당신의 걷는 속도를 보니.. 1시간 걸리겠다는 거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각자의 태도나 결단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죄우하는 것입니다.
같은 기독교를 믿고, 같은 교회를 다녀도
걸음걸이에 따라.. 천양지차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보는 눈이 다르다.
이재환선교사님이 감비아에서 가나안 크리스천 공동체를 만들었을 때,
며칠을 살다 보니 현지인들이 모두 도둑으로 보이는데, 마음에 좌절이 오더랍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도둑 같은 그들도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영혼임을 보았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깨닫고 보니
그들이 도둑들이기에
오히려 그곳에서 사역할 사명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영생을 알고, 영혼의 귀함을 깨닫고 나면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사역의 흐름이 보이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일본 교회
일본 코스타 저녁 집회를 했던 곳은 요도바시 교회인데,
금싸라기 같은 일본 동경에서 가장 번화가에
1,500명이 들어가는 큰 예배당이었습니다.
‘일본에도 이런 교회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교회 역사를 듣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몇 안 되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던 교회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옥에서 단식하며 싸웠던 교회였습니다.
일본에서도 이런 자세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생의 복에 대한 확신이 강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단순히 인생의 스승이 아닙니다.
인생의 스승은 여럿이 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주이십니다.
우리의 속죄 주요 영생의 구주이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실 분이 예수님 밖에 없으며,
영원한 지옥에서 구원하실 분도 예수님뿐이십니다.
여러분, 이 믿음이 분명해야 됩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복이요 넉넉하고 형통하게 사는 것도 다 복이지만,
그러한 복을 모두 다 합하여도 죄사함의 복, 영생을 얻는 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이 확신이 있으면 예수님을 따라 가는데, 좋은 옷을 입었느냐, 허름한 옷을 입었느냐?
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고속도로로 가느냐, 산길로 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느냐, 돌 던짐을 받느냐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 흔들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절규 “너희도 가려느냐?”
우리는 신앙 생활하다 보면, 때때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저 사랑하시는 것 맞죠? 저와 함께 하시는 것 맞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면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 맞죠?’
그러나 주님도 똑같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너도 세상 따라 가려느냐? 너도 환경보고 흔들리느냐?’
그 때 예수님은 우리가
‘아닙니다!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제게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제 마음은 주께로 정해졌습니다.’ 하는 대답을 듣기 원하십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신 질문이
자꾸 제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처량하게 들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외톨이가 된 사람의 애절한 호소처럼 들립니다.
‘나를 혼자 버려두고 가지 마. 나, 외로워. 너희들마저 가면 나 혼자야. 가지 마!’
그러나 말씀을 또 읽고 또 읽고 묵상하다가 다른 느낌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절규였습니다.
지옥의 길과 영생의 길이 갈라지는데,
먹고 사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어서 영원한 멸망으로 빠져가는 이들을 향한
절규요, 안타까운 외침이었습니다.
“가면 안돼! 여기서 벗어나면 안돼! 살 길이 여기 있어.
육신을 보지 말고 영생을 보아야 해. 죄 문제 해결의 길을 보아야 해!
복음을 붙잡아야 해. 지옥은 가서 안돼!”
여러분도 그렇게 들리십니까?
우리 주님의 제자들을 향한 마음은 그 자체가 불이었다는 말입니다.
영생의 눈이 뜨여, 예수님만 바라보기를 간절히 구하십시다! ▣ 크리스천 삶(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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