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안식일 의미를 가르치신 예수님 마12:1~13 -09.04.23.설교스크랩, 녹취-
*원제목 : 손마른 사람의 기적
◐1. 안식일에 밀 이삭 비벼 먹은 사건 마12:1~8
▲안식일에 ‘추수’를 허락하심
제자들이 밀밭사이를 지나가는데 배가 고팠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밀 이삭을 훑어서 비벼서 껍질을 깐 다음에, 그 알을 먹었습니다.
그것을 바리새인들이 본거예요. 그런데 그때가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추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왜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합니까?’
하고 지적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라. 타이르겠다. 죄송합니다.’ 하고 가셨으면 될 텐데
v3.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라고 말씀하셔요.
해명은커녕, 도리어 그 시비를 계기로 설교하고 계십니다.
v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 이 때는 안식일도 아니에요.
v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 제사장들이 온갖 활동을 다 하여도 안식을 범하는 게 아니다...
v6. 그런데 나는 성전보다 더 크고
v8.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이게 어떤 뜻이냐 하면, 안식일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밀 이삭을 먹은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습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을 계기로
주님께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안식일 개념>을 교정시켜주시고,
진정한 안식일을 가르쳐 주시기를 작심하고 나서신 것입니다.
▲종종 사람들이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지식은,
그것이 진정한 참 지식을 이해하는데 걸림돌과 장애물이 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생명처럼 여기고 있는 ‘안식일 준수신앙’은
이미 그 정도를 벗어나, 도리어 참 하나님 신앙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특별히 가르쳐 주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4복음서에도, ‘예수님이 주로 안식일에 병 고치신 사건’을 공통적으로 다룹니다.
평일에도 당연히 병을 고쳐 주셨을 터인데, 그것은 거의 기록 안 합니다.
꼭 안식일에 병 고치신 기록만, 성경에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잘못된 안식일 신앙’에 대해, 경계하시고 싸우셨다는 뜻입니다.
▲자, ‘다윗이 성전 안에서 진설병을 먹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는 활동을 해도 죄가 안 된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 뭡니까?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성전 안에서> 라는 말이에요.
바깥에서 안식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어떤 규정이 필요했어요.
근데 <성전 안>이라는 것은, <안식의 울타리 안>이라는 것이에요.
‘안식’이 뭐냐 하면 내 마음이 다른 대상들에 뺏기고 있는 상태를 다 거둬들여서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쏟는 것,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바로 ‘안식’입니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예요.
일을 그만두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이 목적입니다.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성전 안>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안식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안식일 규정이 필요가 없는 거지요.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에도 일을 한 것>과
본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안식일에도 일을 하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강이 있습니다. 강을 건너려면 배가 필요해요. 배를 타고 강을 건넜어요.
그러면 이제 배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강을 건넌 다음에도, 배를 어깨에 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게 누구냐? 바리새인이라는 겁니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놔두고 가야 되잖아요.
이미 안식에 들어갔으면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정해 놓은 규정들은
‘배’로 생각해서 다 뒤에 놔두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서) 안식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안식세계 바깥에서 규정으로 정해놨던 모든 행동은.. 무용지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많은 일을 해도..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이 성전 안에서 진설병을 먹은 것도... 성전 안에서 먹는 것은
그 어떤 율법적 규례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과 제자들에 관련해서 적용하면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 되시고,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 안에/성전 안에/안식일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추수를 하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미 안식에 들어와 있으므로
더 이상 안식에 도달하기 위한 ‘배’(규례)가 필요 없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나와 함께 있으면 그것이 곧 안식이다. 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바리새인들이 전혀 알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아마 우리가 그 당시에 살았어도, 가르침을 받고도 못 깨달았을 것입니다.
◑2. 안식일에 손마른 병자를 고치심 마12:9~13
▲일부러 보란듯이 고치시다.
안식일에 대한 견해차이로 인해서 바리새인과 이미 한 판 붙었습니다.↑
회당에 들어가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올무를 놓습니다.
일부러 ‘손 마른 사람’을 데려와 고쳐보라고 합니다. 마12:9~14
그런데 성경을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요.
지금 거기서, 안식일에, 사람들 다 보는데서, 고치시면 안 되지요.
잠시 피하신 다음에
나중에 손 마른 사람을 조용히 부르셔서 고쳐주시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다른 복음서에 보면- 가운데 세우시고 보란 듯이 그를 고치십니다.
이런 일들이 누적돼서 결국 어디로 갑니까?
대제세장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거예요.
예수님이 ‘날 죽여라 날 죽여라’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예 고의적으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이 만든 안식일 규례를 깨버리고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기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자꾸 평지풍파를 일으키시는 겁니다.
안식일의 외적 규례만 지키면서 진정한 안식을 못 누리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보시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자꾸 일부러 안식일에 ‘도발적인 행위’들을 하시면서
사람들이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예수님이 퍼포먼스와 설교를 병행하시는 겁니다.
목숨을 거시고!
▲<손 마른 병>에 대한 신학적 해석
이 ‘손 마른 자의 기적’을 통해서
주님이 지금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안식의 상태로
비유해 주시는 겁니다.
(약간 신학적인 상상이 가미되었습니다.
아마 마태가 마태복음서에 이 사건을 포함시킨 것은
그런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계속 읽어보세요)
지금 바리새인들의 상태가
‘손이 말라버린 상태/안식하지 못하는 상태’와 똑같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잘 믿는다고 스스로 으스대며 다녔지만
사실 그들의 내면은 바짝 메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누리고 있는 안식이라는 건 정체가 뭐냐?
생명의 흐름이 끊겨진 안식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안식의 내용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율법의 조항에 매어가지고
그 안식의 조항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안식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주님과 함께 연합해서 성전(예수님)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요,
안식일은.. 그런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율법적 개념의 안식일은 이제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1년 365일을 안식일로 초대하십니다.
◑적용
▲온 집안 식구들이 ‘손 마른 사람’처럼 메말라 있어도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온 분위기가 천국이 됩니다.
(설교자 제 자신의 예를 들어서 미안하지만, 양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카츄사 부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오후 5시에 일과가 끝났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제가 주로 기도하고/말씀보고/책 읽고 연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미군 병사들이 저를 ‘프로페서’로 불렀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기도로 제 자신을 가득 채우다가, 불쑥불쑥 집에 갔습니다.
군대 용어로 외출이나 외박을 나간 것이지요.
당시 우리 집은 달동네에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자장면 값도 없으셔서 배를 굶고 다니셨고,
할머니는 중풍으로 달동네 그 방에 그냥 누워계셨습니다.
당시 집안 분위기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부대에서 그렇게 말씀연구하고, 기도하다가.. 집에 딱 들어오면
어머니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만 오면, 우리 집이 천국이 된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할머니는, 스스로 자식들 볼 면목이 없으셔서 늘 미안해 하셨고,
그런데 제 눈에는, 이상하게 할머니가 그렇게 예쁘고 곱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고 우리 할머니 고우셔!’ 이런 말을 연발했습니다.
그러면 이빨이 다 빠지신 할머니가, 잇몸을 다 드러내놓고 활짝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이빨이 없어서 바보처럼 보이는 그 웃음까지도, 제 눈에는 곱게 보였습니다.
가난한 집에는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국수 삶아서 내놓으셨습니다.
저는 아무 불평 없이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실 너무 맛있어서 먹고 또 더 먹었습니다.
그래서 침체해 있던 집안 분위기가
제가 들어가기만 하면, 확 살아나곤 했습니다.
그 달동네 집에 천국이 임하는 듯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안식’인 것입니다.
한 사람만 안식을 누리고 있어도, 집안 전체에 안식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인데
그는 반드시 자기 주변에.. 예수의 생명을 흐르게 합니다.
여러분, 돈이 아닙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내가 먼저 예수의 안식으로 충만해서, 내 주위에 예수의 안식이 흐르게 합시다. ▣ 기독교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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