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노엽게 마시라 엡6:4 09.05.03.설교녹취
과거에 우리사회는 ‘자녀경시풍조’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자녀과잉보호’가 있다. 둘 다 극단적인 것이다.
엡6:4절을 통해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자녀양육에 관한 교훈을 살펴보자.
◑1.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부모의 잘못된 말, 잘못된 교육, 잘못된 행동이
자녀들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자녀들로 하여금 분노심을 촉발시킨다.
내 자녀라고, 내 마음대로 대하다가는.. 자녀를 노엽게 만든다.
내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자녀를 존중해야 한다.
자녀가 부모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크게 보면 다음 3가지 이유에서다.
▲1. 부모가 자녀 앞에서 본이 되지 못할 때.. 자녀가 분노하게 된다.
말과 행실이 일치하지 못하는, 부모의 위선적인 행동이.. 자녀를 노엽게 한다.
본이 되지 못할 때, 자녀가 마음속으로 화가 난다.
어느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날마다 싸웠다.
보다 못해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두 아이가 함께 신중하게 의논하더니
아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싸우면서 살려면, 아빠 엄마, 차라리 이혼하세요!’
평소에 부모의 삶이 자녀에게 본이 되지 않으면,
부모의 말과 훈계가 절대로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본이 되는 삶’이다.
그러나 부모는 목표를 올바로 정하고, 그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기도와 말씀으로, 신앙생활에 자녀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너무나 중요하다.
종종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부모가 집에서 무심결에 서로 교회와 성도들을 욕하고 비난할 때이다.
부모가 예배마치고 차를 타고 오면서, 교회를 욕할 때이다.
그런 비난과 비방의 말을 할 때, 첫 번째 피해자가 자기 자녀임을 명심하자.
교회를 비방하는 소리를 들은 자녀는, 절대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으며,
학교를 비방하는 소리를 들은 자녀는, 절대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할 수 없다.
사실 자녀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사회에서 존경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의 모든 것을, 자녀들이 다 보고/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에게 반드시 존경을 받아야 한다.
부모 자신을 위해서이기 이전에, 자녀를 위해서다.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는, 훌륭한 부모고, 행복한 부모다.
자녀에게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자녀 교육 때문이다.
자기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며,
자기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자녀가.. 밖에 나가서 훌륭한 사람 되기 어렵다.
▲2. 자녀를 비교해서 책망할 때.. 자녀가 노엽게 된다.
유대인 자녀교육을 살펴보면, 그 어머니들의 자녀교육이 훌륭하므로
유대인 가운데서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그런데 유대인 자녀교육의 대원리 중의 하나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 ‘시기심, 질투심’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그런 교육을 받고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학교 다닐 때 학교성적이 얼마나 부진했으면,
중고등학교 성적표에 선생님이 이렇게 기록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
만약에 여러분의 자녀가, 그런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왔다면
아마 초상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그 성적표를 받아보고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교가 너의 재능을 모르는구나! 너는 특별한 아이야,
너는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너는 남과 다른 사람이 될거야!’
하면서 그를 격려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어머니의 격려대로, 아인슈타인은 남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은 아이들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절대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는 아이들을 노엽게 만든다.
▲3. 일관성 없는 책망이 자녀들을 노엽게 한다.
기분 좋으면, 아이들이 웬만큼 잘못해도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부모의 기분이 나쁘면, 아이들이 작은 잘못을 해도, 크게 화를 낸다.
아이들이 갈팡질팡하면서 .. 분노하게 된다.
아이들도 다 생각이 있다.
자기들이 들어봐서,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야 순종하지,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권위에도, 순종하지 않는다.
혹시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해도, 속으로는 순종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를 꾸중할 일이 생겼을 때, 절대로 화를 내면서 꾸중하면 안 된다.
그러면 교육이 되지 않는다. 훈계가 되지 않는 것이다.
화를 다 가라앉힌 다음에
꾸중을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안 보는 데서, 부모와 아이 단 둘이서,
무게 있고 신중하게
엄숙하게 제대로 책망해야 한다.
그냥 즉각적으로 화를 내면서 꾸짖는 것은, 절대 교육에 도움 되지 않는다.
▲대신에 감격과 감동으로 길러야 한다.
요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 앞에 감격이나 감동이 없다.
부모님의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랑은 있는데, 부모들이 스스로 그 사랑을 지우고 있다. 감동이 사라지게 만든다.
예를 들면, 자녀들에게 선물을 할 때, 선물 자체로 끝내면 좋은데
‘이게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아느냐?’
‘이 귀한 것을 네게 특별히 준다’
이러면 자녀에게 감동이 생기다가도, 사그라들게 된다.
부모의 ‘희생’도 그렇다.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할 때, 그냥 묵묵히 희생하면... 자녀들은 감동한다.
지금 못 깨달아도, 나중에라도 깨닫고 감동한다.
그런데 ‘이 희생을 좀 알아라, 널 위한 나의 희생을 좀 알아다오’라고 늘 푸념하면,
자녀들은 ‘누가 자기보고 희생하라고 했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말없이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말없이 자녀들을 사랑하게 될 때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에 감동, 감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철이 들게 된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 이 부분이 당근(사랑)이라면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이 부분은 채찍(훈계)이다.
▲자녀가 잘못할 때는 반드시 훈계/징계하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꾸짖는 훈계’ 쪽에 무게가 실린 말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우리 자녀도 ‘원죄를 가진 죄인’이라는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
‘죄로 타락한, 전적 부패한 인간’이란 전제에서, 마땅한 훈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의 죄성을 방치하고 방관하다가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자녀의 <실수>는 관용하되, <죄>는 징계해야 한다.
저희 자녀들이, 아주 어릴 때 인켈 전축을 고장 내었던 때가 있었다.
전축 안에다 밥을 집어넣는가 하면, 뭘 뜯어내기도 했다.
그것은 죄성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자녀를 징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저희 두 자녀가 커 가면서.. 간혹 서로 심하게 다투었다.
그것은 죄성에서 나온 것이므로.. 아버지인 나는 두 자녀를 엄하게 징계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이며, 죄는 죄다’라고 어릴 적부터 가르쳐 주어야 한다.
‘죄는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자기 자녀의 잘못을, 부모가 대신해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자녀를 징계할 수 없을 때, 부모가 대신 (스스로) 징계를 받는 것이다.
가정에서 그렇게 함으로써,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조기교육 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자녀 교육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징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인 줄 모르고 자라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 줄 모르고, 자기들 마음대로 다 해도 되는 줄 알고, 크고 있다.
여러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어릴 적부터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살 버릇 여든 가고, 그것이 올바른 조기교육의 효과인 것이다.
그 잘못된 것의 기준은 ‘주의 교양과 훈계’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후략) ▣ 행복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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