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함’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온다 눅6:20 09.05.24. 설교부분녹취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
◑‘가난함’ 자체가 복이다.
*4복: 가난, 배고픔, 울음, 핍박. (현세적 4화) 눅6:20~22
*4화: 부유, 배부름, 웃음, 칭찬. (현세적 4복) 4복과 4화는 서로 반대개념. 가난-부유, 울음-웃음 등
▲교회의 능력의 진원지는?
교회가 개인과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교회가 신령한 능력을 발휘하게 될 때
즉,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그 놀라운 능력,
세상 어느 조직이나 단체도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그래서 정치가들조차 부러워할 만큼 놀라운 ‘교회의 신령한 능력’
교회가 가진 그 ‘신앙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할 때
그 능력의 진원지가 과연 무엇인가? 과연 어디인가?
-교회의 재력도 아니고,
-교회의 규모도 아니고,
-교회의 화려한 프로그램도 물론 아니다.
-오직 교회가 갖고 있는 그 본질,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가진 능력의 원천/진원지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라고 말할 때
즉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굉장한 일을 하는 것 같은 교회들... 이런 교회들을 한 번 떠올려보면
우리 머릿속에 휙 스쳐 지나가는 이름들이 있다.
새들백, 윌로우크릭, 레이크우드 등의 이름이 금방 떠오른다.
그러나 정말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의미를 가장 온전하게 이루어내는 교회는 꼽을 때에
정말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위의 교회들을 들지 않는다.
(위의 교회들은 과거에 한 때 영향력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신령한 영향력이 있다고 꼽지 않는다.)
미국에서 정말 ‘교회다운 교회’,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를 꼽으라면
그 방면에 식견 있는 사람들은
교인이 150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는, <세이비어 교회>를 꼽는다.
이 교회의 중심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에 대해 배우고,
또 그것을 실제로 자기들 몸으로 살아내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꼽힌다고 한다.
▲나는 과연 십자가를 내 삶 속에서 살아내고 있는가?
교회의 규모와 별 상관없다.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능을 따라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 설교를 통해서든지,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 대해 많은 설교를 하는 것과, 자기 몸으로 십자가를 직접 살아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우리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시려고 하는 그것!
그것을 제 표현방식으로 표현하면 한 마디로 <내 심령이 가난해 짐>이다.
나는 내 평소의 삶에서 <내 심령의 가난해짐>을 과연 드러내고 있는가?
그 교회가 이것(가난해짐)을 보여주느냐, 보여주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의 영향력이 결정된다고 본다.
▲가난, 굶주림, 울음, 핍박(4복) 자체가 복이다. 눅6:20~22
현실의 가난, 굶주림, 울음, 핍박이
나중에 부유, 배부름, 웃음, 칭찬으로 바꿔질 것이니 ‘복이 있다’는 말이지만
나중에 그렇게 뒤집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복되다.
무슨 말인가?
4가지 화를 당할 때, 남들이 아무도 모르는, 자기 내면의 기쁨이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자기 속에서 ‘천국의 희열’이 솟아나오기 때문에
(결국 지상에서나 아니면 미래의 천상에서 반드시 4가지 진짜 복으로 바뀔 것이지만)
그 이전에도 벌써 자기 마음에 천국이 임하면서.. 4복은 그 자체로 복이 된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현세적 4가지 화’를 당하여 너무 비참하게 사는 것 같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다. 그의 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천국이 있다.
내 생각에는 ‘저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마음에는 우리가 모르는,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천국이 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갖추어, 우리가 보기에 정말 부럽고 행복할 것 같은데
즉 ‘현세적인 4복’을 다 가진 것 같은데
실제로 그의 내면에는.. 말할 수 없는 불만족과 괴로움에 휩싸여 살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화 있을진저!' 하시며 4가지 화라고 가르치셨다. 부유함, 배부름, 웃음, 칭찬이다.
▲선지자들이 4복 자체로 기뻐한 사람들이었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6:22~23
오늘날에도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자 같은 사람이다.
예수님 때문에 (인자로 말미암아..) 가난하고,
예수님 때문에 (인자로 말미암아..) 굶주리고, 슬프고, 핍박당하는 사람이다.
4복.. 가난함, 배고픔, 울음, 핍박... 이것들을 한 마디로 <가난함>이라 부를 수 있고,
나중에 받게 될 반대적 결과들,
부유함, 배부름, 웃음, 상급... 이것들을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라 부를 수 있다.
▲서두에서 제가 미국의 이름 있는 큰 교회들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가난함>으로 대표되는 4복(가난, 굶주림, 슬픔, 핍박)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유함, 배부름, 기쁨, 칭찬,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교회들 위에 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
미국의 큰 교회 언급할 필요 없고,
오늘 나 자신은 ‘가난한 자’와 ‘하나님의 나라’를 내 몸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혹자는, 오늘날 세상은 과거와 같은 핍박이 없어서,
그런 삶을 살고 싶어도 못 산다고 변명하는데... 그것은 진짜 변명에 불과하다.
복음대로 살지 않으니까, 가난함, 핍박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복음을 떠나 있으면서, 적어도 자고하지는 말아야 하겠다.
한국교회가 무슨 세계 2위라고 자고하다가는 큰 일 난다.
실제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4화'의 경우에 놓여 있으면서도 '부흥했다'고 자랑하면 넌센스다.
◑나면서 소경된 자의 예
▲‘소경’이라는 그의 <가난함>이..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온다.
요9장에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나온다.
당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그가 소경된 이유는, 죄 또는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소경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 때문이라 하셨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어떻게 저주스런 소경의 상태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 있느냐?’
는 것이다.
여러분, 제가 서두에서 ‘가난함’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온다고 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
‘소경’이라는.. 그의 <가난함>이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는 것이다.
소경의 상태가 비참한 처지이기는 하나,
그 소경의 상태 때문에, 더욱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게 되고,
그래서 그는 천국을 누리고,
반대로 눈을 뜬 사람의 상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나
눈을 뜬 관계로.. 오히려 영적인 소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경이 눈을 뜬 후에, 바리새인들과 논쟁이 벌어지는데 요9:8~41
재미있는 것은, 이 소경을 보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난함’ 그 자체다.
지식, 재력도 없고, 가문이나 지위도 없어 보이고, 내세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그를 상대하는 바리새인들은, 그 소경과 정반대로
지식도 있고, 재력도 있고, 가문과 지위도 있는, 어쩌면 다 가진 자였다.
그런데 그 ‘다 가진 자’(상징적 표현으로 ‘부유한 자’)가
주님의 은혜를 입은 ‘가난한 자’를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되다는 것이다.
가난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자를
부유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못한 자가 결코 당해 낼 수 없다. 오늘날에도.
여러분, 극단적인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은혜를 받은 중졸 사찰 집사님을
은혜 못 받은 미국 박사 출신 장로님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전도자가 된다.
복음서에서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 .. 온 동네 사람들을 전도했다.
-거라사 지역에 군대귀신 들렸던 자
-예수의 발 앞에 무릎 꿇었던 7귀신 들렸던 여인
-비난 받았던 세금 징수원 삭게오 등
-베드로, 바울 등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영적으로) 가난한 자’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비참(가난)했기에
늘 하나님의 은혜에 굶주리고 사모했던 사람들이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는 누가 사회적으로 성공했느냐/못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누가 재산을 많이 가졌느냐/적게 가졌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많이 배웠느냐/적게 배웠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부요한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가난한 가?’이다.
물론 재산이 많고 학식이 높아도.. 심령이 가난한 분이 계신다.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부요함’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방해된다)
나의 ‘가난함’을 통해서 세워진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우리는 ‘가난하게’ 인도하실 때도 있다.
완전히 밑바닥까지 추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부요함 때문이 아니라, 가난함 때문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역자가 된 찰스 콜슨
그가 출옥 후에 ‘교도소 선교회’를 세우고, 전도강연을 하며 다녔는데,
그가 어느 교도소 강당에서 설교하려고 강단에서 기다리던 중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자기에게 밀려왔다고 한다.
나는 강단 위에 앉아 강연 순서를 기다리면서
문득 나의 자랑스러운 과거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타고, 변호사가 되어서 소송에서 승리하고,
급기야 백악관에서 닉슨대통령의 법률보좌관으로서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당시 나는 완벽하게 성공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와 비슷하게 인생을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나는 그 강당에서, 이 재소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은
<나의 성공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모든 성공들은.. 아무런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내 인생이, 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전해줄 수 있는 것은
나의 가장 비참했던 실패담,
곧 나는 전과자였다는 사실이었다.
감옥에 보내졌던 치욕적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이 내 인생을 놀랍게 사용하시는.. 첫 시작이었다.
이 경이로운 진실을 깨닫고는, 그 강당에서 몇 분간동안
나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어졌다.
그동안 나는 내 인생을 완전히 (180도로) 잘 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부터, 내 삶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돋보이게 하려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때라야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시고 목적하셨던 진실한 자아를 찾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선택하시는가.. 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성공’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부요함이 아니라, 나의 가난함이다.)
‘나의 성취’가 아니라 ‘나의 순종’이다.
하나님 나라는 역설의 나라이다.
십자가의 추한 패배를 통해, 영광스러운 승리가 이루어진다.
승리는 패배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치유는 깨어짐이 있을 때 찾아온다.
자아의 회복은 자아를 잃어버릴 때에만 가능하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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