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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거지 의식

LNCK 2009. 7. 1. 07:25

 

◈다윗의 ‘거지 의식’            시70:1-5                  09.06.04. 설교스크랩, 정리 

*원제목: 선민의식은 거지의식이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시70:5

다윗은 왕이거나, 혹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낮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거지 의식’인데요...

 

▲4절, 주를 찾는 자들

 

4절.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주를 찾는 자’들은 그 특색과 싸인이 어디 있느냐?

‘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는 겁니다.

 

①그러니까 <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선민은 선택받은 사람은 돈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냐?

- 돈을 찾지 않고, 주를 찾는 거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까지, 돈을 찾는 일을 주께서 도와주실 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고, 그냥 종교인입니다.

타종교를 믿는 사람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종교인입니다.

 

②주를 찾는다는 것은.. <자식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식의 문제를 해결해서 기쁜 게 아니라

주로 말미암아 기쁘고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선택받은 사람들이에요.

그게 ‘주를 찾는’ 거예요.

 

이 세상에 모든 상황/계기가 주어질 때

그 상황/계기를 해결하고, 그 장애를 넘어서서..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을 원하는 것이 바로

‘주를 찾는 자’들이고, 그것이 바로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4절.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5절, 다윗의 거지 의식

 

5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①다윗은, 거지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어려움 가운데 처한 적이 많이 있지만,

왕으로서 왕권을 쥐고 있었고, 정식으로 왕권이 넘어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압살롬이 모반할 때도, 많은 신하들이 압살롬에게 동조하더라도

아직도 자기를 따라다니던 신하와 백성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쫓겨 다닐 때 지은 시라고 해도,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4~6백 명이나 있었고, 그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는 ...

그러니까 명예적/물질적으로 볼 때.. 진짜 가난하고 궁핍한 거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말은.. 엄격하게 잘 맞지 않아요.

 

②심령이 가난했던 다윗    마5:3참조.

그러나 여러분, 아십니까? 다윗은 왕궁에서 왕 노릇을 제대로 하고 나라가 평강할 때도

바로 이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심령이 가난한 거지 의식’입니다.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평강하고, 모든 영역, 영역마다 번성기를 이룰 때도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라는 이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③박사지만, 거지의식으로!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독일에서 공부하고,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왔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박사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박사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심령이 가난한 거지 의식’이 아닙니다.

 

 

그럼 ‘심령이 가난한 거지 의식’은 무엇일까요?

‘나는 박사다’ 라고 하는 자아의식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자기 자아의식의 테두리 안에, ‘박사’를 집어넣지 않는 거예요.

 

‘나는 박사가 아니에요. 나는 명문 대학을 졸업한 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세상이 준 모든 타이틀을 다 벗어던지는 겁니다.

이게 거지가 되는 거예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내가 누구라는 걸 가르쳐주신 그것 만이 나에요.

나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어야 마땅한 자입니다. 그게 바로 나에요.

 

그 거지 자리에서 매일아침 다시 시작하며, 하나님을 구하는 겁니다.

여러분, ‘박사’를 내려놓으세요. ‘박사’로부터 자유로워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제까지 걸어온 경력과, 어제까지 쌓아온 업적위에서 이어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어제까지 이룬 모든 성과와 경력과 뭐 모든 또 실수라면 실수요 잘된 거면 잘된 거

모든 것에 대해서 다 벗어버리고, 죽고, 거지가 되는 거예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궁핍하고 가난한 자가 되어서

첫 번째로 하나님이 나의 삶을 출발하게 하시는 도움이 될 때

이게 바로 ‘주를 찾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④집과 차에 대한 거지의식

우리가 사는 집도 그래요, 여러분.

집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어요. 내가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오늘도 있더만요.

 

‘나는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산다’

‘나는 서울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자’라는 의식이

고정된 것으로 아예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말단 직원에서 출발해서 임원이 된 사람이

자기는 항상 ‘말단 직원 의식’으로 살아간다는 말도 있잖아요?

 

‘나는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

내 자아의식 속에 아예 고정되어 있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호텔 문 앞에 가면 괜히 어깨 힘주고 내리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다윗의 신앙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항상 ‘궁핍한 자, 가난한 자’로 (아마 매일아침)

자기 자신이 되돌아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지요.

 

‘내가 지금은 소나타 타고 있는데 하나님, 내년쯤에는 그랜저 타게 해주세요.’

이거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지금 십자가에 달려 죽어 마땅한 거지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에요.

십자가에 달린 자에게 무엇이 주어집니까? 죽음밖에 주어지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제도 탔고, 오늘도 내 앞에 있는 이 소나타가

이게 지금 하나님이 나를 동냥해서 주신 것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다른 말로 은혜로 제게 주신 거예요.

이런 ‘거지 의식’이 매일 삶의 출발점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꾸 ‘집 평수’나 ‘자동차 배기량’으로, 자기 신분을 높게 보이려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도리어 자기를 낮추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로’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⑤거지의식에서 나오는 감사와 기쁨

내 타이틀, 내 신분, 내 소유, 모든 것에 대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되신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자기 신분과 수준을 거지처럼 확 낮춰 버리면요,

 

예를 들면, 7급 공무원도 너무 감사한 것이지요.

작은 자동차도 감사하구요,

무슨 집이라도 있으면 감사하잖아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되어주시니.. 정말 진짜 감사하고, 든든하지요.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하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거지 의식’이 아니라 ‘부자 의식’을 갖고 사니까 (죄의 본성으로 인해)

직장도 불만, 집/차/자녀도 불만 ... 그래서 하나님께도 불평 ... 이렇게 되고 말지요.

 

사도바울의 말처럼. 날마다 죽어서 거지가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동냥(도움)으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집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어, 하나님이 오늘 그 아파트를 나한테 동냥'하셨어요.

하나님이 내게 이 집을 허락하셨어요.

나는 이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 자아의식이 내 안에 들어와 있으면 안 돼요.

 

나는 뭘 소유하고 있는 자다/ 나는 무엇을 갖고 있고/ 어떤 신분의 사람이다/

어떤 타이틀의 사람이다... 이런 생각 다 없애 버리세요.

그러면 절대 하나님 못 만납니다.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거지한테 찾아가십니다.

 

⑥부자와 나사로의 예

그래서 예수님께서 눅16장에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를 비교하시면서

뜬금없이 부자는 지옥가고 나사로는 천당 가요.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왜 나사로는 천국 가고, 부자는 왜 지옥에 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 명확한 거예요. 그걸 모르겠다는 학자들이 난 이상해요.

<자아의식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부자는.. 부자로서의 자아의식이 있었어요.

‘나는 부자다’ ... 이건 끝난 겁니다.

부자로서 백날 믿어 봐요.

‘아, 내가 이 정도의 차는 살 수 있고, 내가 이 정도 명품은 살 수 있어!’

이런 부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잖아요? 백날 믿어보세요. (신앙 성장) 안 돼요!

 

나사로는.. 거지로서 거지의식이 있었어요.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입니다.

(본문 5절에 다윗이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고백했던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주의 도움을 받아서’ 살았던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는지 모르나)

그는 죽을 때도 ‘주의 도움을 받아서’ 천국에 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달린 모습이 진짜 나 라는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정말 ‘거지 의식’을 갖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린 나’를 곰곰이 묵상해 보세요!

 

⑦연봉의 ‘액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의식’이 문제입니다.

연봉으로 10억을 받아도.. 모자라면 모자랍니다.

우리가 타고난 태생적 ‘부자 의식’을 갖고 살면.. 10억도 늘 모자라요!

 

그러나 떡볶이 장사를 해도.. 10억을 장학금으로 내놓는 사람이 있어요.

의식이 다른 것입니다.

 

10억 연봉을 받아도,

1억 원짜리 골프 채 사고, 수 억 원 하는 외제 승용차 값 할부로 내고,

매일 점심도 10만 원짜리 먹고, 옷은 모조리 명품으로 사면...

매달 1억 생활비도.. 자기 생활비로 모자라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겠습니까?

 

그런데 떡볶이 하면서 10억을 모아 장학금을 낸 할머니는

팔다가 남은 재료, 라면, 떡 가지고 먹으면서... 웃고,

자기도 가난하고 미천하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기뻐하고

그 할머니는 자기 자아의식을 넓히지 않아요. 자아의식을 크게 키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10억이 그냥 남는 거예요.

이런 할머니는,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아의식이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아 살 것입니다.

 

▲3절, 아하, 아하 하는 자들

 

3절.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

     (나를 보고 ‘아하 안 됐구나!’ 하는 자들로... : 쉬운 성경)

 

시70편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3절에 ‘아하! 아하! 하는 자들’

4절에 ‘주를 찾는 자들’이라는 말이 나와요.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은 ‘주를 찾는 자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교인 가운데도

‘주를 찾는 자들’이 있고, ‘주를 찾는 자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전자는.. 가난한 마음/거지의식으로 주를 찾는 사람이요,

후자는.. 주를 찾는 자를 조롱하는 자요/‘아하 아하’ 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부자의식을 갖고서, 거지의식을 가진 사람을 보며 깔깔댸며 놀립니다.

 

예를 들어, 이럴 수 있습니다.

부자 의식(부자도 가난의식이 있을 수 있고, 거지도 부자의식이 있을 수 있음)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자기 수준을 한층 높여서 사니까, 항상 돈이 모자라지요.

그래서 교회 오면 천원 단위로 헌금을 합니다. 그리고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연봉이 내년에는 따블이 되게 해 주세요!’

 

억 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만원 헌금 하면서, 기도는 수 억을 벌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부자 의식을 가진 사람은

‘돼지가 더 돼지 되려고 욕심부린다’는 식으로 삽니다.

 

심령이 가난한 거지의식을 가진 사람은.. 빈부의 어떤 형편에서도 만족/감사하는데,

심령에 부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늘 부족함을 느끼면서, 돼지가 더 뚱뚱한 돼지되려고

탐욕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부자의식’으로.. ‘가난하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을

‘아하, 아하 (깔깔대며)’ 놀린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부자건/ 가난한 자건

십자가가 내 자리라는 걸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게 다 과분할 뿐입니다.

 

내가 부자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마세요. 눅16장의 부자처럼 되시렵니까?

 

우리는 다윗처럼 매일 ‘거지의식’으로 살아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도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표현으로, ‘심령이 가난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질적으로 부자, 가난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부자도.. ‘심령이 가난한 거지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심령이 부요해서, 오히려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놔두면, 나도 모르게 날마다 비대해지는 자아의식,

내가 누구고, 내가 어떤 수준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어떤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별의 별 생각들을 다 하면서

정말 그런 줄 알고 스모선수처럼 뒤뚱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돼지가 먹을 것이 모자라 더 씩씩대는

그런 돼지새끼 같은 삶을 중단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다윗처럼 ‘거지 의식’을 갖고서

‘오직 하나님만 나의 도움으로 삼아’ 일평생 살아가는 복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 죄, 복된 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