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익사상태 빠져나오기 시69:1-36 09.06.03.설교스크랩
▲다윗의 영혼이 익사상태에 처하다
1절,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들어옵니다.
수영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물속 바닥 지면이 고르지 못해서 꼬르륵 빠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 장면을 연상하시면 되요.
도저히 뭐 어떻게 숨 쉴 구멍이 없게 돼버렸다는 겁니다.
‘내 영혼에까지 물이 쳐들어온다’는 것은, 현실적인 고통이 너무 심해서
도대체 사방이 막힘으로 뚫린 구석이라곤 없을 정도로 숨이 꽉 막힌 상태입니다.
경제 문제든지, 가족관계의 문제든지,
또 몸의 질병의 문제든지, 아이들 문제도 될 수 있고,
이런 다양한 문제들이 도대체 어느 한구석 숨을 쉬도록 뚫린 구석이 없는 상태,
이게 ‘영혼의 익사상태’가 아니겠습니까?
2절,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리니.
삶에서 바로 그런 현실을 지금 다윗이 노래하면서 이런 삶의 지경,
익사상태의 지경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오며 숨을 쉬게 되는가하는 과정을
이 긴 시편을 통해서 다윗이 지금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의 배경
36개의 다윗이 쓴 비탄시중의 하나로서, 그 배경은
-압살롬의 모반사건이거나
-다윗의 노년에 학깃의 아들인 아도니야가 제사장 아비아달과
다윗의 평생심복이었던 요압장군과 하나로 뭉쳐서 다윗을 모반한 사건,
<그 아도니야의 모반사건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이제 노년이 된 상태에서 다윗으로서는
맞설 힘도 없고, 정말 일생동안 따라다닌 이런 고통이
왜 이렇게 자기를 끝없이 괴롭히고 있는지 정말 지겹기도 하겠어요.
▲시편을 쓰게 하시려는 특별한 섭리?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로 산 다윗의 생애동안에
왜 하나님은 이토록 많은 어려움을 주셨을까 생각해보면
다윗은 오고 오는 세대에 예수님이 오시는 재림 때까지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앙적 삶의 비결을 가르쳐주시느라고
다윗을 드라마틱하게 인생을 일부러 꾸미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에도 작가들이 글을 쓸 때에는
자기가 엇비슷하게라도 체험한 내용을 소설로 쓸 때, 그 글에 힘이 있다고 합니다.
전혀 체험이 없이, 상상으로만 글을 쓰면.. 힘이 없다고 합니다.
다윗이 일평생 고통을 많이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훌륭한 영성과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
그런데 신구약에 다윗에 관한 얘기(교훈)가 얼마나 성경에 엄청나게 많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다윗을 (욥처럼) 이런 고난으로 몰고 가셨다고 봐요.
그래서 이 다윗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고난과 환난과 익사상태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나님이 다윗을 이렇게 섭리하시고 인도하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큰 어려움들을 그의 일생에 많이 겪게 됩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하는 말이 나옵니다.
머리털보다 많다는 말에 과장이 있지만
이렇게 과장해도 아무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다윗의 생애가, 다윗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에요.
이게 익사상태에요. 마음이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영혼이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나라는 다시 위기에 빠집니다.
그리고 요압장군과 제사장아비아들과 아들 아도니야의 반역을 마음으로 경험하면서
또 마음이 숨이 막힙니다. 그리고 내려가다 보면 8절에
▲8절,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낮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 어머니의 자녀들에게 내가 객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숨을 쉴 수가 없는 것이에요.
형제들이라도 좀 나와 같은 마음이고
나와 같은 입장을 동조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된다면 좋겠는데
지금 숨 쉴 수 없는 상황인데
그들 모든 형제들이 엘리압으로부터 해서 어렸을 때부터 다윗을 괴롭혔어요.
많은 친척과 형제들과 모든 가족들이 다.. 다윗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9절,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그런데 그거 보고 왜 그러느냐 하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하는 말이 나와요.
이게 주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실 때 인용되어지는 그 예언적 구절 아닙니까?
그런데 9절 서두에 ‘왜냐하면 for’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다윗을 미워하는 일이 생기고
또 어머니의 자녀들과 내 형제들에게 내가 객이 되는 이유가
<왜냐하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내게 성전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르는데,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형제들에게도 객이 되고
그렇게 많은 대적들이 평생을 쫓아다닌다는 것이에요.
다음 구절과 병행해서 보면, 그게 맞습니다.
10절, 내가 금식하며 슬퍼하였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회개부터 하는 다윗
예를 들어,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켰다... 그러면 형제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도니야가 무력으로 반역을 일으켰으면
군사력과 정치력을 발휘해서 어쨌든 그걸 짓누르고
다시 나라의 평정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될 텐데
다윗이 하는 일이 뭔지 아십니까?
11절,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그들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무슨 얘기입니까?
이게 바로 회개할 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켜서 나라를 삼키려고 다윗을 대적하고 있는 상황에
정치적 군사적인 힘을 동원해서 아도니야의 반역을 누르고 평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아도니야의 반역의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로 옮겨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문제로 생각하니까, 자기가 <회개>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2절.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비난하고 독주에 취한 무리가 나를 두고 노래하나이다.
무슨 얘기입니까?
아도니야의 반역의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회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조롱하며, 다윗을 우습게 여기며
길거리 가는 모든 사람들이, 성문은 오늘날의 광장과 공원 같은 곳이에요.
거기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웅성하는데
‘왕이 아도니야의 반역사건을 놓고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고 앉아있더라. 꼴좋다.
한심하다. 어떻게 저렇게 한심한 사람일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술 취한 자들이, 독주에 취한 자들이 왕을 씹으며 노래하고 조롱하더라 이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다윗
지금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그것을 압박하고 짓누르고 맞서서 나라를 지키고 왕권을 지켜야 할 상황인데
하나님과의 관계로 옮겨놓고 뭐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냐면
16, 17, 18절에 보면요.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지금 아도니야의 문제를
나의 영적인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거리가 떨어진 문제로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하고,
즉 하나님의 얼굴이 안 보인다는 문제로 생각하고
‘하나님 내게로 가까이 와주세요. 나 하나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하나님만을 찾고 있노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다윗을 비웃더라는 것이에요.
형제와 가족도 십시일반으로 비웃더라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5절에 보면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갑자기 4절에 자기의 무고함을 얘기하더니요,
5절에서 자기가 무고하게 대적들에게 피해를 받고 있다는 마음가짐에서
확 갑자기 또 섬광이 비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확 들춰내는 거예요. 갑자기 다윗이.
그러다가 10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데
세상사람 모두가 다 비방하고 조롱하고 우습게 여긴다는 거예요.
‘비현실적이고, 쓸데없는 짓 하고 있다’고 (12절)
그러나 다윗이 끝까지 위로부터 오는 구원만을 원하며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가까이 와주세요. 하나님으로 호흡하게 해주세요.’
지금 내가 돈이 없어하는 이 상황에서, 돈을 주시든지/안 주시든지
하나님만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형제들이 다 떠나는 상황에도, 그래도 하나님만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한 분만 간절히 바라고,
이것이 바로 익사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라는 것이에요.
무슨 익사상태가 되든지, 먼저 내 죄를 보는 겁니다.
그러자마자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시고 하늘을 호흡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황 끝.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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