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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으신 기적 2013

LNCK 2009. 8. 1. 13:19

◈물 위를 걸으신 기적                     마14:22~33                 -09.07.02. 태목사님 설교스크랩, 축약-

 


◑이 표적의 의미 / 이 표적을 통해 주시는 교훈


▲본문 설명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호수 건너편에 보내십니다.

그런데 이때가 깜깜한 밤이에요. 새벽3시~6시까지면 제일 깜깜한 때 아닙니까?

갑자기 호수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데,

처음에는 제자들과 함께 유령이라고 벌벌 떨다가

예수님인 것을 알고, 베드로가 ‘주님이시면 나를 걸어오도록 명령하세요’ 하니까

주님이 걸어오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걸어가다가 물에 빠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건져 주셨어요.


▲만약에 대낮에 이 사건이 일어났으면, 제자들의 기분이 더 업up 되었을 겁니다.

만약에 여러분, 풍랑이 일지도 않고, 깜깜한 밤도 아니고 훤한 대낮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신다고 하면 어땠겠어요?

제자들이 두려워 떨 리가 없어요. 하이파이브하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오병이어 때 이미 제자들의 마음은 업up 될 때로 업 됐어요.

배를 타고 가는 제자들이 장래에 대한 핑크빛 꿈과 무드에 사로잡혀서

‘사람은 자고로 줄을 잘 서야 돼!’ 하면서 서로 웃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낮에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봤다고 하면

배 위에서 춤추다 뒤집어졌을 거예요. '봐라. 저거 보냐?' 그랬을 거예요.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측근 아닙니까!

예수님 따라서, 달라질 자기 장래를 생각하며, 덩달아 좋아했겠지요.

 

▲그런데 캄캄한 밤에 태풍과 맞서 싸우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됐습니까?

이 땅의 삶에서 핑크빛의 미래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있던 제자들이

그 미래에 대한 꿈이 태풍과 만나 싸우고 있는 동안에 다 산산조각이 나면서

지금 미래 일을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당장 지금 죽느냐 사느냐하는 문제로 갑자기 과제가 확 바뀌어버립니다.


주님 모시고 다니기 전에 죽게 생겼어요. 상황이 그렇게 돼버렸어요.

주님이 장밋빛 꿈을 다 깨버리시는 겁니다.


▲여러분 <과거>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지금 <현실>이 좋을 때에요.

반대로 지금 <현실>이 괴로우면... <과거>도 괴롭게 여겨집니다.


지금이 좋으면 모든 과거가 다 미화됩니다.

아무리 어려웠던 과거, 아무리 괴로웠던 과거라도

지금이 좋으면 다 미화되고 아름다워져요.


그러나 ‘지금’이 나쁘면,

지금까지 도달하게 된 모든 과거가 다 미운 거예요. 다 잘못된 겁니다.

그리고 ‘미래’도 불투명해집니다.

 

           결혼을 예를 들어보면, 지금 행복하면, 과거에 싸우고 이혼 위기까지 간 것.. 다 미화됩니다.

           그러나 지금 서로 앙숙 관계에 있으면, 과거 신혼 때, 연애시절 때 행복했던 것.. 다 헛되게 보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바로 이러한 상황이었다는 것이에요.

지금 물에 빠져 죽게 되었으니까, '5병2어의 과거'도,

'예수님 덕분에 한 자리 하려는 미래'도 다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의 과제가 뭡니까?

지금 물에 빠지지 않고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상황에 주님이 전하려고 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다고 봅니다.

- 5병이어의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뭘 뜻 하느냐?

바다 위를 걷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겁니다.


①예수님은 괴로운 현실을 주셔서,

제자들의 장밋빛 환상을 다 깨 버리십니다.


여러분,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향하여 꿈을 부풀려가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예를 들면, 내 자식 성적 올라가는 꿈,

내가 이담에 크면 뭐가 되어야지...

내가 돈을 얼마를 벌어서 집을 몇 평짜리 장만하겠다는 등...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환상을 와장창 깨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본문의 이 비유를 볼 때 그렇고, 성경 전체 맥락도 마찬가집니다.)


②본문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가르치기 원하시는 것은

빠지지 않고, 가라않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돼야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누리라고 주신 축복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현실 - 세상을 추구하다가.. 지금 큰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배를 타고 바다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 자체가 바로 신앙인의 실존(현실)이라는 겁니다.


내가 여기서 빠지냐/ 안 빠지냐?

지금 뭔가를 이루고 쌓고 모으는 목표로 살았는데,

그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도 어떻게 빠지냐/안 빠지냐의 문제를 놓고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뭔가 쌓고 모으는 목표를 가지고 살 때.. 그렇게 됩니다.

쌓고 모으기는커녕, ... 지금 있는 것 지키기도 힘든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세파에 빠지지 않아야 된다> 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쌓고 모으는 목표가 클수록.. 우리 삶은 불안해 집니다. 리스크(위험)도 커집니다.

쌓고 모으는 것은 부수적으로 우리 뒤를 따라 올수는 있으나

우리가 그것을 향하여 목표로 달려가는 것은... 우상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쌓고 모으는 세상적인 것에, 빠지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빠진다는 게 뭐에요?

쉽게 말하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해요.

우리 마음이 어떤 문제의 소용돌이/ 어떤 대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자꾸 깊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깊이 염려합니다.

그리고 빠져들어 가면서 나타나는 특징이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가족과 이웃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과도하게 노력합니다. 이게 빠지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그래서 누가 사랑에 빠졌다. 특징이 뭐에요?

깊이 그 사람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업에 빠지면.. 사업밖에 생각 안 합니다.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게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 그게 빠지기 쉬운 건데

그게 인생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빠지지 말라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 적게 버니까 기분이 안 좋다.

그러니까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악착같이 벌자...

그런데 예수님은 ‘빠지지 말라’고 교훈하십니다.


하여간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아예 애당초 그 문제에 빠지지 않는 게 목표라고 생각하며 살아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 교회현실이 여러분 어때요? 딱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하는 현실이에요.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고

그 십자가의 길의 의미가 우리 생활의 순간순간 속에 스며들기를 바라고 계시는데

세상사람 모두는.. 다 임금 삼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도 덩달아 그 밑에서 한 자리 차지하니까요.


지금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 후에, 이런 낌새를 눈치 채시고

이 거리를 어떻게 메워야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하시면서

‘이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표적’을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먼저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생긴 장밋빛 환상을 다 깨버리시고,

다음으로 오히려 ‘세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지만, 우리는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여간 이 본문이 기가 막힌 것은,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에게 누리라고 주신 모든 것들이.. 다 ‘바다’와 같습니다.


남편이 바다에요. 아내가 바다에요. 자식이 바다에요.

주시고서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기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에요.

주시고는 <빠지지 말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삭을 주신 이유는 이삭에게 빠지지 말라고 주신 것이지,

이삭을 잘 키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이삭을 잘 키우는 것은 누구의 일? 그건 하나님이 하실 일 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에 붙잡고 있어야 할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모든 것들을.. 다 ‘바다’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예1. 권투 시합의 예

여러분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부가 아이를 기를 때, 마치 권투를 해야 합니다.


엄마들은 보통 그래요.

공부 못하는 아이를 붙잡고 엄마들이 씨름을 하려고 해요.

그러나 씨름을 하면 안 돼요.


되지 않는 사업을 잘 되게 하려고, 남편들은 사업을 붙들고 씨름을 하려고 해요.

그러면 안 돼요.


권투는 떨어져 있어요. 떨어져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잽을 넣습니다.

둘이서 붙어서 끼어 안으면 끼어 안자마자 누가 달려와요?

심판이 달려와서 떼어 놓습니다.


이게 바로 신앙인이 이 세상을 사는 거예요.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모든 것들은.. 우리가 껴안고 <씨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떨어져서 <권투>처럼 시합을 해야 합니다.


씨름이나 레슬링을 할 때 보면, 막 엎어 놓고 뒹굴고 난리가 나잖아요.

이것은 하나님과 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붙잡고 씨름하는 거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마음에 받아들이거나 마음으로 껴안으면 안 되고

오히려 (권투처럼) 떨어져서 공략해야 이깁니다.


▲예2. 내가 우리 아이를 키울 때, 절대 껴안으면 안 됩니다..

그 아이를 부둥켜안고 ‘이 아이의 문제가 뭘까? 얘가 누구를 닮은 것일까?

혹시 돌연변이가 나온 건 아닐까? 난 어릴 때 공부를 잘했는데...’


이렇게 씨름하지 말고, 그냥 마음에서 껴안지 말고 떨어져 있다 보면

코치되신 하나님께서 '잽' 할 때 탁 가볍게 툭 쳤어요.

지나가면서 한 마디 했어요.

'무진아 그러면 되겠냐?' 한 마디하고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 잽이 아들에게 제대로 먹힐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근데 우린 씨름을 해요. 씨름을 하고 난리를 치면서

씨름선수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씨름을 하고 또 씨름을 해도

그 아이의 못된 근성, 못된 습관이 하나도 안 고쳐지는 거예요.


▲예3. 지금 사업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고 칩시다.

껴안으면 안 되고 누굴 껴안아요? 하나님을 껴안아요.

사업을 껴 안으면.. 이게 바로 사업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겁니다.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 보나마나 죽습니다. 끝장입니다.

사업은 떨어져서 권투를 해야 됩니다. 잽으로 툭툭 쳐야 해요.

그러다가 챤스가 오면 강하게 밀어부칠 때도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다'에 안 빠질 수 있나요?


태초로 창세기로 돌아가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깔려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더라’  창1:2


예수님이 지금 바다 위에 걸어오신 장면을,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장면과 겹쳐서 보시기 바랍니다.

본질상 같은 장면입니다.


태초에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처럼,

예수님이 깜깜한 바다 위를 걸어오십니다.


지금 바다가 태풍이 일어나요. 혼돈이 있어요. 깜깜해요.

창세기에 흑암이 덮여있는 장면과 유사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다른 동물과 다르게 지은 것은

코에다가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었어요.

그 어떤 짐승도 코에다 대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짐승이 없어요.


여러분, 바람을 집어넣은 구명정, 튜브 .. 이런 것은 다 물에 뜨잖아요?

‘하나님의 신’도 바람처럼.. 수면 위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바람은 절대 수면 아래로 다니지 않습니다. (목욕탕에서 애들이 방귀 끼면.. 보세요)


예수님도 물 위를 걸어오시면서, 물에 빠지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속 내면이 충만해 계시니까 ..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바람’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 ‘바람’의 능력으로.. 중력의 법칙을 이기고 물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죄가 뭡니까? 결국은 그 바람이 빠지고 사람의 영혼이 쭈글쭈글하게 돼버린 것이에요.

하나님의 바람, 신바람이 다 빠져나간 상태로.

그러면서 바다에 가라앉는데 누구랑 가라앉느냐 하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껴안으면서.

-자식 껴안으면서 가라앉아요.

-돈 껴안으면서 가라앉아요.

-애인 껴안으면서 가라앉아요.

다 마음에서부터 껴안으면서, 베드로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삶이 진행이 됐다는 것입니다.


▲예4. 여러분 주유소 입구에서, 마구 흔들리며 춤추는 ‘키다리 허수아비 인형’ 봤어요?

그 허수아비를 보면, 속에 바람이 들어가서 탱탱하잖아요.

그 탱탱해진 튜브 같은 인형모습으로는 누구도 못 껴안아요.


하나님의 바람이 내 속에 들어오면

내가 세상을 아무 것도 껴안을 수가 없어요.

이미 내가 팽팽해져 있으니까, 세상이 내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자식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되지요.

'미안해. 하나님의 바람으로 탱탱해져서 더 이상 널 껴안을 수가 없어.'


사업을 향해서도 '사업아 마안하다. 하나님의 바람으로 탱탱해져서

내가 더 이상 너를 껴안을 수가 없어.' 이러고 있는 동안에 내가 둥둥 뜨는 거예요.

이게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예5. 직장에 빠지지 않는 남편의 예

남편이 직장에서 상사한테 잔뜩 깨졌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시무룩해 있어요.

'왜 그래?'

'나 오늘 부장님한테 열라 야단맞았어.'


그러면 '여보. 내가 뭐라고 했어. 당신 이거 조심하라고 했잖아. 내 그럴 줄 알았어.

올게 온 거야. 사람이 어째 그래. 큰일 났네.

요번에 진급해야 하는데 당신 이름 빠지면 어떡할라고. 그래?'


'아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왜 이러지?' 그러면서 점점 더 가라앉아요.


부인이 떠 있어야지, 안 그러면 같이 가라앉아요. 남편이 가라앉아 있는데, 더 가라앉혀 버려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떠있으면서 건져주는 거냐?


'뭘 그것 갖고 그래요?'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잊어버리고

즐겁게 밥해서 오히려 더 맛있는 반찬도 해주고 난리를 쳐요. 직장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어느덧 남편의 마음이 붕 떠있게 됩니다.

남편이 밝은 얼굴로 회사로 가요.


부장이 봤는데, 아니 이 사람 어제 잔뜩 야단맞고 갔는데 얼굴이 환 하거든.

'김대리, 뭐 좋은 일 있어?'

'아닌데요. 좋은 일 없는데요.'


그러면서 남편이 직장에서 계속 버티는 겁니다.

그리고 부장도, 김대리를 다시 쳐다보게 됩니다.

‘저 친구는, 내가 모르는 무슨 비밀이 있어!, 무슨 단단한 빽이 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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