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9

시91편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약적 해석

LNCK 2009. 8. 3. 20:54

https://www.youtube.com/watch?v=6aQHsBbxaxk 

◈시91편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약적 해석             시91:1-16               -09.07.03. 스크랩-

 

※시91편을 신약적으로 잘 해석한 설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구약적으로도 지켜주시지만, 더 우선순위는 '신약적'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어 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지켜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달라서

이렇게 삶이 공회전하며 우리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기쁨도 감격도 없었나봅니다...

 

 

시91편은, 하나님이 지키신다고 하는 내용이 주제가 되는 시편이에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고 전능자의 그늘아래 살도록 지켜 주시고,  :1

나의 피난처고 나의 요새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2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지키시고 심한 전염병에서 지켜주시고... :3

그가 나를 깃으로 덮으시는 바람에 방패와 손방패가 되어주시고.. :4

뭐 하나님이 방패와 손방패가 되어주시는데 누가 나를 해치겠습니까?

 

그리고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5

어떤 재앙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서

내 왼편에서 천 명, 오른편에 만 명이 쓰러져도

나한테는 해당이 없다는 겁니다.  :7

 

▲그런데 현실은.. 시91편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지켜주시는 하나님과

기독교의 실제역사를 나란히 갖다 놓고, 한 번 대비해서 살펴봅니다.

 

①스데반집사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간을 떠올려 봅시다.

여호와하나님을 지존자로 섬기며 그분의 보호와 그늘아래 들어갔던 스데반집사가

도대체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어디 가시고

돌에 맞아 무참히 죽어야 되는 겁니까?

 

②예레미야가 감옥에서 고난당하고,

계속 자기의 출생을 후회하고 그럴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신 것입니까?

 

③바울이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 당할 때

또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사자 밥이 되어 갈기갈기 찢겨 죽고

장작더미위에 올라서 불에 타서 죽어갔습니다.

 

도대체 지키신다고 하는 하나님은.. 무엇을 지키신다는 겁니까?

어디서 뭘 지키신다는 것이에요?

 

④예를 들어서... 전염병/ 흑사병이 돈다고 할 때,

그러면 하나님 잘 믿는 사람도 병에 걸립니다.

비행기 사고 나도, 거기에 교인들도 함께 죽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성경이 말하는, <지켜주심>의 핵심은 뭘까요?

 

14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하는 말씀이 나와요.

 

여러분, 분명히 합시다.

신앙인이 자기에게서 지키기를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내게서 지켜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신앙은 공회전합니다.

 

내가 뭘 지키고 싶습니까? 내 삶에서.

내 목숨/ 내 건강/ 내 사업/ 내 자녀... 이겁니다. 나는 이것들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지켜주시려 하시는 것들은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에요.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잠4:23

보디가드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인드 가드/ 소울 가드/ 스피릿 가드입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되 우리 몸을 지키시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제가 아는 전도사님이 연탄가스를 맡고 돌아가시기 직전이었습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 후에도 다리부터 점점 썩어 올라와요.

그래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두 다리를 절단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기 원하셔서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하실 수 있고, 병들게 하실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뭐 때문에요?

우리 영혼을 죄의 전염병과 각종 질병으로부터 지키시기 위해서,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맥락으로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면, 잘라버리라고 하셨잖아요?

 

위에서 언급한 스데반 /사도 베드로/사도 바울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

하나님은 그들의 영혼을 반드시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때로는 극심한 육신의 환란과 핍박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연탄가스 전도사님’이 두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스데반의 마음을 지켜주신 결과

하나님 지켜주신다는 게 뭡니까?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 삶의 의미는

하나님이 내 돈을 지켜주시면서..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의 재산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의 사회적인 나의 명성과 지위를 지켜주시면서

나의 체면을 지켜주시면서... 우리의 신앙이 진행되는 게 아니에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헬라파 유대인들이 앞장서서 돌로 칩니다.

스데반의 이름 자체가 헬라이름이에요. 그러므로 스데반이 아마 아는 사람들이에요.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 죄 없는 자기 자신을 돌로 쳐 죽일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은 스데반의 마음으로써

그 마음을 지키심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을 용서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지키신 것은

스데반의 몸은 돌에 맞아 죽게 하시면서

억울하게 돌에 맞아 죽어가는 그 현실 속에서

자기를 억울하게 치는 자들을 향하여 용서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지켜주신 것이에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지키심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도록/하늘에 두도록/하나님의 마음에 닿도록 지켜주시는 것이지

우리의 재산을 지켜주시고/우리의 몸을 지켜주시는 게... (일차적으로) 아니에요.

 

▲심지어는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심지어는 우리의 재산을 다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욥처럼!

하나님이 내 영혼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심지어는 내 자식까지도 나보다 앞서 데려가실 수도 있습니다. 욥처럼!

 

현실이잖아요. 믿음의 현실 아닙니까?

 

▲하나님께 달라붙는 자들을 지키십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4

 

여기서 ‘사랑한즉’이라고 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하샤크’입니다.

로맨스적 사랑이 아니라, ‘달라붙다’는 뜻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cling to.

딱 달라붙는 거예요.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꼭 달라붙은 사람들을 건지시겠다. 이게 지키는 거예요.

 

아주 진드기처럼 달라붙어있으면 그러면 건져주시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진드기처럼 달라붙어있을까요?

주님의 십자가를 진드기처럼 붙잡는 거예요.

한순간도 잊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

하나님께 달라붙어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건지리라’는 게 뭐겠어요?   :14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은 무슨 총칼 들고 들어오는 이북 괴뢰군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것은 내 자식놈으로부터 나를 건지시리라... 이런 뜻입니다.

 

왜 ‘건진다’는 말을 했을까요? 무엇으로부터 건진다는 겁니까?

마음이.. 자식에게 빠지고/ 남편에게 빠지고

사업에 빠지고/ 돈에 빠지고/ 내 미모에 빠지고/ 내 미래에 빠지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애착을 갖고 집착 가지면서

빠져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건지려고. 뭘 건져요?

 

내 마음을 건지시겠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이 지키시겠다는 거예요.

 

그 어떤 문제에, 그 어떤 일에 대해서 내 마음이 빠져 들어가면

내가 하늘의 평강을 상실하고 하늘의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런 불행한 환경으로부터 건져내시겠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 달라붙어있으면!

 

 

▲마치는 말

하나님이 지키시려는 것은, 여러분의 결혼하고 장가 잘 간 미래를 지키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돈, 재산 지켜주시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사업체 지켜주시는 게 아니에요. 사업체 망할 수도 있어요.

 

비록 망할 때라도,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켜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믿으실래요, 여러분?

하나님이 지켜주시려는 게 그거에요.

 

병들 때도 병원에 들어가서

병든 거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켜주시겠다는 겁니다.

 

주님 십자가에 붙어있으면, cling to하고 있으면

주님의 십자가를 놓지 않고 있으면 건져주시겠다는 겁니다.

 

돈을 벌게 해주시겠다는 게 아니라, 돈의 풍파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돈이 없어도 감사할 수 있게 해주시고

돈이 있어도 돈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사치하지 않게 해주시고, 낭비하지 않게 해주시면서... 건져주시겠다는 것이에요.

 

나쁜 대학 들어가도 살 수 있고 기죽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거지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주시겠다는 뜻이 아니지요. 지키신다는 뜻이.

 

스데반집사님 생각해보세요. 베드로 생각하세요. 사도바울 생각하세요.

예레미야, 모든 선지자들이 다 돌에 맞아 죽고 채찍에 맞아 죽고 칼에 맞아 죽었어요.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은 그들의 죽음의 현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켜주셨던 거예요.

그래서 결국 영생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이 그림 그리고 있는 좋은 세상,

아예 오늘 다 찢어버리고 다 지워버리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되면 되요. 이 세상은.

 

단지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지켜져야 될 것입니다.

마음이 지켜져야 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너희 마음을 지키라.  잠4:23

 

재산과 건강과 내 명예와 내 자식과

내 가정의 울타리와 내 사업체를 지키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드려져야 하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하나님께 달라붙어 있으시면서

매사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