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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에베소 비전사역 2032

LNCK 2009. 8. 13. 11:14

◈사도바울의 에베소 비전사역                     행19:8~10                   09.07.19.설교스크랩



◑제3차 선교여행의 거점도시, 에베소


드디어 사도 바울은 제3차선교여행의 장도에 오르게 됩니다.

안디옥에서 불과 한 달 남짓 쉼의 시간을 가진 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그는 다시 3차선교여행 길에 오른 것입니다.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차선교여행 마치고) 얼마 있다가 떠나 (3차선교여행 시작)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18:22~23


이 3차선교여행의 코스는 2차 여행과 거의 같은 여정으로 시작됩니다.

바울의 2차선교여행 여정의 가장 핵심적인 선교 전략도시가 고린도였다면,

제3차 선교여행의 핵심적인 선교 전략도시는 에베소였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약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 도시의 복음화에 전력투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20:31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두란노 서원 강론은 2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9:10


사실 제2차 선교여행시 바울은 에베소를 잠시만 들렀다가 떠나면서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18:19~21

그 에베소에 바울은 약속대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19:1


그리고 바울의 모든 선교 여행을 망라하여 가장 오랜 시간을

이 도시에서 머물게 됩니다. (3년/20:31,        ※고린도에서는 1년6개월 체류함/ 18:11)

그 만큼 에베소는 바울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도시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에베소는 세계적인 무역 도시였으며

인구가 한때 30만에 달하는 곳이었습니다.

로마제국 당시 소아시아 최대의 도시로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新로마로 불리었습니다.


무려 2만 5천명을 수용하는 대 극장, 체육관, 음악당과

거대한 쇼핑상가와 대 목욕탕 시설이 있는 도시로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에베소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발굴된 에베소의 고대유적을 보면, 정말 세상적 관점으로 거대합니다.)


로마의 집정관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 후

수시로 에베소에 들러 보석과 화장품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석주 127개가 동원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테미 신전에서는

(지금은 돌기둥 한 개만 남아 있음)

매년 5월에 세계의 호사가들을 불러 모으는 아테미 여신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도시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복음인 것을 확신했고

그래서 자신의 고귀한 인생의 시간을 이 도시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울 사도가 전력투구한 에베소 비전사역의 핵심과 전략,

그리고 그 결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에베소 사역의 핵심 - 하나님 나라 강론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19:8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도 변함없이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던 주제는

하나님 나라 비전이었습니다.

사실 그 비전은 예수님의 비전이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째로 증거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막1:15,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였습니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나라가 임하옵시며’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다시 가르치신 주제가 무엇이셨습니까?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바울 사도는 이런 예수님의 제자로서 변함없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설교하고 펼쳐 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 그 시대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나라뿐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만이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통치’는 오직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서만

시작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바로 바울이 3년 동안

이 도시, 새 로마 에베소에서 선포하고 가르치고자 한 복음이었습니다.


아니 지난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

예수님의 신실한 모든 제자들이 전하고자 한 동일한 메시지였습니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쟝 깔뱅)의 후예를 자처하는 개혁 교회들은 금년에

세계 도처에서 존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1509년 탄생) 행사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본래 프랑스 태생이지만 스위스 제네바를 종교 개혁의 거점 도시로 삼고

죽기까지 그 도시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가 가르친 평생의 설교의 핵심은

바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었습니다.

그는 정교분리(교회와 국가의 정치적 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그가 살고 있는 제네바 시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룩한 도시가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칼빈의 설교와 가르침의 영향을 받은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네바 도시의 정치계 교육 문화계 그리고 사업계에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 도시에서 도박이 사라지고, 춤이 금지되고, 사치와 방탕이 줄어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안는.. 살기 좋은 거룩한 도시로 변화해 갈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점점 변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제네바에 앞서 먼저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로 이 도시에서 맨 먼저 일어난 일은,

우상을 만들어 영업하는 자들 마술사들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 도시가 복음의 거룩한 충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 운동이 지금 우리의 도시 우리의 마을에도 필요하지 않은가요?

바울의 에베소 사역의 핵심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었던 것입니다.


◑2. 에베소 사역의 전략 - 두란노 제자 훈련


그렇다고 모든 에베소 시민들이 바울의 메시지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여전히 이 도시에도 바울을 비방하는 무리들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대적하는 대신 자신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사람들을 따로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 모아 집중적인 훈련을 베풀었습니다.

일종의 제자훈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참 제자들만 일어난다면

반드시 복음은 승리하고 이 도성은 변화될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학자들 중에는 바울이 2년 동안 말씀을 강론했던 현재의 셀수스 도서관 자리를

두란노 서원 자리로 추측하기도 합니다만

그 도서관은 AD110년경에 지어졌기 때문에 바울사도 당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두란노는 아마도 당시 존경받는 철학자의 이름으로서

그 건물의 주인이었는데, 더운 낮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비어 있었는데

바울이 이곳을 빌려 집회 장소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두란노 제자 훈련이 바로 바울의 에베소 복음화의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운동은

언제나 ‘헌신된 소수의 제자들’이 펼쳐 왔다는 사실입니다.

군중이 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충성된 소수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상황을 빌려 말하자면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이 소중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비전을 가지고 살기 위해

제자훈련을 받고, 목자로, 평신도 선교사로,

하나님 나라 사역에 헌신하는 제자들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 모든 성경공부는 3년~4년이면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 섬기기에 합당하도록 커리큘럼이 디자인되어 있는

제자훈련의 과정인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하고 그리고 그 훈련 후 실제로 영혼들을 돌아보는

목자와 마을장으로 헌신하고 계신 분들 바로 그분들이

우리 교회의 두란노 제자들이신 것입니다.


칼빈도 제네바에서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바울 사도처럼, 변화를 원치 않는 교권주의자들의 반대에 직면합니다.

그는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3년간을 조국 프랑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3년 후 다시 제네바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

더욱 강력하게 말씀으로 제자 삼는 운동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제네바의 성시화는 촉진됩니다.


그러면 오늘의 텍스트가 도전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은 언제까지 소위 Sunday-Christian으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제 라도 남은 생애를 제대로 말씀으로 훈련받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다운 제자로 살아가시겠습니까?


◑3. 에베소 사역의 결과 - 소아시아 복음화


19:10, 두 해 동안 이 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그는 비록 에베소 시내의 작은 건물 두란노 서원에서 사역했지만

그 영향력과 결과는 소아시아 전체 지역에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아에 사는 자는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에게 훈련받은 제자들을 통해 일어난 결과이었습니다.

예컨대 바울 사도가 골로새 지방을 방문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골로새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에베소에 와서

바울의 말씀 훈련을 받고, 그가 자기 고향 골로새로 돌아가

골로새 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7교회도 대부분 그렇게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시아 전체가 복음의 영향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지평은 아시아에서 계속하여 넓혀지고 있었습니다.


한 인생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어떤 영향력을 남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비록 우리가 바울처럼 많은 곳을 여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멀리 펴져가는 것입니다.


존 칼빈도 그가 많은 곳을 다닌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시간을 제네바에서 보냈지만

마침내 그의 영향은 유럽 전체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스위스, 화란, 독일, 벨기에, 영국 스코틀랜드 모든 사회 계층 영역에

칼빈주의는 깊고도 넓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칼빈은 말년에 벅찬 사역으로 건강을 상하여 마치 ‘종합병원’처럼

많은 지병을 앓게 되지만, 그는 끝까지 설교와 가르침에 헌신합니다.
1564년 2월 6일 그는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4월 25일 마지막 유언의 글을 남깁니다.


“나 존 칼빈 제네바 교회의 말씀의 종은 여러 가지 병에 의해 쇠약해진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련한 피조물인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죄와 약함으로부터 이끌어 주셨을 뿐 아니라,

그 보다 더욱 나의 일을 통해 당신을 섬길 수 있는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음을 감사한다.


나는 내 전 구원의 바탕인 그의 은혜의 선택 외에는

그 어떤 소망도 피난처도 가지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신앙 안에서 살고, 또 그 신앙 안에서 죽기를 소원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예비해 주신 은혜를 붙들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를 받아드린다.

그를 통해 내 모든 죄가 장사지내졌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나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흘린 우리의 위대한 구세주의 피가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심으로

내가 그의 얼굴 앞에 나타날 때, 그의 형상을 입을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한다.”


이 유언서를 쓰고 나서 꼭 한 달 후인 1564년 5월 27일 토요일

그는 마지막으로 시편 39:9절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 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라. 말씀을

맑은 정신으로 암송한 후 평화스럽게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언을 따라 검소한 장례식이 진행되었고

그의 묘소에는 작은 비석도 어떤 표지도 없이

제네바 시내 플랭 팔리에(Plaine Palasis)에 묻혔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후학들에 의해

후일 그의 무덤에는 JC라는 이니셜 표기만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은 존 칼빈(John Calvin)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의 평생을 걸고 드러내고자 한 그의 인생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뜻하기도 합니다.


칼빈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교회 개혁의 비전, 성시화의 비전,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 어느 날 다가 올 우리들의 죽음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죽음과 함께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준비에 따른 어떤 변화를 결심하시겠습니까?                                      ▣ 해외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