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제2계명 출20:3~6 09.07.26.설교녹취
▲십계명의 분류가, 성경 원문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출20:3~17절에 이르는, 십계명의 본문을 보면
제1계명, 제2계명.. 제10계명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그냥 약 10가지 정도의 계명이 쭉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찬송가에는 십계명을 10개로 구분지어 놓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구분한 것이고, 원래 성경 본문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다.
단지 출34;28절에, 이것을 10계명이라 그랬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40일 40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10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출34:28
그러므로 계명이 10개는 맞는데, 10개를 구분하는 것은, 사람이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신교의 십계명과, 천주교의 십계명이 약간 다르다. 구분을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계명에 있어서
천주교는 2계명을.. 1계명의 부연설명으로 간주한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2계명을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가 두지 말라’는 1계명의 부연설명으로 본다.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출20:3
※2계명 :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20:4~6
그러니까 개신교의 1계명과 2계명을 합쳐서, 천주교에서는 제1계명인 것이다.
그러면 총 9계명 밖에 안 된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눈다.
10번째 계명은 아래와 같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20:17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가 9계명이고,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를 10계명으로 제정했다. (아내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2계명은 예배의 방법
2계명이 1계명의 부연설명이라는 입장도 일부 일리는 있으나,
1계명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하나님만 섬기라는 계명이고,
2계명은, 예배의 방법이다.
2계명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지 말라는
<예배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므로,
1계명과 2계명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2계명(형상을 만들지 말라)은, 출애굽 당시에 매우 중요한 계명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받을 때의 환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십계명을 음성으로 선포하신 후에
이 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셨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심히 불안해졌다.
점점 불안해진 그들은, 아론과 공모해서,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살이 하던 출신들이었으므로, 부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금도 물어볼 필요도 없이 조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 정도로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행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이 당시에 눈에 뭔가 보이는 것(모세를 통한 하나님)이 없어지자
얼마나 불안해 떨었는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들은 절박하게 ‘눈에 보이는 신’을 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눈에 보이는 신을 섬기기 원한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도
그들의 신들은, 예외 없이 눈에 보이는 신들이었다.
가나안을 포함한 고대 근동은, 모두 신들을 형상으로 만들어놓고 섬기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자기 신의 형상이 있었다. 사자/ 뱀/ 송아지든지... 무슨 형상이 있었다.
‘형상이 없는/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섬겼던, 고대근동의 민족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히브리 민족만 달랐던 것이다.
하기야 온 우주에 충만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모양과 형상으로 다 담아낼 수 있으랴!
그래서 하나님은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문화에 속해서 살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당연히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 섬기지 말라고 명령할 필요도 있었지만 (1계명)
나를 섬김에 있어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할 필요가 있으셨던 것이다.(2계명)
만약에 2계명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틀림없이,
하나님을 어떤 형상(우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2계명이 1계명과 구분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천주교처럼 2계명이 1계명의 부연설명이 아닌 것이다.)
◑소극적 관점에서 본 제2계명 *여기서 ‘소극적’이란 : 뭐 하지 말라는 의미
▲사람은 누구나 보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
우리말에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보고서... 비로소 믿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심리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 수 없다는데 그 어려움이 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손, 입, 얼굴.. 이런 표현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하나님께 손이나, 입이나, 얼굴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역이나 성품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절대 하나님이 될 수가 없다.
어떤 형상으로 만드는 순간.. 순간적으로 그것은 우상이 되어버린다.
▲천주교는 마리아도, 예수님도..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도 하고, 기도도 한다.
심지어 성인들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서, 그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어쩌면 천주교는 2계명을 1계명에 부속시켜버린 결과,
이런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나 개신교는, 2계명을 엄격히 지키기 때문에, 그런 형상들을 만들지 않고,
더욱이 그 형상들 앞에서 절하거나, 기도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더욱 발전하다보니, 그들은 ‘성유물’을 만들어서 섬긴다.
수없이 많은 성유물이 있는데,
‘예수님의 수의(성의)’
‘예수님의 머리카락 한 가닥’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못 하나’
‘베드로 사도가 앉았던 의자’ 등
별의별 것을 다 모아서, 그것을 숭배하고 있다.
제2계명을 없애버린 결과라고 본다.
▲2계명은, 그렇다고, 신앙이나 주님을 소재로 예술작품을 만들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기독교는 예술과 문화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우리는 예술과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크리스천은 소위 ‘문화 명령 cultural mandate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어떤 예술작품이나 기념품도, 예배와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십자가 상도 예배와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래서 교회의 첨탑 꼭대기에, 또는 강대상 중앙에 십자가를 세워둔다.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교회에 세우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러나 그것도 2계명에 입각해서 안 세우는 교회도 있다.)
그 십자가를 어떤 예배와 경배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일례로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 이것은 우상인 셈이다.
영화에 귀신이 십자가를 보면 도망가는 모습이 종종 나오는데,
그것은 영화(가상)일 뿐이다.
사람이 나무나 철로 만든 십자가 그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인격적인 것이다.
▲더 나아가, 예배 때, 뭘 보여주어서 은혜를 나눠주겠다고 하는 것은.. 다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강단의 휘장을 울긋불긋하게 좀 신비스럽게 치장한다든지
강단에 촛불을 가져다놓고, 촛불을 켜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역시
2계명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잘못된 것이다. (어쩌다가 한 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강단에 꽃이나 나무 정도를 가져다 놓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
그것 보고, 신비스럽게 생각하고, 종교적인 은혜를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다른 어떤 시각적 효과를 동원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종교적인 효과를 넣어주려고 시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2계명에 비추어, 주의를 요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만나지고, 인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지,
어떤 시각적 효과, 어떤 형상 통해서 만나지고, 전달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이 천주교로부터 떠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몸부림 쳤는데,
오늘날 슬그머니 개신교 일각에서..
천주교처럼 강단을 꾸미고 장식하는 데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본질은,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것이지,
어떤 형상이나, 시각적 조형물을 통해서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들은 모두 우상인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다.
강단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곳이므로, 단순할수록 좋다고 본다.
하나님은 말씀(설교)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분이지,
어떤 시각적 효과를 통해서 만나지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예수님 그림도
우리 각 가정에 예수님 그림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외모에 대해서
키가 큰지/작은지, 뚱뚱한지/날씬한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성경에 언급이 없는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예수님 그림은, 로마 사람들이 제일 먼저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예수님 머리카락을 갈색으로 그렸다. 로마사람들 머리카락 색깔로!
그런데 정통 유대인들은 머리카락이 검정색이다.
어쨌든 우리는 예수님 그림도.. 어떤 예술품, 장식품 차원에서 가질 수는 있으나
그 앞에 촛불을 켜 놓고, 그 앞에 작은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 장소를 신성시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2계명이 금하는 것들이다.
◑적극적 관점에서 본 제2계명
▲십계명 해석 원리 중에 <댓귀적 해석>이란 것이 있다.
십계명은, 대조되는 구절과 내용도 포함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살인 하지 말 것은 물론이요,
댓귀적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댓귀적으로 ‘가정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진실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고,
‘탐내지 말라’에는.. ‘가진 것으로 만족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2계명을 댓귀적으로 해석하면 <이하 이 설교문의 주제>
그렇다면 2계명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명령에는
댓귀적으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 섬기라’는 뜻이 포함된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4: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가르치셨다.
내 영혼의 모든 힘과 정성을 다 바쳐 예배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만 잘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습관적 예배, 형식적 예배를 경계해야 한다.
예배에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영혼이 움직여야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2계명에서 함께 생각해야할 주제이다.
▲예배에 있어서,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손뼉을 치거나/말거나
설교자가 가운을 입거나/말거나
그런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고/안 나타나고를 결정하는 것은
성도의 마음 상태/갈급함이지,
교회당 안팎의 각종 종교적인 형상들, 성직자나 성도의 예복에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식적인 교회 장식에 치중하는 것보다는,
내용적인 우리 심령 준비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일화 : 설교를 들으시는 주님 -강추- ▣ 율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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