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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2067

LNCK 2009. 9. 4. 22:12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막10:46~47                   -설교 스크랩, 출처-

 

 

우리는 이 바디매오가 눈을 뜬 본문을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고               : 능력전도 power evangelism 관점 

-바디매오의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소위 기복주의 관점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을 보는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겠습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의 관점

 

어느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본문은 천양지차의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그 해석 관점에 따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결정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여리고 성에서, 소경 바디매오를 눈뜨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복음서들이 기적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우리도 기적을 찾아 나서라는 뜻이 아닙니다.


초기 교회 신앙인들이 기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 안에서 놀라운 은혜로움을 체험하였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체험을 회상하여, 기적 이야기들 안에 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소경 한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며,

신앙인들은 그분의 뒤를 따라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 지를 말합니다.

(기적 얘기가 초점이 아닙니다.)


▲부활 후 제자들이 깨달은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겪은 제자들은

①그분이 살아 계실 때 하신 말씀과 행위들은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고 깨달았습니다.


②이제 예수님이, 성령으로 그들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생전에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하신 일들을,

이제는 자기들을 통해서, 계속 똑같이 일하셔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제는 자기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본문)에는

초기 신앙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믿던 바와, 그들의 실천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의 고백...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의 주인공인 바디매오라는 눈먼 걸인은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막10:47


초기 신앙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습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는 말은.. 초기 신앙인들이 바치던 기도입니다.

 

바디매오는 메시야(다윗의 자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간구했는데,

이것은 당시에 대단한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역시 대단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 말고, 딴 것을 구하거든요.)


누가복음서에는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8:9-14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입니다.


바리새인은 기도 중에, 자기가 지키고 바친 일(자기 의)들을 나열하였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18:12


그러나 세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빌었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18:13


세리의 기도가 참되다는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믿고 인정하는 ‘믿음’이며,

-하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핵심을 간파했던 바디매오

유대인들은 율법만 잘 지키면 하나님과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비가 자기 안에 흘러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막10:48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포함한 그 분의 성품)에 대해 전혀 모르고/관심도 없고,

한 술 더 떠서, 자비를 비는 그리스도인들을 꾸짖지만,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큰 소리로 구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믿음’이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비를 청하는 소경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  막10:52

너의 간청이 간절하기에 고쳐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는 말은 예수님이 자주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자비롭고, 고치고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성품을/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구원 받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 이것은 구약 유대인들의 불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제물을 잘 바쳐서, 하나님으로부터 혜택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 이것은 오늘날 한국 교인들 다수의 믿음입니다.


참 신앙인은

자비롭고, 인자하시고, 고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①즉 그분의 성품/그분의 어떠하심을 믿는 것이며,

②그 분이 내 안에서/나를 통해서, 그 분의 성품을 나타내는 일을 하시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신 사람/성도들은,

우리도 그분의 은혜로우심/자비하심/인자하심/길이 참으심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기도로 구하고, 자기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잘못된 믿음

우리는, 우리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운동 경기에서 이기게 해 주고, 수험생을 입학시켜 주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이런 면이 다소 있더라도, 이것이 주된 핵심은 아닙니다.)

 

돌을 빵으로 바꾸어주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발생한, ‘자기 소원의 종교’입니다.

자기가 규정하고, 자기가 바라는 하나님이요, 기독교 신앙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신앙은,

하나님께 빌어서 우리의 염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주님의 성품을 믿으며,

그 자비롭고 인자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그분의 일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바디매오처럼, 우리도 눈이 떠져야 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야심)만 생각하고/쳐다보고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소경입니다.


여리고의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에게 자비를 간청하였더니

시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비를 청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자비(성품)를 배우고

그 자비의 눈으로 보고 행동하는 사람이.. 눈 떠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아직 눈이 감긴 ‘소경’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비는 소용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따끔한 맛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자비를 실천하면 손해만 본다.”


신앙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습니다.

그 자비가 우리 안에 흘러들어서

내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은혜로우심을 (대신)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서 움직이는 십자가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바디매오처럼, 오늘날 우리가 고함쳐 구할 것은?

우리는 오늘 복음의 주인공 소경과 같이

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불러야 합니다.


그 자비를 부르고 외치면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자비를 구했던 바디매오는

   결국에 자기 눈까지 뜨게 되는, 자기 소원까지 이루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막10:51)            ▣ 믿음론 (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