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에서 바울의 위로 행27:18-26 09.08.16설교스크랩/정리
본문은 바울사도의 로마 항해길에, 그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바울이 선객들을 위로하는 장면을 보도합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해, 진정한 위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우게 됩니다.
▲본문 배경
사도바울을 태운 배가, 그레데(크레타) 해변을 끼고 항해 하던 중
갑자기 유라굴로(유로스=동풍, 아퀼로=북풍, 즉 북동풍)광풍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이 바람은 남풍이, 그레테 섬의 한 가운데 솟은 2,456m의 이다 산과
부딪치며 생성된 강력한 북동풍으로서,
배를 남서쪽 망망대해로 밀어내며 파선 직전으로 몰고 갑니다.
선원들은 배의 가구를 다 버리며 악전고투했으나 풍랑은 잦아들지 않습니다. :18
행27:20절을 보십시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 마저 없어졌더라.
저는 오늘 우리 사회,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런 형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풍랑도 잦아들지 않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남북 대치의 상황도 별로 호전될 기미가 없습니다.
이런 역사의 풍랑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바울사도에게서 배우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이, 풍랑을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했는지.. 한 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진정한 위로자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풍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절망적 풍랑 속에서도 바울 사도는
그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7:24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그가 하나님 곁에 항상 가까이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과 하나님사이에 열린 소통의 채널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하나님의 천사는 이 풍랑 중에도
바울 곁에 그렇게 가까이 머물러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풍랑이 일어나도
역사의 주인, 전능자가 우리 곁에 그렇게 가까이 머물러 서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고 계시다면
우리가 무엇을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지금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고.
“너는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너 때문이라도,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24참조
그러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이 음성들은 바울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려져 있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에 피터 로드 Peter Lord 라는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자기 집 파티에,
플로리다 대학의 곤충학자 한 사람을 초청한 일이 있었는데
그 곤충학자가 자기 집 뒤뜰에 연결된 숲속을 산책하고 오더니,
그 숲에는 적어도 18가지 종류의 귀뚜라미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귀뚜라미라고요? 그것도 18가지나 된다고요?”
피터 로드 목사는 그 집에 여러 해 동안 살아왔지만
한 번도 의식적으로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숲에서 무슨 소리가 항상 들렸겠지만, 그것이 귀뚜라미 소리인지 관심이 없었고,
그것도 귀뚜라미의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살던 터였습니다.
그때 문득 이 설교자는, 사람에게 있어서
‘듣기 능력’은 배워야 하는 것이며,
듣는 귀는..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내 귀가 거기에 개발되지 못했고, 훈련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음성이 선포되어도.., 내 귀에는 절대로 안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공중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수많은 전파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라디오, TV, 인터넷으로 주파수만 맞추면
얼마든지 소리도 들리고, 화면도 나오는 것입니다.
아가5:2에 보면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린다
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0:4에서 고백하기를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과거에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서, 주파수를 맞춰보신 적 있으시지요?
확확 돌려서는 주파수를 못 맞춥니다. 다이얼을 조심스럽게 돌려서, 주파수를 맞춥니다.
위의 아가서와 이사야서에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주파수를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라굴로와 같은 광풍이 불어와도.. 끄떡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풍랑을 만날 때 먼저 할 일은 -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은
- 내가 들은 주님의 음성을 그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위로했던 것입니다.
◑2. 진정한 위로자가 되는 길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25
▲레마의 말씀을 받으면.. 반드시 열매가 열립니다.
우리의 영혼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독백이나 환청에 불과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믿는 일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는 ‘말씀 하신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또는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그 말씀이, 그 구절이 내 마음 판에 콱 박히는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개인적인 음성으로,
소위 레마의 말씀으로 내게 심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제 그 레마의 말씀을 붙잡고, 매일 묵상하고, 매일 기도해 보십시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25
라고 여러분도 고백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사55:10-11의 말씀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 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 함이니라.
▲(또 다른 표현으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를 가리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산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 인생의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난다 해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간다면
그 풍랑은 우리를 좌절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다들 과거에 한 두 번 이상씩 경험해 보셨지요?
우리가 풍랑을 이길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각자 ‘자기가 받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그 풍랑을 이겨 나왔습니다.
혹자는, 시편91:7절을 붙들었습니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혹자는, 시편40:2절을 붙들었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남들이 보면, ‘저 사람이 저 말씀만 붙든다고 뭐가 되겠는가?’ 하겠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게 말씀을 붙들고 풍랑을 헤쳐 나온 사람은..
정말 그 붙든 말씀대로 된 것을.. 우리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슨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어떤 분은, 한 달에 한 말씀만 집중적으로 붙듭니다.
‘그 달에 받은 말씀 한 구절’만 붙들고 매일 기도합니다.
그래도 벌써 9월이면, 9개의 약속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미 이루어졌거나,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이
벌써 9개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받은 위로로서, 다른 승선한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고후1:4
보통 경험적으로 보면, 내가 받은 레마의 말씀이
나에게만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도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풍랑 속에서 바울이 받은 말씀은, 바울에게만 위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배에 승선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심방을 갈 때, 병원에 환자를 위로하러 갈 때,
‘과일 살까, 쥬스 사들고 갈까?’ ... 그런 고민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위로해야 합니다.
내가 들고 간 과일이나 쥬스가 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것이요,
그가 이 말씀을 붙잡고 힘을 얻어서,
병석에서/좌절한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내가 받은 말씀이, 그에게도 똑같이 은혜가 됩니다.
내가 최근에 받은 말씀이 아니고, 그저 성경 아무 군데나 펴서 읽어주면,
그에게도 은혜가 안 됩니다.
내가 먼저 (레마의) 말씀을 받아서 힘을 얻고, 위로를 얻으면,
내가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나를 통해 힘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3. 진정한 위로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안심시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25
▲조국이여 안심하라! ... 김용기 장로님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조국 근대화에 매진하고 있을 때
당시 박대통령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 위대한 도덕적, 정신적 영향을 끼친 분으로서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회사, 직장, 관공서, 학교, 교회들이
당시 가나안 농군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새 나라의 비전을 키워갈 수 있었는지요?
가나안 운동은 사실상 당시 새마을 운동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하던 운동이었습니다.
본래 가나안 농군학교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부터
김용기 장로님께서 농민 운동과 복민 이념을 기초로
조국 광복과 그 이후의 복된 조국의 미래를 꿈꾸며 시작하신 운동이었습니다.
그분의 일생의 모토는 “한손에 성경, 한손에 괭이를!”이었습니다.
그는 용인, 광주, 원주 등에서 시작하여 조국 방방곡곡에
메마른 황무지를 개간하여 가나안의 이상촌을 건설하여
복된 민족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산 중턱에 있는 기도실에 들어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던 중보 기도자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기도실 입구에 무엇이라고 씌어있는지 아십니까?
“조국이여, 안심하라”이었습니다.
혹시 그 표어가, 오늘 본문 행27:25절의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에서 따온 표어가 아니었을까요?
사도바울이 깊은 기도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외쳤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이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깊은 기도 속에서, 어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풍랑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내가 기도하는 중에,
우리 공동체의 배가, 내일의 번영의 항구에 반드시 도착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풍랑 속에 있는 회사의 직원들에게 CEO가 이렇게 말씀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사원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나의 하나님은 어제 저에게
저희 회사가 수년 내에 놀라운 은혜를 입고 재기하여
세계 선교를 위해 존귀하게 쓰임 받는 회사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가정적으로 풍랑을 겪고 있는 어느 날, 그 집의 가장이 가족들을 모아놓고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여, 그리고 나의 자녀들아.
어제 나는 QT중에 주의 음성을 들었단다.
그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이
우리 가정을 새롭게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이제 이 고난을 곧 끝나고 우리는 새 역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그러므로 가족들이여, 안심하고
아빠와 함께 기도의 무릎을 꿇고
새로운 내일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준비했으면 좋겠다”
그런 나라, 그런 회사, 그런 가정의 내일이 상상이 되시는 지요?
우리의 역사는 그런 지도자, 그런 CEO, 그런 가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직접 받아서, (성경말씀을 받든지, 지혜의 말씀을 받든지)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로하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회사를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자라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한국 교회여, 안심하라”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여, 안심하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 리더쉽,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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