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 바위 셀라하마느곳 삼상23:25~29 09.08.07.설교녹취
◑본문 설명
▲삼상23:25절, 사울이 부하를 거느리고 자기를 찾아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마온 광야에 있는 바위 틈에 내려가 숨어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울은 그를 추격하여 마온 광야로 들어섰다.
▲26절, 다윗은 자기가 부하들과 함께 있는 산의 맞은편 산에 사울이 나타나자
사울을 피하여 도망쳤다. 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부하를 거느리고 포위하기 시작하였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완전히 포위당하게 되었다.
다윗은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었다. 포위망은 점점 더 좁혀지고 있었다.
다윗은 더 이상, 자기가 노력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윗이 스스로 ‘이제 죽었다/끝장이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때 블레셋이 침공하게 된다.
그래서 천우신조로 다윗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데...
▲27절, 그 때 한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보고하였다.
"빨리 돌아가십시오. 블레셋 군이 전국에 밀어 닥쳤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시라.
다윗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시점에서
블레셋의 침공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역사는 ‘하나님의 사람(다윗)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다윗이 위기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시점에 블레셋의 침공도 없었을 것이다.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도우신다’는 체험을 하게 된다.
▲28절,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다 말고 블레셋 군을 맞아 싸우려고 발길을 돌렸다.
그래서 그 곳을 갈림바위(셀라하마느곳)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사울의 군대가 급히 포위망을 풀고, 블레셋을 막기 위해 떠나는데,
그 바위를 중심으로, 한 쪽으로는 사울의 군대가 떠나고,
다른 한 쪽으로는,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사울을 피해서 떠났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갈림바위(셀라하마느곳)라 불렀다.
그곳에서 두 군대가 갈라져서 이동했다는 뜻이다.
서로 조우하기(만나기) 직전에, 서로 유턴해서 갈라졌던 것이다.
◑본문 해석
▲그러면 이렇게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 하나님은 다윗이 더욱 약해지기 원하셨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좀더 강해지기 원한다.
자기에게 일어난 많은 문제들이, 자기가 약하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인 줄로 안다.
여러분, 그렇지 않다.
우리의 문제는, 온전히 주님만 신뢰할 정도로, 더 약해지지 않아서 문제이다.
내가 온전히 강하지 못해서,
내 아내가 나를 존경하지 않고, 나를 함부로 대한다... 그게 아니다.
내가 더 온전히 강하지 못해서,
직장에서 아랫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게 아니다.
우리는 더 연약해져서
주님을 100% 의지 하지 않고서는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약한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지금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것을 훈련시키고 계신다.
그래서 사울에게 완전 포위를 당하게 하셨다.
거기서 다윗은, 얍복강의 야곱처럼 완전히 자신이 무능한 자리까지 떨어지게 되고,
바로 그 때 온전히 하나님 한 분만 철저히 의지하게 되고,
바로 그 때 여호와의 구원이 온전히 일어남을, 다윗은 점점 체험하게 된다.
▲다윗에게도, 골리앗을 죽였을 때처럼, 어떤 자기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사울 왕에게 완전히 포위되기 전까지는
그도 자기가 가진 만큼의 힘을 휘둘러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자기 힘으로 대항하는 동안,
사울 왕의 살기등등은 계속되었다.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광야의 포위...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하면서
다윗은 점점 약해진다. 자기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삼상23장을 지나서,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24:4
다윗이 사울의 옷 겉자락만 가만히 벨뿐, 그의 목숨을 건드리지 않는다.
- 다윗이 약한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다.
오랜 광야의 쫓겨다님의 연단을 통해서,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되면서
다윗은 점점 더 연약한 사람이 된 것이다.
▲갈림바위 사건 이후로, 전세가 조금씩 역전된다.
갈림바위의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는 법’을 체험하게 된 다윗은
그래서 구원받는 법을 배운 다윗은.. 좀 더 자유롭게 행보하게 되었다.
삼상24장부터 보면, 사울왕이 다윗을 추격해 다니기는 하지만,
오히려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다윗이 두 번이나 갖게 된다.
그만큼 다윗이, 자기를 잡으려는 사울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뜻도 된다.
하나님은 다윗 편에서 다윗을 도와주신다.
사울 왕을 깊이 잠들게 하시는 등... 삼상26:12
그래서 목숨을 잃을 위기는 오히려 사울 왕이.. 당한다.
다윗은, 사울 왕의 군대 사이로, 그들이 잠들 때, 마음 놓고 돌아다닌다.
다윗에게 담력이 생긴 것이다. 갈림바위 사건을 통해서
가장 연약해져서, 하나님만 간절히 의지하는 법을 배운 이후로
다윗은, 더욱 담대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사울의 진으로 오히려 자기가 나아간다. 삼상26:6~7
사울 왕이 잠든 바로 그 코앞에까지 나아갔다. 대단한 담력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갈림바위의 포위’를 통해, 다윗을 철저히 연약하게 낮추셨다.
갈림바위의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연약해질 정도로 연약해짐을 통과한 다윗은
오히려 점점 더 강해졌다.
자기 힘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강해짐을 배웠던 것이다.
동시에 사울 왕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자기의 강함만 믿는 사람은.. 오히려 점점 더 약해지게 되어있다.
▲이 설교문의 요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자기가 강하지 않아서 문제다. 자기가 능력이 없어서 문제다..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철저히 약해지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다.
‘갈림바위’의 위기를 통과하면서, 다윗이 철저히 약해졌듯이
(그래서 주님만 철저히 의지해서 점점 강해졌듯이)
동일하게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각자를
‘갈림바위의 위기’를 통과하게 하신다.
우리 각자를 연약하게 낮추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아래는 사도바울을 '갈림바위의 위기'를 통과한 고백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나는 이제 끝장이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전1:8~9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는 사도바울의 ‘연약한’ 모습이다.
유라굴로 광풍이 대작해도,
자기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어도,
사도바울은 전혀 끄떡없는 강철인간 같았는데,
사실 그도 이렇게 연약하고 약해지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는 '오직 하나님만 전심으로 의뢰하는 법을 배웠다.'
◑약해 진 야곱... 그 때부터 문제가 해결되다
▲야곱은 형 에서를 모태에서부터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장자의 축복을 받은 후에도,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도망가야 했었다.
20년 만에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야곱은 형으로부터 도망갈 처지에 놓여 있었다.
야곱이 문제는.. 자기가 에서보다 절대 강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가 약하니까, 늘 에서에게 쫓겨 다닌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20년 만에 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되어 돌아온 야곱은,
보니까 에서도 (세상적 관점에서) 거부가 되어 있었다.
4백명의 군사를 동원할 능력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야곱은, 또 다시 형의 분노 앞에서 두려워 떨게 된다.
얍복강에서 야곱은 또 자기 특기인 ‘머리’(궁리)를 사용한다.
선물을 보내서, 형의 마음을 풀어볼까... 라는 궁리도 하고,
자기 가족과 가축 떼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이 공격받으면, 그 사이에 다른 그룹이 피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창32:7~8
그런다고 그의 마음이 안심되고 편안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결국 야곱은, 극심한 환경적 어려움을 통해서, 점점 더 약한 사람이 되어간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그의 옷자락만 간절히 붙드는 자리까지 나아간다.
‘주여, 저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놔 드리지 않겠나이다!’
하나님도 야곱을 더 강하도록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더 약해지도록 도우신다.
그래서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부러뜨리신다.
야곱의 마지막 남은 힘, 도망갈 수 있는 힘마저, 없애버리신다.
야곱은 그 때부터 평생을 다리를 절었다.
그는 자기의 힘과 능력을 구했겠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더 약해지는 것이었다.
야곱은 이제 얍복강에서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자기 다리가 부러졌으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천사(하나님)의 옷자락만 결사적으로 붙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다.
- 야곱이 약하게 되어, 하나님의 능력만 간절히 결사적으로 붙잡는 것
야곱이 약하게 되어, 주님의 얼굴만 간절히 구하는 것 (그곳 지명이 브니엘)
이것이 바로 야곱의 힘과 능력의 근원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가르쳐 주시기 원하셨다.
▲놀랍게도, 야곱이 약해졌을 때, 형 에서가 그를 떠나간다.
야곱이 강해서, 에서를 물리친 것이 아니라,
야곱이 약해졌을 때, 에서가 스스로 물러가더라는 것이다.
야곱이 약해짐으로 변화되었을 때,
야곱만 변화된 것이 아니라, 에서까지 덩달아 변화된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식이고, 기독교의 방식이다.)
▲여러분, 지금 당신은
당신의 힘보다 몇 배나 더 강한 환경과 사람에 눌려서, 매일 위태하게 지내시는가?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지금 길을 바로 가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약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 속에서, 여러분의 환도뼈(힘의 근원)가 다 부서지기를 원하신다.
자기가 꼼짝 할 수도 없을 만큼 연약해져서,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도우심)만 구하게 되게 하시고,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훈련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 외에는, 그 어떤 것(부모, 친구, 물질, 건강...)도 의지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연약해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 바란다.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
야곱처럼 얍복강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다.
다윗처럼 ‘갈림바위’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다.
사도바울처럼 ‘마음에 사형선고’를 아직 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아직도 내가 너무 강하다.
내가 살아있고, 내 힘과 능력으로 주님을 섬기려고 한다.
그 때 주님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자리로 나를 내모시는데...' 그 이유는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전1:9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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