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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 와 ‘자기 의’ 2092

LNCK 2009. 9. 21. 09:09

◈‘하나님의 의’ 와 ‘자기 의’                    롬10:1~4                  09.08.08.설교 녹취



◑‘하나님의 의’ 란?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2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3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서 나타났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의 삯을 다 치르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입혀주신 것이, 곧 ‘하나님의 의’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롬1:17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기의 착한(겉으로 착하게 보이는) 양심과

선한(겉으로 선하게 보이는) 행위로 자기는 의롭게 산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참된 의가 아니다. 바울은 그것을 ‘자기 의’라고 부른다. own righteousness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으로서,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수여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의를 입힘/수여 받는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은 from faith to faith 라는 뜻으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만 (믿음 말고,

     다른 게 섞일 수 없다.)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의’를 입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아래 산다.

로마서 1~3장에서 집중적으로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의’를 입지 못한 사람은, 저 천국에 못 이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 때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진노’아래 살아간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이미 확정되어있지만, 아직 그 집행만 유예된 상태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자들에게

그 ‘하나님의 진노’가 피해졌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그것보다 더 큰 평강과 복된 소식(복음)은 없다.


결코 의로울 수 없던 나에게

‘예수님이 나의 의’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의 의’가 내게 수여되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두고 의인이다/죄인이다... 갑론을박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전해야 될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다.

모든 자연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져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사람은.. 그 진노에서 피하여

‘하나님의 의’로 옷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은 사람들을 ‘자기 의’로 속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물론 의롭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눈총을 받을 정도로 불의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의’로 옷 입으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사람이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본질상, 타락한 양심을 가진 죄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감사헌금을 드리면서도

     동시에 그 헌금하는 내가 드러나는 것을, 은근히 원하는 것이 ‘인간의 의’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청소하지만,

     동시에 그 청소하는 내가 드러나는 것을, 은근히 원하는 것이 ‘인간의 의’이다.

     한 마디로, ‘인간의 의’는 절대 ‘온전한 의’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의’가 절대 ‘온전한 의’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를 언제나, 항상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데,


어떤 ‘자기가 의롭다는 사람’들은

자기가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고, 자기는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지 않는다고

그래서 ‘자기 의’를 믿고서, (나는 누가 봐도 ‘명품 의로운 사람’이지!...)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이 ‘자기 의’를 덮어씌워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사도바울의 말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지만, 결국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2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3


예를 들면, 가정이나 교회에서 내가 열심히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해서 섬긴다.

그런데 주위에 보니까.. 게으르고 나태한 식구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을 정죄하고, 그들을 미워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 된다.


가정에서도, 안 믿는 남편 전도하려고, 열심히 반찬하고, 집안 일 하고,

그런데 늘 남편이 안 믿는다고 화내고, 정죄한다면...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도 모르게) 늘 심판자의 자리에 선다.


▲베드로가, 십자가를 앞두고, 다른 자들은 몰라도, 저는 죽는 데까지... 큰 소리쳤다.

여러분, 이게 바로 ‘자기 의’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한 번 멋있게 과시한 것이다.


아직 오순절의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고,

닭 우는 소리에 뼈저리는 회개를 아직 하지 못한 베드로는,

‘자기 의’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했다.


여러분, 이게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일 수 있다.


차라리 열심을 안 내면 다행일 수도 있다.

교회에서 열심을 내면 낼수록, 힘써 ‘자기 의’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충만 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충성’이지만, 속으로는 ‘자기 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열심 때문에... 공동체가 시험이 들고,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차라리 조용히 신앙생활하면 좋을 것을...)


▲열심히 주를 섬긴다는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조용히 신앙 생활하는 것을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자기 의’를 세우면서 마귀에게 넘어지는 자는

90%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열심 내지 않는 주위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할 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열심이 있지만,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영광을 감추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자기가 열심히 봉사하지만, ‘자기 의’는 부패한 것임을 자각하고,

오직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의’만 덧입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롬10:2~3

여러분, 무슨 봉사를 하든지, 무슨 헌금을 드리든지

‘자기 의’가 되면 안 된다. 인간에게 ‘자기 의’는 없다.

‘자기 의’를 드러내다가 ‘하나님의 의’에서 미끄러지게 된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그랬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으나, 결국 ‘자기 의’를 세운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늘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동시에 남을 멸시하고, 정죄하고...


열심이 없었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율법을 외모로 지키는 데 매우 열심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람에게 보이고 존경을 받기 위한.. ‘자기 의’를 세운 것이었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자기 삶에 습관이 되다가...

결국에는 예수님까지 판단하고 정죄해서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없었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 너무나 두려운 말씀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특심한 사람들이, 종종 똑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 할 때 그렇다.


즉, 인간이 아무리 선행하고, 봉사해도 ‘자기 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 선행과 봉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주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자기 의’를 세우려다 보니,

그렇지 못한 주위 사람들을 비판, 정죄하게 된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는 ‘자기 의’를 부인하고, ‘자기 의’가 없는 사람이 받는다.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은   눅18:9

‘하나님의 의’를 못 받는다. 이미 자기가 의롭기(자기 의) 때문이다.


▲사도바울 역시 처음에 ‘자기 의’에 붙들려 살았다.

자기 자신을 ‘율법에 흠이 없는 자’로 생각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3:6


     오늘도 가끔 자신을 ‘나는 흠결이 없는 자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자는 아무도 없다.

     만약에 있다면, 그는 ‘자기 의’를 세우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그것이 필요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청년 사울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다보니,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해서, 다른 나라(다메섹)에까지 원정 핍박을 갈 정도였다.


여러분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게 되어있다. 갈4:29

성령을 따라 난 자는, 절대 남을 핍박하지 않는다. 성령으로 났기 때문이다.


언제나 악인이 의인을 죽이지, 의인이 악인을 죽이는 법은 없다.

의인은 악인을 죽이지 않고, 살린다. 의인이기 때문이다.

악인은 의인을 죽인다. 그 의인에 비춰서, 감추인 자기 악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러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밝은 빛’의 비춤을 보기 전에는

오래 동안 ‘성령을 훼방하는 자’였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내가 ‘성령을 훼방하는 자’가 혹시 될까봐... 늘 두려워해야 한다.

오늘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열심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거기에다가 열심까지 있으면...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하는 ‘성령훼방자’가 될 수 있다.

사탄이 자꾸 그 길로 가도록, 도와주고, 내 마음에 불을 지른다.


오직 예수만을 자랑하고, 절대 ‘자기 의/자기 공적/자기 자랑’을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하나님의 의’ 밖에 없다.



◑적용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사람은, 나보다 훌륭하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에게도 전도한다.

우리 주위에 나보다 훌륭하고, 출세하고, 잘 난 사람이 많다.

‘자기 의’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전도 못 한다.

자기가 너무 초라해서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의’를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사람은,

아무리 출세하고 잘난 사람이라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초라한 죄인 됨을 본다.

그래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긍휼히 여기고

당신에게 ‘하나님의 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면서 전도하는 것이다.


그 잘난 사람이 ‘너나 예수 똑바로 믿었으면, 잘 풀리지, 너나 잘 하세요!’

이렇게 반응하더라도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도 당신은 하나님의 의를 덧입어야 합니다’ 하면서 힘써 말한다.


여러분, 오늘 혹시 당신이 위축되었는가?

‘자기 의’를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을 버리시기 바란다.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4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셨음을 믿는다.


예수를 붙잡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성공을 하거나, 성취를 하거나, 뭐가 되어야 ...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

자기 기쁨의 근원이 ‘자기 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하나님의 의를 붙잡는 사람은

성공 안 해도, 성취가 없어도...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것들로 인해서... 기쁨과 자랑을 삼는다.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고,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내가 ‘하나님의 의’를 덧입게 된 것으로... 기뻐한다.


여러분, 오늘 만약 당신이 어떤 이유로든지 풀이 죽어 있다면

‘자기 의’를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사람은 ... 매일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마치는 말

제 자신도 너무 오랜 시간을, ‘자기 의’에 빠져서, 정말 오랜 시간을 낭비하고 살았다.

착하다고 칭찬 듣는 사람, 괜찮다는 인정받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게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은혜로 ‘철저히 회개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

그냥 지식적 동의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바닥을 치고,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절망,

이런 깊은 회개가 있는 사람은, 절대 ‘자기 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내세울 게 없다.


그런데 피상적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만 잘났다.’ ‘자기 의’로 충만해져 있다.

거기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현상이.. 남에 대한 비판과 정죄이다.


     오늘날 많은 ‘안티’들이 교회를 공격하고

     또 교회가 대응해서 ‘안티’들을 공격하는 것은

     그 근본바탕에 ‘자기 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의’로 옷 입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게 되시기 바란다.

죄인들이라도 긍휼한 마음을 갖게 되시기 바란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