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보좌에서 나는 청천벽력 계4:5 -08.04.20.설교스크랩-
보좌에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계4:5a
▲보좌에서 장엄한/무서운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이 앉아계신 보좌로부터, 참 아름다운 음악이 나와야죠...
우리식으로 하면 거문고 선율이라도 들렸으면 좋으련만
위 본문은, 너무 무섭고 그리고 좀 비인격적인 그런 차가운 느낌까지 들어요.
하나님이 앉아계신 보좌에서,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번개와 음성과 뇌성... 우르릉 꽝꽝 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
뭔가 ‘사랑의 하나님’하고 매치가 잘 안 됩니다.
제가 연예인교회를 섬길 때, <새롭게 하소서>인가요.. 뮤지컬을 준비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뮤지컬로 시나리오를 써가지고
그때 최민수 씨가 예수님 역을 담당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할 때, 창세기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창조 하시는 장면에서
드라이아이스로 흰 연기를 만들어서 무대에 내보냅니다.
그 때 누군가 마이크를 가지고, 하나님 소리를 내는 겁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면 빛이 막 비춰지고 그랬는데,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좀 웅장하지만, 좀 푸근하고 따뜻한 음성을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4:5절에 보니까,
번개가 치고 우르릉 꽝꽝하는 천둥소리로 하나님의 음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으니까...
‘웬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 중에 ‘청천벽력’ 이라고 단어를 붙여 보았습니다.
도대체 사도요한이 무엇을 듣고 보았기에
이렇게 차갑기 그지없는 청천벽력으로 표현 될 수 있는
번개와 천둥소리로 하나님의 음성을 묘사했겠는가? ... 함께 생각해 봅시다.
※물론 주님의 음성은, 천둥 번개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도 있고 계1:15,
‘세미한’ 소리도 있습니다. 왕상19:12
그러나 가장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소리는 ‘우레와 뇌성’ 이라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을 생방송 중계하고 있는 사도요한
여러분, 지금 이 계시록에 나와 있는 글들은, 마치 생방송 같습니다.
사도요한이 마치 앵커처럼 마이크를 들고,
천국의 상황을 생생하게 생방송해주고 있는 것이.. 계시록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동사들이 다 현재형으로 씌어 있어요.
지금도 천국은 있고, 보좌에서는 천둥과 번개 같은 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좌 앞에서 천둥/번개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듣고 사는 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신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난다라는 이 말씀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청천벽력 같은 번개소리, 뇌성, 천둥소리를 듣는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문제 제기, 해답↓
▲1. 천국의 벼락 소리(하나님 음성)를 들으면, 다른 잡소리가 안 들립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고 하는 것은
천둥이 치고, 번갯불이 번쩍번쩍할 때, 벼락이 ‘짜작’하고 때리는 순간에
‘여보 사랑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야 너 공부 안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천둥이 꽈꽝~’ 할 때는.. 다 그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집중이라기보다는, 주의집중을 확 빼앗겨 버리고 말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이런 뜻이 있다는 것이에요.
①제 어머니 예를 들면,
제 어머니가 둘째까지 낳았을 때, 아버지가 자꾸 빼빼 말라가십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잘 드셔도.. 아버지는 자꾸 몸이 말라가십니다.
그래서 을지로에 있는 어느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고 X레이를 찍었더니
진단결과가 ‘폐암말기’로 나타났습니다.
그때 그 이야기를 어머니가 제게 하시는데.. 그 때 청천벽력 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한텐 정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여자 분이
조그만 애를 둘 데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의학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아마 청천벽력 이었겠죠.
그런데 나중에 알아 봤더니, 그 X레이 필름 자체에 원래 점이 있었어요.
옛날이니까 필름의 질이 나빠서, 그게 폐암 말기로 나타났던 것이지요.
그런데 몸이 왜 그렇게 마르셨나 하면,
십이지장충 기생충이 들어와서 그랬다는 겁니다...
남편이 폐암인줄 알고, 어머니가 놀라서 친정인 창녕에 보내서
장어로 몸보신을 해서 아버지가 다시 포동포동 살이 쪄서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폐암말기라고 하는 진단을 들었을 때
어머니에게 아무 다른 소리가 안 들립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우리가 진짜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면,
다른 세상 잡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②밴쿠버에서 어느 권사님의 아들이, 깡패아이들 싸움에 끼어들어 말리다가
27살인데, 그만 총탄에 맞아 죽고 말았어요.
그런데 그 권사님을 뵈었는데, 자기가 일년이 넘도록..
다른 사람의 말이 한마디도 그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괴로워하셔요.
분명히 아들이, 믿음 안에서 천당에 갔다는 것이 너무너무 확신될 만큼
그 장례식이 잔치라고 느껴질 만큼, 모든 교인들이 천국 영광을 보면서 확신했습니다만
너무나 아깝게 아들이 죽었다고 하는 그 사실이 청천벽력 같아서
그게 마음에 쾅 하고 그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부터
적어도 1년 동안은, 전혀 어떤 말씀이 귀에 안 들어오고
너무너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시는 권사님의 모습을.. 제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고 하는 것이
이게 청천벽력이 떨어지듯이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지금 보좌 앞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사도요한이 듣고 있는데
하늘에서 번갯불이 번쩍하고 그리고 천둥소리가 막 요란하게 하늘에서 울리고 하는
그 소리로 그대로 들을 때, 사도요한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벌벌 떠는 겁니다.
아무 딴소리가 들리지 않고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자기 마음속에 깊이 깊이 새겨들어오는 것이에요.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게.. 바로 이렇게 듣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음성을 어떻게 듣습니까?
‘나를 따라오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곧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어라!’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듣습니까?
지금 사업이 위급합니다. 그러면 사업자체가 청천벽력처럼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사업에 관한 얘기 외에는... 아무것도 내 귀에 안 들립니다.
자녀 문제가 세게 쾅하고 때리면
내 마음에 자녀문제라고 하는 것이 들어오고 나면
그 다음에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린다는 겁니다. 전혀 들어오질 않는 거예요.
▲2. 진짜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너무 두려워서.. 순종 안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번개와 천둥을 통해 말씀하시는 장면이, 성경 곳곳에 종종 나옵니다.
몇 곳만 살펴보면..
①변화산에서 예를 들면 구름이 몰려와서 제자들을 덮고 구름 사이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얘기합니다.
그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더니 마17:4
천국에서 사랑스럽고 감미로운 음성이 들렸다면, 심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했다는 것은,
(마17장에, ‘천둥 번개’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마치 그 소리가 천둥과 뇌성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실제로 들으면.. 매우 두렵다는 것입니다.
②또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니까
내가 영광스럽게 하고, 앞으로도 영화롭게 하리라 하는 음성을 듣는데
옆에 사람들은 천둥을 치는 소리로 듣습니다. 요12:29
③광야에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천둥 번개가 동반되었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빽빽한 구름이 산 위를 덮은 가운데 우렁찬 나팔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러자 진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벌벌 떨었습니다. 출19:16
이어서 출애굽기 20장에, 하나님은 십계명을 백성들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실 때, 그 직전에 천둥과 번개가 쳤다는 것입니다.
신5:24절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이라고 말합니다.
그 음성을 들은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신5:25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그러니까 그 음성이 들릴 때는
아무 다른 생각을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이에요.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듣든지, 기도 중에 듣든지..
두려워서 꼼짝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음성에 불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만 들은.. 베드로 사도
사도행전 초기에, 예수님 전한다고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다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때렸습니다.
때리고 그 산헤드린 공회에서 ‘이제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옳은지
너희들의 음성을 듣는 게 옳은지... 너희가 분별하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행4:19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뇌성과 벽력이 떨어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하늘로부터 계속 들려오는데..
한쪽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의원들이 채찍을 들고 ‘예수 전하지 마라.’ 고함치는데,
그 세상의 소리, ‘예수 전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득하게 들려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금 채찍질로 때리면서 겁을 줍니다.
사도들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고함치고 있는데,
그들의 음성은 전혀 사도들의 마음에 와 닿지를 않고.. 들리지를 않아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는, 우리가 이렇게 된다는 것이지요.
▲적용 : 돈 문제가 뻥 터졌습니다. 돈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음성보다 더 크게 들려요?
아니면 작고 아득하게 들립니까?
이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난다’ 라는 말씀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을 때,
이 세상에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사실 귀담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오직 ‘주님 음성 외에는 안돼!’ 하게 됩니다.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이런 찬송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세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상황이 되어진다는 것.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신자’가 도달하는 경지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생활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 다른 모든 음성을 다 배제해 버릴 만큼
강력하게 들려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절대 불순종 할 수 없습니다.
▲3. 청천벽력 같은 음성을 들을 때.. 나는 보좌 앞에서 죽은 것처럼 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게 되면.. 내가 죽은 자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1:17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여야 하는데,
(어떤 의지적/윤리적 노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기독교는 ‘노력 종교/자력 종교’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기도/찬양/말씀/봉사를 통해) 하나님 임재 앞에 나아갈 때,
우리 자신이 그 분의 임재 앞에서 고꾸라지는 것입니다.
마치 죽은 자처럼.. 자신의 죽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찬양/말씀/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 자신이 그 분의 임재 앞에서 고꾸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국의 삶/‘구름위의 산책’을.. 또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청천벽력 같이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주님의 임재 앞에 거한다는 것이요,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같이 되매...
이렇게 죽은 자 같이 될 때..
비로소 천국이 내 눈 앞에 보이기/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확 당겨져 가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청천벽력과 같이 사무쳐 들리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다른 세상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 주소서.
주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릴 때, 우리가 순종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때, 주님의 보좌/임재 앞에 나아가
내가 죽은 것 같음을 체험하고,
그 상태에서 천국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더 읽으실 분 ...................................
▲일화 : 너무 긴장하니까!
제가 군대 있을 때, 카투사 생활을 했습니다.
부대 안에 아스팔트길이 쭉~ 있는데, 거기에 장교들이 지프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때에 장교들에게 경례를 하라는 교육을 엄청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난리가 났어요.
부사단장(아마 한국인) 별 하나짜리가 지프차를 타고 붕 가는데
카투사 신병이 지프차를 쳐다만 보고, 경례를 안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지프차가 유턴을 하더니, 그 신병에게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부사단장이 차고 있던 권총을 빼들고 휘두르면서
그 신병한테 ‘땅에 엎드려!’ 그랬다는 거예요.
신병이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아주 옛날이야기입니다마는) 그런 해프닝이 있고 나서부터
우리 부대에 신병이 새로 들어오면,
지프차 지나가면 경례붙이는 연습만 집중적으로 시키는 겁니다.
거기 카투사 부대 안에 아름다운 잔디밭 구경도 못하고,
백인여자들이 비키니입고 일광욕하는 것도 못보고,
이제는 지프차만 쳐다보고 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참이 되면, 길가면서 장난을 치다가도,
지프차만 오면, 언제 알았는지 딱 경례를 붙입니다.
그런데 신병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서, 빳빳하게 걸어 가는대도..
지프차를 잘 못 봐요.
그것이 올까봐 늘 신경 쓰면서 보고 가는대도.. 지프차를 못 보는 거예요.
이거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세상 일(사업/자녀/물질/건강 등)에 너무 긴장해서 살면
뻔히 눈에 보이는 것도.. 못 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각박해서, 너무 긴장하면서 사니까,
주님의 임재, 하나님의 음성, 뇌성과 번개가
자기 코앞에 뻔히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만 못 보고 만다는 것입니다. ▣ 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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