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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 모세 2152

LNCK 2009. 10. 27. 19:38

◈조조와 모세                               출17:1~4                         08.05.18.설교녹취



세상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마다, 그 갈증(소원)이 성취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이전에,

그 세상 갈증을 십자가에 못 박고, 대신에 그 갈증을 하나님에 대한 갈증으로 대체시켜야...



◑조조의 탁월한 리더십


▲조조에 관한 일화 ‘망매해갈’  望梅解渴

조조가 ‘장수’라는 곳을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행군하다가 길을 잃는다.

때는 7월 한여름이었고, 땡볕에 모든 군사들이 지쳐있었고,

더욱이 물이 부족하여, 심한 갈증에 허덕이고 있었다. 모두가 목말라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근처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물을 얻을 수 없었고,

실제로 그곳 지형에 익숙한 참모도.. 이 곳에는 물이 없다고 알려 주었다.


모든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목말라 죽게 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조조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궁리에 몰두하다가.. 반짝 묘책이 떠올랐다.

그래서 조조는 병사들을 다 모아놓고 이렇게 연설했다. 


‘저 언덕을 넘어가면 매화나무 숲이 나온다.

그 매림梅林에 도달하면, 7월에 노랗게 익어가는 매실(매화 열매)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두들 조금만 참고서, 저 언덕만 넘어가면 된다...’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매화열매는.. 아시다시피 매우 시다.

조조의 이 얘기를 듣자마자, 병사들이 너무 시어서sour

입에서 침이 막 고이기 시작했다.


갈증에 지친 병사들이, 입에서 침이 나오자, 그 침으로 갈증을 이기고,

행군을 계속하다가 .. 얼마 안 가서 물 있는 곳을 발견하고,

결국은 병사들이 다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지는 모르나) 어쨌든 참 기발한 일화로 전해져 내려온다.


군사들이 마실 물이 없어서 쓰러져 죽어가려고 할 때

과연 누가, 조조처럼, 이런 기발한 묘책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정말 현대에서도, 이런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각광받을 것이다.


또한 힘들고 지쳐 쓰러져가는 사람들에게

‘매실’과 같은 어떤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능력은

가히 조조답게,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모세의 무능한 리더십


▲그런데 르비딤에 이른 모세는 어땠는가?

지금 상당히 오래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출애굽 백성들은, 탈진 직전이었다.

얼마나 갈증이 심했는지,

홍해의 기적을 보고서 바다를 건넜고,

얼마 전에도 갈증에 시달리다가.. 12샘이 있는 엘림에 도착해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통해 그 갈증을 해소했던 경험이 있으면서도  출15:27


또 며칠 길을 지나 르비딤에 이르기까지 물을 발견하지 못하자 

출애굽 백성들은 ‘우리를 애굽에서 광야로 끌고 나와서 죽게 하느냐?’고 항의한다.

그리고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출17:1, 4


이때쯤이면 조조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또 묘책을 강구하기 위해, 장고長考에 들어갔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을 납득시킬 만한/설득할 말을 지어냈을 것이다.

백성들의 목마름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을 것이다.

지도자라면 응당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모세는 미련하고 둔하기 그지없다.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에.. 모세는 위기를 갖고서 하나님께 나아간다.

이런 군중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비상사태를 맞이하고도

모세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조조와 정반대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에 입각해서

‘곧 하나님이 물을 주실 것이다’라고 백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했었는데,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안 하고,

돌을 들어서 자기를 치려 하는 백성들 앞에서,

모세는 한 마디 말도 안 하고.. 곧장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출17:4


▲모세는, 헛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곧 하나님이 물을 주실 게야, 그러니 참으셔! 우리 다같이 참자!’

모세는 이렇게 푸른 희망을 심어주지 않았다.

대신에,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주께서 뭐라고 말씀하실 지에.. 집중했다.

그 음성을 듣기 원하고, 그 뜻을 알기를 원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기 전에는 .. 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겠다’ 말씀하시기 전에는 .. 모세는 백성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기의 헛된 개인적인 비전/바램을 남발하지 않았다.


   조조는 존재하지도 않는 매림梅林을 비전으로 제시해서 잘 써 먹었는데,

   모세를 조조와 비교하면.. 정말 답답한 지도자다.

   청사진(헛 공약)을 한 마디도 제시 안 한다.


▲목회자로서 ‘헛 공약’에 대해 유혹이 많을 수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사업이 잘 될 것입니다!’

‘좀 더 기도해 보세요. 애가 임신될 것입니다.’

‘주님을 계속 의지하세요. 금메달을 주실 것입니다.’

그 외에도 수두룩하게 ‘자기 소원성취’에 관한 어떤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


제가 과거에 목회할 때, 그런 유혹을 참 많이 받았다.

성도들은 그래도 ‘희망’을 듣고 싶어 한다. 무조건 ‘축복 기도’를 원한다.

저도 그렇게 듬뿍 축복기도를 해 주었으면, 비록 입에 발린 소리라도..

마음이 훨씬 더 편했을 것이다.


▲우리 개인 각자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지금은 돈이 쪼들려도 .. 내일이 되면 돈이 넉넉해지겠지!

막연한 그런 기대를 갖고서 .. 하루하루를 지탱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 건강이 좋지 않지만 .. 내일이 되면 건강해지겠지!

지금은 자녀가 속을 썩이지만 .. 내일이 되면 자녀가 효자가 되겠지!


마치 조조가 매림을 보여주며 진군을 계속한 것처럼

우리 각자도, 막연한 미래의 청사진을 꿈꾸며.. 오늘의 진군을 계속하고 있다.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 교인이 천 명이 될 날이 오겠지!’

‘언젠가 교회가 좋은 건물을 건축할 날이 오겠지!’

이렇게 자꾸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서.. 오늘을 근근이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갈증을 유발시키시는 이유


▲꼭 백성들을 목마르게 하실 필요가 뭐가 있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는데,

어차피 물을 주실 것이다. 결국에는 물을 주셨다. 목말라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모세를 돌로 칠 만큼, 백성들이 격앙될 만큼

‘하나님은, 백성들의 갈증을 유발시키셨냐...’는 것이다.


이왕 물 줄 것을.. 좀 목말라서 죽기 전에 일찍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미리 알아서.. 목마르기도 전에 주시면.. 안 되셨을까?

왜 백성들을 잔뜩 기를 채우신 후에야.. 비로소 물을 주시는가?


왜 백성들을 극한의 경지까지 몰아가시며,

그리고 꼭 ‘불평한다’고 책망하시는가?


▲이렇게 목마르게 하시는 데에.. 하나님의 의도가 물론 있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백성들이 한 가지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보셨다.


육체적이든지/정신적이든지/무엇이든지.. 갈증이 느껴질 때마다

그 갈증을 .. 하나님이라는 갈증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돈이 굉장히 갈급하면

그러면 그 돈에 대한 갈증을.. 하나님에 대한 갈증으로 대신 채우라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갈증이 있을 수 있고,

애인에 대한 갈증이 있을 수 있다.

그 때마다, 그 갈증을, 하나님에 대한 갈증으로 대치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은, 광야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원하셨던 것으로 본다.


이렇게 갈증을 바꾸는 것을 체질화 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증을 자꾸 유발시키시는 것이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거의 죽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갈증을 이겨내라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 내게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갈증은,

‘하나님이 없어서 내가 갈증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나안 복지로 들여보내시겠다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되면!

광야에서 그 훈련을 계속 시키시는 것이라고 본다.


◑자기부상열차의 예


여러분, 자기磁氣부상열차가 우리나라에서도 계발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시듯이 자석은, 같은 극(S극과 S극, N극과 N극)끼리는 서로 밀쳐낸다.

그래서 레일과 열차의 밑바닥에 같은 전극을 집어넣으면,

서로 밀쳐내는 힘 때문에, 열차가 공중에 약간 뜨게 된다.


그 상태에서는 조금만 밀어도, 열차는 스무드smooth하게 달리게 된다.

마치 바람이 지나가듯, 기차가 레일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스무드하게 달려야 된다고 본다.


여러분, 갈증은 힘이다.

내가 돈이 갖고 싶을 때,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는 추진력이, 내 속에서 생긴다.

갈증에는 힘/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돈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할 때,

‘돈이 미래에 생기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 보다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갈증의 힘으로 위로 붕 떠야 한다.

성도는 세상과 짝하여(밀착하여) 살 수 없다.


갈증의 방향을 (돈에서) 하나님 쪽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갈증의 대상을 (돈에서) 하나님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 갈증의 힘을 이용해서!


이렇게 갈증의 방향을 위쪽/하나님 쪽으로 바꿀 때

‘나’는 이 땅에서 자기부상열차처럼 붕 뜨게 된다.


여러분, 나의 미래에 대해 하나님도 갈증이 있으시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처럼

참 좋은 미래를 계획해 놓으시고

그 보시기에 좋은 하늘의 계획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이 더 갈급해 하신다.

(그런데 그 좋은 계획이, 종종 나의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에.. 크게 방해받는다.) 


▲우리가 세상을 버리지 못하면.. 세상 때문에 도리어 어려움을 겪는다.

여러분 제가 한 가지, 마치 예언처럼 말씀드린다.

만약에 여러분이 돈을 목말라하면

그러면 반드시 돈 때문에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신가? / 안 살아 계신가?’

이렇게 의심하거나, 시험이 들 때가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자녀에 목말라하고, 자녀에게 인생을 걸고 계시면

반드시 자녀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안 살아 계신가??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가 없어!’

이렇게 의심하거나, 시험이 들 때가 다가올 것이다.


이 세상 일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 자체를 갈급해 하면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다면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없어!’

하면서 시험 들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제가 책임지고 예언드린다.


왜 내가 갈급하는 데, 갈급함이 채워지기는커녕,

도리어 그 갈급 하는 대상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게 될까?


자기부상열차(우리)가 땅에 딱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부상열차가 약간 공중에 떠 있어야,

뒤에서 하나님이 약간만 밀어도 .. 막 달리는데,


우리가 땅(세상)에 완전히 붙어버려 있으니까..

하나님이 밀고 가실 수가 없다.

하나님이 완력으로 억지로 끌고 가시다가는

마찰력이 생겨서.. 연기가 나고, 불이 나게 된다.


여러분, 사울 왕을 생각해 보시라.

왕위(세상)를 주셨으면, 그것을 떼 내야 되는데, (붕 떠야 되는데)

왕위를 꼭 쥐어 버렸다. 거기에 자기 온 몸을 밀착시켜 버렸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아름다운 미래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밀고 나가시니까,

사울왕에게 마찰열이 일어나서, 그 인생 열차에 불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인생이 힘든 이유

돈이 갈증이 나면, 우리는 돈이 좋다고 하면서

내 배를 땅에 밀착시켜 버린다.

그렇게 땅에 밀착된 자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끌고 나가려 하니

영차 영차 아무리 힘을 내어도, 마치 리어카를 끄는 것처럼 힘들다.


마치 차력사가 이를 악 물고

땅에 밀착된 시동 꺼진 자동차/기차를 당기듯이

우리가 다들 그렇게 차력사처럼 살아간다.


자녀의 미래에 목말라 하며,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자녀를 끌고 가려다 보니

마치 안 끌려오는 기차를.. 억지로 내 힘으로 끌고 가는 것과 같은 힘이 든다.


그래서 모두가 인상만 쓰고 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인상만 쓰고 다니는데도.. 일이 하나도 안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에서 떨어져야/공중에 떠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녀 문제를 놓고 볼 때

자기부상열차처럼, 세상에 있되, 세상에서 약간 공중으로 떠야 한다.


떠 있으면, 자녀의 미래에 대해 목말라 죽어가는 분이 계신데..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내가 쭉 떠 있고, 자녀가 떠 있으면

마치 자기부상열차를 움직이시듯, 하나님은 자녀를 쉽게 움직여 나가신다.

그래서 마치 KTX처럼 빠르고 멋지게 달리게 하실 것이다.


세상사람 모두는 조조식의 진군과 갈증해소법으로 전진해 갈 때

신자들은, 땅에서 발을 약간 떼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세상에서 죽음으로 초대하신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갈2:20

그래서 세상에 살지만, 불신자들처럼 너무 세상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매일 십자가에서 자기 죽음을!

그래서 십자가를 매일 붙들고,

거기서 자기 죽음을 매일 선언하고 확인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욕심에서 죽었으니까.. 세상에서 약간 붕 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나의 관심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향하고, 위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도 앞으로 가야할 것이 아닌가?

위에만 쳐다보고, 위만 향할 때,

앞으로 가게 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가게 해 주신다.


그것은 마치 자기부상열차처럼 순식간에 나아간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전진하는 것은,. 마치 리어카 끄는 것과 같다.

세상에 너무 발붙이고 있으니까,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느린 것이다.



◑마치는 말


자 지금 백성들이 목이 말라하고 있다.

그러면 물과 연관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줘야 되는데

모세는 그게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돈이 있으면 좋겠다 할 때, 돈을 버리고 하나님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할 때, 애인을 보지 말고, 하나님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 세상의 갈급함이 크면 클수록

내가 그 갈급함 만큼/.. 하나님 쪽으로 갈급함을 대체해야 한다.

하나님을 갈급함으로 바꾸는.. 신앙적 훈련을 계속 쌓아야 한다.


   사람은 뭔가가 채워져야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은.. 세상에 대해 그렇게 갈급해 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해 그렇게 갈급하다는 것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공허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자기가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지 못하니까,

계속 허전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하나님으로 배가 고픈 것인줄 모르고,

세상의 정욕이 모자라서.. 그래서 자기가 갈급하고 배고픈 것으로 착각한다.


어쨌거나 빈 속에 .. 그 무엇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우리의 갈급함은 상당부분 해결된다.

우리 영혼과 욕망의 빈 속에.. 하나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 욕망이라 할지라도.. 그게 그렇게 갈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삶에 만족이 있으니까,

아니 그 만족은 최고의 만족이니까!


출애굽 백성을 이끌던 모세가 그렇게 살았다.

모세가 광야에서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옷도 갈급해, 음식도 갈급해, 물도 갈급해,

갈급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든 게 다 갈급했다.


그런데 모세는 방향을 위로/하나님께로만 정한다.

땅에서 뭘 갈급한 필요를 제공해 주기 위해, 무슨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

계속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자기부상열차처럼 공중에 떠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밀착되어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떠 있는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끌고 가신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에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어떤 것을 꼭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 욕구가 들 때마다, 그 관심과 방향을 위로 돌리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하나님이 부족해, 내게는 지금 하나님이 모자란거야!’

‘나는 지금 하나님을 더 (가까이) 모셔야 해’


이런 갈증의 전환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마치 자기부상열차 밀고 가시듯이, 스무드하게 이끌고 나가실 것이다.

(하나님은 결국에 물을 주셨다. 하나님은 결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신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은.. 세상과 떨어지게 되어 있다.

‘지금/오늘 내가 하나님과 만족하지 못하면.. 나는 끝이다.’

이런 각오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자기부상열차가 미끄러져나가듯이

하나님이 우리 삶을 그렇게 스무드하게 인도해 나가실 것이다.


과거에, 성공학 강사와 교회 목회자가 구분이 안 되던 시절이, 한 때 있었다.

목회자들이 무조건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될 것이다. 여러분 사업과 자녀가 이렇게 될 것이다...’ 등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그런 사탕발림의 소원성취보다

‘바로 지금, 위를 쳐다보라,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이게 근본적인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이다.


내가 세상에 대한 갈증, 성공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마다

그 갈증을.. 비전(헛공약)을 제시해서 채워주는 식으로

또는 저 산 너머에 매화밭이 있다는 식으로 하지 않고

성경은, 하나님으로 채워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오히려 그 세상 욕망을 다 십자가에 죽이라고 하신다.


    이런 주제가 더욱 많이 논의되면서.. 우리 모두가 참된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한 걸음씩 더 가깝게 나아가게 되시기 바란다.                                                        ▣ 리더쉽,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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