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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음의 경지에 오른 야곱 2166

LNCK 2009. 11. 4. 22:26

◈득음의 경지에 오른 야곱                      창47:1-12             07.03.05.인터넷설교스크랩


 

▲득음得音의 경지란?

창을 하는 분들은 득음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폭포 근처나 폭포 밑에서 소리를 수련한다고 합니다.


폭포 근처나 밑에 서 있으면

그 폭포의 물 떨어지는 소리가, 쏴~ 하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겠습니까?


근데 득음의 경지는 어떤 것이냐?

창하는 사람의 소리가 더 크게 나와서, 폭포소리를 제압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득음이란, 폭포소리가 그냥 고압적으로 귓전을 굉굉 거리고 울리는 상황에서도

자기가 내는 소리를 자기가 분명히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상태..,

그게 득음의 경지라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어떠한 현란하고 높은 소리들이 들려올지라도

내 소리를 분명히 구별해서 또렷하게 들을 수 있고, 분별해 낼 수 있는

그러한 경지가.. 득음의 경지고.. 이럴 때 자기의 소리를 드디어 찾아낸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선생으로부터 배운,

아니면 자기가 들으면서 좋아했던 어떤 선배의 창을 흉내 내고 모방하다가,

이제 드디어 폭포와 같은 엄청난 소리가운데서도

자기의 소리를 자기가 분별해서 들을 수 있을 그런 경지에 도달하게 될 때에..,


다시 말하면 소리를 내는 목이 열릴 뿐만 아니라,

자기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열리는 상태.

이럴 때 창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소리를 찾게 된다得音’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왕 앞에 서있는 노년의 야곱의 모습을 볼 때,

이러한 득음의 경지에 오른,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은 야곱을 볼 수가 있는데요...

2가지 면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1. 내가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 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아브라함 175세, 이삭은180세에 비하면, 얼마 못되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47:8~10


여러분, ‘험악한 세월’, 왜 야곱은 이런 말을 했을까요?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가 모두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의 심리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런 심리가 있는데요.

즉, 지금 현재가 너무나 좋지 않습니까? 지금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러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 고생에 대한 기억이.. 눈 녹듯이 다 사라져버립니다.

과거의 모든 잘못까지도 미화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강압으로 억지로 시집간 여인이

결혼해서 지금은 잘 살고 있으면,

과거에 억지로 결혼한 일, 처음에 신혼에 고생한 일..

이런 과거의 일들이.. 모두 다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과거에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더라도

지금 결혼생활이 불행하고, 지금 고생하고 있으면,

과거에 좋아서 결혼한 일, 처음에 신혼에 행복했던 일들도

그 지나간 과거 일들이.. 지금은.. 모두 괴로운 기억이 됩니다.


과거에 고생을 하고 있을 때는 너무나 큰 원망과 불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좋으면.. 모든 과거가 다 미화되고

모든 과거가 다 정당화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의 인지상정의 심리입니다.


▲현재 무척 행복한 야곱

지금 현재 야곱은 무척 행복합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이 살아있고,

더군다나 애굽에서 보란 듯이 총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 야곱처럼 부러운 아버지가 없습니다.


지금 자기 가족은 애굽 왕 바로의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고

고센 땅에서 기름진 땅을 소유하면서

이제 가문이 번성하게 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얻게 됩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130년 동안 있었던 험난한 일들,

우리가 기억하는 것 만해도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그 많은 일들이 다 미화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그렇게 130년 동안 고생을 했는데,

참 이런 영화가 있으려고 그런 길을 걸었구나.

그러므로 130년의 암울한 세월은

오늘이 있기 위해서 준비되어진, 또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그런 과정이었다.’

이렇게 웃으면서 과거를 이해하고 미화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과거를 결코 미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바로 왕 앞에서 ‘내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라고 말하는 야곱,

그 말 속에는, 그 말의 뉘앙스는

그런 ‘미화’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확신이 듭니다.


여러분, 사람이 노인이 될수록 자식자랑, 가문자랑, 옛날에 뭐가 어쨌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노인들은 그 재미로 삽니다.

자기 삶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얼마든지 그런 자랑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야곱이 ‘득음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요?

자기 과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생만 직싸게 하고 살았습니다’ 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일평생, 정말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130년 세월을 야곱은 복을 쫓아 다녔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되려고 일평생 애썼습니다.


     그래서 속였습니다. 그런데 속인 만큼 자기도 속았습니다.

삼촌 라반에게 속았고, 자기 아들들에게 속았습니다.


자기가 속였을 때는 금방금방 탄로가 났는데

자기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속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죽음)


결혼할 때도 속아서,

라헬을 얻기 위해 7년 더, 도합 14년이나 노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형에게도 죽임을 당할 뻔 했고, (얍복강)

삼촌 라반에게도 죽임을 당할 뻔 했습니다.  창31:29


그리고 딸 다말이 강간을 당하게 되면서

온 집안과 자기가 살고 있던 동네 세겜에 피바람이 몰아쳤고,

헷 족속의 후환이 두려워서.. 떨며 이사 갔던 일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만 해도 사건들이 상당한데, 실제로는 오죽 더 많았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기근을 만나게 됩니다.

곡식을 구해야 하는데, 이제는 베냐민까지 내 놓아야 할 판국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노후까지, 정말 야곱의 일생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쫓아다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쫓아다닌 사람이었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계속 말씀하셨지

아브라함이 복을 쫓아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과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살았습니다.

무슨 야망을 가지고, 남과 경쟁적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곱 자신은, 복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내 과거 인생은 험악한 세월이었다.'


▲자신의 참 모습을 찾은 야곱

지금은 총리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어쩌면

'험악한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근면과 나의 성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의 이 영화를 주셨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쫓아가는 대신에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복을 쫓아갔던 그 세월들이

헛된 생이었고, 험악한 세월이었고,

남을 속인 만큼 내가 속임을 당한 그런 비참한 세월이었다는 것을 그대로 고백하고

자신의 과거를 전혀 지금의 영광을 통해 미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소리꾼이 자기 소리를 찾은 것처럼,

노년의 야곱은, 이제 자기 모습을 진정하게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적인 복을 많이 받은.. 자기 모습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식자랑, 재산자랑, 경력자랑을 하기 좋아합니다.

신앙인들은 ‘유복한 사람, 복 받은 사람’으로 자기를 소개하고 싶어 합니다.

그 ‘세상에서 유복함’이 또한 나의 ‘신앙의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유복함’으로 따지자면, 얼마든지 내세울 게 있습니다.

- 130세의 ‘장수’도 자랑할 수 있었고,

- 지팡이 하나 갖고 이민 갔다가 20년 만에 거부가 되어 돌아온 ‘신화’ 

- 무엇보다도 총리를 키워낸 아버지! 가문의 영광!


그러나 이런 자기 자랑/공적을 일절 늘어놓지 않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에 비해 자기의 생은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노년의 야곱이 지금 보통 신앙인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어서

마치 ‘득음(득도)의 경지’에 이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늙을수록, 야곱처럼 늙어야 된다는 말이죠!

 

주님이 십자가에 벌거벗고 달리신 것처럼

우리가 벌거벗은 몸으로 나의 십자가에 달릴 때,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드러낼 때 

그 사람에게.. 하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2. 바로를 축복한 야곱


곧바로 야곱은, 바로 왕 앞에서 바로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대단한 사건이에요.

바로를 축복하는 게 '대왕 폐하 만세' '황제 페하 만세' 라는 식의

환호성의 기원이 아닙니다.


지금 130년 동안 자기가 일평생 쫓아온 그 복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바로 왕처럼 세상 복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야곱이 그 사람에게 축복을 빌어준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복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백만 원 갖고 있는 사람이, 수 백억 갖고 있는 사람 앞에서 주름잡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선호하고 있는 그런 모든 복들을 다 갖고 있는 사람에게

야곱이 복을 빌어 줄 입장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그 사람이 나한테 복을 빌어주거나, 복을 나눠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야곱의 득음의 경지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바로 왕궁의 물질적인 그런 대단함, 화려함이 제로로 보이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자기 가정과 가문의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 앞에서 진정 자기 모습을 만약에 찾지 못했다면,

그 하나님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바로 왕을.. 당당히 축복 못 해 줍니다.


이 대제국의 왕인 바로가,

모든 물질과 모든 복을 가지고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야곱이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바로에게 (영적으로) 축복해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당신들이 모든 물질적 풍요를/ 모든 권세를/ 모든 영화를 다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당신들이 나처럼 되기를 원한다’ 라고 말하는 바울의 이 경지가

바로 ‘득음의 경지’ 아니겠습니까?  행26:29



◑적용


▲과거를 너무 미화하지 맙시다.

주님 은혜로 뒤돌아보면, 과거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런데 주님을 빼고 나면, 나의 과거는

내가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해도..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혹시 나도, 야곱처럼, 하나님 보다는, 세상 복을 추구해왔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기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고진감래, 야곱은 근면한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그래서 ‘오늘의 내 모습은, 과거에 나의 근면의 결과다!’

이렇게 스스로 뿌듯하게 자랑하지 않으십니까?

‘나의 인내의 결과다!’.. 야곱은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득음의 경지에 오릅시다.

복을 쫓아다녔던 130년 전체를 미화하지 않고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대별해 냅니다.

 

오늘도 세상 소리는 ‘당신은 성공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자기 내면의 소리는 ‘험악한 세월이었다’ 라는 소리를 구별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읍시다.

세상의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서, 성경의 소리를 구분해 낼 수 있게 됩시다.

즉, 득음의 경지에 오릅시다.


여러분 지금의 상황이 좋습니까? 아무리 좋아도 야곱보다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적당히 믿고 살았던 모든 과거가, 잘못된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내 성공이 너무너무 좋다고요?

하나님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모든 과거가, 미화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깨어지고 부서져서 낮아진 자리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을 축복하는 야곱처럼,

이세상의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그에게 하나님이 없음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그에게 하나님을 찾는 복을 기도해 주는

그런 영적 득음의 경지에 오릅시다.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