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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노니 2167

LNCK 2009. 11. 5. 12:51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노니         계2:1~7        09.10.11.설교녹취/편집


 

※본문의 가장 핵심구절인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만,

그 점은 각자가 보충하시면 되겠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은, 독특하게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있다.                      

샌드위치란 양쪽 가에 빵이 있고, 그 안에 고기 패드가 있다.

그러니까 1~3절, 6~7절의 칭찬이 ‘빵’에 해당하고

중간에 4~5절의 책망이 ‘고기’에 해당하는.. 편지의 본론/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즉 에베소 교회에 편지해서, 예수님이 진짜 하고 싶은 말씀은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4절’는 책망이며

‘빨리 처음 행위로 돌이켜라/5절’는 권고의 말씀이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주님이 책망의 말씀을 하실 때, 책망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먼저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하신다. 2~3절.

그리고 책망을 하신 후에도, 잘 한 점을 또 한 가지 말씀하셨다. 6절.

즉 책망을 하기 전후에 샌드위치처럼 칭찬으로 덮어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 성경 본문에서 따 왔는지 모르겠지만,

인관관계/처세술을 가르치는 전문가의 조언에 의하면,

자녀에게/부하직원에게 꼭 책망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반드시 ‘샌드위치 요법으로 책망하라’고 가르친다.


그냥 책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면, 오히려 덫 난다는 것이다.

자녀나 부하직원의 사기가 떨어져서, 공부/업무 능률이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망의 전과 후에, 반드시 칭찬을 하라고 조언한다. 이른바 '샌드위치 요법'이다.


7교회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만 빼고, 항상 주님은 격려로 편지를 시작하신다.

정말 은혜이다.

정말 책망을 들어야 할 교회들이 많았지만, 예수님은 격려부터 하신다. 여전히 눈에 사랑스러운 것이다.


※여러분,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정확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정확하다고, 그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를 책임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구약 성소에 보면, 금촛대가 나오는데, 그 모양이 7개의 촛대로 되어 있다.

계시록, 주님은, 그 촛대 사이로 다니신다고 하신다. 2:1

주님은 책망하시지만, 그 근본바탕은 격려하시고, 사랑으로 책망하신다는 것이다.

‘금촛대’라는 것은.. 교회를 정금처럼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금촛대 사이를 다니심’은.. 그만큼 교회에 대해 관심 갖고 돌보신다는 뜻이다.


여러분, 그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정확하더라도, 그것이 마귀에게 쓰임 받을 수 있다.

비판을 할 때.. 성령의 뜨거운 감동과 강권하심이 없으면.. 옳은 말이라도 절제하시라.

옳은 것도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고전10:23


주님은, 책망하시면서도.. 동시에 그 교회를 격려하시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책망은.. 꼭 원수를 대적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격려의 말씀


▲1. 내가 네 행위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2:2)   에베소 교회는 행위가 자랑인 교회였다.

행위를 너무 잘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 사랑/처음 행위를 놓친 교회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많은 수고와 행위가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처음 행위를 놓치고 말았다.


많은 행위보다는, 사랑의 행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활동이 많았지만, 첫사랑을 버렸던 교회였다.


여러분, 행19장의 에베소 교회와, 계시록2장의 에베소 교회는

그 중간에 40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4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교회에 행위는 더 많아졌는데,

‘처음 사랑(:4)/처음 행위(:5)’는 더욱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랑과 행위는 같은 말, 사랑의 행위

 

우리도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그렇게 되기 쉽다.

외적인 여러 교회 활동들은 빈번하지만, 내적인 그 속에 '사랑의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2.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2:6

‘니골라 당’은 상당히 해석하기 어렵다.


①‘니카오’(나이키/승리Nike와 같은 어근)에서 온 말로, 승리/성공을 의미하며

세상에서 승리하고, 성공하고, 많은 것을 가질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파.


②니골라는 사도행전의 7집사 중 한 명이었다.

온 무리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7명을 택했는데

즉, 7집사 중의 1명인 니골라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니골라는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행6:5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교에 가입했다.

이 사람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지만,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었다. .. 이렇게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후에 에베소 교회에 ‘니골라 당’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예수를 믿으면서도, 유대교도 믿는 사람이.. 당이 될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다른 교회는 발람의 교훈도 허용하고, 자칭 선지자 이세벨도 허용했지만

에베소 교회는 ‘다 막았다.’

거기에다 ‘니골라 당’도 막았다. ‘자칭 사도’도 허용하지 않았다.  2:6. 2:2

굉장히 ‘비타협적인 교회’였다. ‘진리 수호’는 잘 했다.


그들은 잘못된 것을 철저히 막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맞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비판하는 사람이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분, 비판을 잘 하는 사람치고, 온전한 사람은.. (있겠지만) 매우 드물다.

자기 속에 생명이 있는 사람은, 생명을 전하기에 바쁘기 때문에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과 정열을 소비하지 않는다.

 

 

◑책망의 말씀


▲1. 책망은.. (에베소 교회가) 열심히 하다보니까 생긴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크게 책망들을 일도 없는데,

앞에 나서서 뭔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비례해서 책망 듣는 일도 그만큼 많다.

에베소 교회의 책망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옳다.


뒤집어 말하면, 욕 많이 먹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

①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말의 실수가 많아서, 주변사람들에게 늘 책망 받는다.

그 사람은 일단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예 말을 가급적 안 하니까, 말실수 할 일도 없다.

그러니까 자기가 말/입 때문에 책망을 받지만, 그 부분만 잘 보완하면,

그 사람은 말/입으로 큰 일 해낼 사람이다.

그 입에 성령이 닿으면.. 전도를 남들보다 몇 배나 더 잘 한다. 말을 잘 하니까!


②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도 있다. 자기가 봐도, 자기는 돈 욕심이 유난히 많다.

그런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충성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③몸이 약해서 늘 걱정하며 사는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가 닿으면

몸이 낫는 수도 있지만, 비록 몸이 낫지 않더라도

약한 몸을 가지고, 더 절제되고, 교만치 않고, 더 집중되게 주님을 잘 섬긴다.


④나이가 드는 것도.. 단점이자 동시에 장점으로 살릴 수도 있다.

젊은 사람은 원기왕성 하지만, 그래서 집중력이 부족하다. 상대적으로 산만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매우 분주하고, 집중력이 없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은, 시간을 아낄 줄 안다. 힘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쓴다.

그래서 주님의 사역에, 자기 시간과 자신을 온전히 집중적으로 헌신한다.

 

그래서 잘 될 때, 잘 되는 사람에게도.. 그 속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실패했을 때, 실패한 사람에게도.. 그 속에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더라는 것이다.

책망을 받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책망 받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은 <주마가편>에 가깝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

영 못 하고 실패해서.. 책망이 아니라, 잘 하는 사람에게.. 더 잘 하라는 것이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교회봉사를 무지하게 많이 했다는 것이다.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         영분별의 은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인내도 있었고, 게으르지 않는 열심도 있었다. 좋은 장점들이 이렇게 수두룩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무려 3년이나 머물렀다. 가장 오래 머물렀다.

바울은 특별히 두란노 서원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쳤다.  행19:9


바울이 둘렀던 앞치마만 가져다 덮어도.. 병자들이 막 낫기도 했고,  행19:12

마술 책을 모두 모아서 불태우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행19:19

그러나 에베소 교회의 부흥은.. 표적이 아닌, ‘말씀의 부흥’이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19:20


▲3. 그런데 40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잃어버리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주후 53년 경이고,

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주후 95년 경 상황이니.. 약 4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의 중심 교회로 우뚝 섰다.

계시록에 나오는 나머지 6교회..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등은

모두 에베소 교회에서 세운 지교회들로 본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의 1~3차 전도여행에 세운 교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에베소 교회에 정말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해서 이겨낸 일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일 등등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그렇게 40년간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여러분, 돌탕/집탕 이란 말을 혹시 들어보셨는가?

돌탕은.. 돌아온 탕자를 가리키고

집탕은.. 집에 있는 탕자(형)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 에베소교회에 관한 말씀은, 어떻게 보면 ‘집탕’에 관한 말씀이다.

40년의 교회 역사를 지내오면서, 모태교인들이 생겨나면서,

교회가 서서히 ‘처음 사랑’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모태교인들이 특별히 그러기 쉽기 때문이다.


▲4. 어디서 떨어졌는지 기억하라    1:5     

어느 시점에서 떨어졌는지.. 이런 말도 되지만

어느 위치에서 떨어졌는지.. 이런 뜻도 된다.


‘집탕’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집에 있는 탕자

여전히 교회 출석하고, 성가대 봉사도 하고, 여전히 헌금도 한다.

외적 모습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면에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사랑’을 잃어버렸다.


※은혜 위에 은혜더라   요1:16

은혜는 한 번 받은, 그 위에 또 임한다.

은혜를 한 번 받아본 사람은, 그 위에 은혜가 또 임한다.

(영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봉사를 하다가 은혜를 받았으면, 그 봉사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은혜 위에 또 은혜가 임한다. 이것이 은혜의 원리다.


②은혜는 점점 받을수록 더 커진다..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은혜 위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왜 도리어 첫 사랑을 잃어버렸을까?

아마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거짓 사도들과 싸우다 보니.. 은혜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위 격려의 말씀 중 2번에서, 진리 수호를 위해 굉장히 배타적임을 지적했다. 진리 위해 많이 싸웠다.)


오늘날도 비슷하게 교회역사가 오래된 교회에 가보면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거의 다 사라져 버리고,

‘전투력’만 아직 왕성하게 남아 있는 그런 교회들이 많다.


그들은 ‘처음 사랑’에서 떨어졌다/멀어졌다. 1:5


(여기에 관해서는  -사랑에 잠겨 살다-  를 클릭해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1:5

창26:17~18절에,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기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삭이 그랄(광야)지방으로 갔는데, 물이 필요했다.


광야/반半사막 지역에서 물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광야에서 우물을 파기란, 정말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다.


그런 와중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기억해 낸다.

그런데 이정표도 없는 광야에서, 그 위치를 찾기란 쉽지 않았겠지만,

아마도 새 우물을 파는 것보다는, 더 나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삭은, 아버지가 판 우물자리를 찾아서, 거기에서 다시 우물을 팠더니

아버지 때 나왔던 물이, 자기 때에 다시 솟아나온 것이다.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창26:18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19


에베소 교회 상황에 적용하면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이다.


이삭이 메마른 광야에서 살 길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로 돌아가서, 그 우물을 다시 파는 것이었다. 

                                                                                                             

어쨌든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 시절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당신의 처음 사랑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그 상태로 되돌아갑시다.                                              ▣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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