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종교인 막10:17-31 09.10.11.설교스크랩, 편집
▲어떤 목사님이 강남에서 목회를 하는 데
어느 날, 연세가 80이 다 되신 할아버지가 교회에 왔더랍니다.
그래서 "어르신, 어떻게 교회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자
이 할아버지 첫 마디가 "목사님, 내 자식새끼가 나를 고소를 했습니다."
이러더라는 겁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라서 마주 앉아 자초지종을 들어 보았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돈 많이 벌어 성공하는 걸 목표로 열심히 일했던 사람인데
강남에서 큰돈을 벌어, 굉장히 큰 부자가 됐습니다.
돈 벌고 나면 그 다음 목표가 자식을 성공시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들이 서울대학에 들어간 겁니다.
어마어마한 재산에 장남이 서울대학에 들어갔으니
이 할아버지 가슴에 훈장이 두 개였습니다.
또 아들이 졸업 후에 미국에 유학 가서,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는데,
며느리까지 박사학위를 한 며느리를 봤습니다.
아이비리그에서 박사학위한 아들과 며느리를 둔 이 할아버지는,
‘우리 아들과 며느리가 어느 학교 나왔는지.. 누가 좀 안 물어봐 주나?’
하며 살았답니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자기가 어떻게 돈을 벌어 어떻게 성공했으며,
어떻게 강남에 그렇게 큰 집을 가지고 살며,
어떻게 아이가 서울대학을 들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재미로 살았답니다.
그런데 나이가 80세가 다 되어 몸이 쇠약해지고
재산상속 문제 때문에, 자식들하고 의견 분쟁이 좀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미국 변호사 자격까지 가지고 있는 법학박사랍니다.
그런데 재산분쟁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키웠고, 자랑스러워했던 그 아들이,
아버지를 고소한 겁니다.
이 아버지가 땅이 꺼져 버린 것 같은 충격에.. 완전히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병원에 몸져누워 있는데.. 친구 한 사람이 와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네가 살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다’
그래가지고 교회에 인도해서 모시고 온 겁니다.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본문 설명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질문을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뛰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이 떠나시기 전에 만나려고 급히 달려온 모양입니다.
이 사람은 재산이 많은, 지갑이 큰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말합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 청년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마귀가 기독교인을 쓰러뜨리려고 공격을 했습니다.
기독교인의 가슴을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의의 흉배, 정의의 가슴막이’를 하고 있어서 해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머리를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어서
역시 해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기독교인의 아킬레스건(발목)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발에는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있어서 역시 해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돌아서 가려고 하는데,
악마가 그의 지갑을 향해 화살을 쏘니까, 그걸 맞고는 그냥 죽더랍니다.
▲사실은 ‘돈money 교’를 믿고 있었던 청년
이 사실은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그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재산이 많았고, 그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재산이 있어야.. 자기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재산이 없으면.. 자기가 더 이상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재산이 자기를 말해주고, 재산이 자기를 지켜주고,
재산이 자기를 자기 되게 한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코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영생 앞에서도 말입니다.
오늘날 물질주의의 극치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런 물질우상 가치관을 가진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자기 재산이 자기를 말해 준다는 사람’ 말입니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부자가 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부자 청년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결국 그는 재산을 믿어 온 것이고, 재산을 의지해 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이 ‘자기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왔다’는 것은 뭡니까?
이 청년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계명을 지켜왔던 것일까요?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계명을 지키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계명은 자기만족의 수단이었습니다.
‘내가 계명을 이만큼 지켰다. 나는 참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야.
나는 착한 사람이고, 선한 일을 했어.’ 그가 계명을 지킨 것은 자기 의였습니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요즘도 교회 안에 이런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계명도 겉으로는 제법 잘 지킵니다. 교회 생활도 겉으로는 잘 합니다.
헌금도 꼬박꼬박 하고, 기도도 하고, 예배도 잘 참석합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하고는 별 상관없고,
자기만족을 위해서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요.
그게 내가 사랑하는, 나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교회 다니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좋은 종교인이기는 해도, 하나님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도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는 것은, 너무 극단적 아닙니까?
그러나 이건 재산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를 믿고, 내가 무엇을 의지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빼앗아 가셔도.. 그 상황을 수용합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시는 거겠지요.’ 하며
현실을 수긍합니다.
하지만 종교인은 그런 상황이 오면,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게 아니니, 그럴 수 없지요.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데,
하나님 때문에 나를 지탱하고 내가 의지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겁니다.
오늘날 모든 ‘있는 집안’에, 형제간에 ‘상속 문제’를 놓고서
분쟁과 소송이 없는 집을 찾아보기 드물다고 합니다.
돈도 잃고, 형제도 잃고, 심하면 자기 믿음까지도 잃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믿음까지도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자청년의 얘기가, 얼마든지 내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인과 종교인의 차이
꼭 재산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생명, 내 명예, 내 자존심, 지금까지 내가 쌓아올린 업적,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나이 75세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기반을 닦고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나이 백 살에 낳은, 자기 생명보다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가 믿고 의지한 것은 삶의 터전도, 재산도, 아들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종교인의 차이입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고서는,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습니다.
그 청년이 떠나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하나님을 고소한 사람>이라는 호주 영화가 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어떤 변호사가, 자기 전 재산을 다 팔아서 요트를 한 척 샀습니다.
그런데 이 배가 벼락에 맞아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변호사는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회사는 거절을 합니다.
배가 벼락에 맞아서 침몰한 건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고,
천재지변은 불가항력이기 때문에,
그런 사고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법률용어로 ‘불가항력’은 영어로 Act of God,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합니다.
이 변호사는, 그렇다면 하나님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로 합니다.
자기 배를 침몰시킨 분이 하나님이라니까,
하나님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재판정에 오시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을 걸어서 재판을 합니다.
가톨릭 주교, 교회 목사, 유대인 랍비 등이 소송 대리인으로 재판에 나오고,
그렇게 재판이 진행되던 중에,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면서,
아주 오래 전에 교회를 다녔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는지,
이 변호사는 지나가던 길에 있는 작은 교회에 들어가,
아주 오랜만에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소송을 취하합니다.
주변에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나는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만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재판을 포기하겠습니다.”
제가 본 영화가 아니라서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무튼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기서 이 변호사의 말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도움을 줍니다.
자기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요트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고,
하나님을 만난 그 감격이 더 크기 때문에,
그 재산을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의 경우는,
그의 재산과 하나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냐고 예수님이 물으실 때,
그는 재산 쪽을 택한 겁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당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실 때,
청년의 대답은 “아니요”였습니다.
▲신앙인이십니까, 종교인이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가진 모든 것, 네가 좋아하는 모든 것, 너를 만족시키는 모든 것과.. 하나님,
어느 쪽이 더 크냐?’
‘너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모습,
(그것이 마음에 안 들면) 네가 바라는 네 모습과..
즉, 네 자신과 .. 하나님 가운데
너는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나에게 어느 쪽이 더 큽니까?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냥 종교인으로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도 느껴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종교인으로서, 적당히 좋은 사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 청년은,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과 맞닥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무릎꿇어본 적도 없고,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 앞에 감격해서 통곡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자기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하나님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재산이 많으냐/적으냐도 아니고,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도 아니고,
하나님을 만났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냥 종교 하나쯤은 가지는 게 좋으니까, 또 종교를 가질 바에야 잘 믿어야지,
그래서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다 하는 착실한 종교인으로 남아있는 한,
이 청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2부 예배시간에 장로님 한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좋은 대학 졸업하고, 어려운 시험 패스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다가,
40대 초반에 승승장구하다가 ‘밀려서’ 쓰러졌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안 와서, 결국은 병원에 입원하고, 자살시도까지 했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제일 잘 나가던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잘 나가는 분입니다만 40대 초반까지, 우리 사회에서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시험 패스해서 잘 나가던 분인데
오늘 그 얘기를 우리 성도들 앞에서 울면서 했습니다.
우리 장로님이 그때 그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기가 자살을 시도하고 난 다음에 부인이 24시간 감시를 했는데,
그 즈음에 부인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더니 ‘죽으려면 죽으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자기 소원 한 가지만 들어 달라’고 해서
그게 뭐냐 그러니까 ‘교회 한번 가 달라’고 해서 못 가겠다고 버티다가
‘이제껏 고생만 시킨 아내가 이렇게 원하는데 교회 한번 못 가 줄게 뭐 있겠나?’ 하고
교회에 갔다가.. 지금은 장로가 된 겁니다. 참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다 비슷한 길을 걸으면서 살아왔기 때문 입니다.
세상에서 뭐 좀 얻었다는 사람도.. 결국에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고,
뭘 얻지 못한 사람은.. 열등감 까지 더해서 상처만 남아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제대로 된 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길을 제대로 따라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만이
영생과 참 생명의 길이란 것을,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의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의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결국에 남은 것은 상처가 아니라.. 참 만족과 참 평안, 참 기쁨이 있고, 삶에 후회가 없습니다.
그것을 줄여서 '영생(영원한 생명)'이라 그럽니다. ▣ 크리스천 삶(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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