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죽음 이후 어디에서 보내시겠습니까? 눅16:19~31 09.10.21.설교녹취
▲내세는 <오늘을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내세는 오늘 나의 현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A는 ‘내일 나에게 불길한 어떤 일이 닥칠 것이다.’ 라는 예감을 갖고 살아간다.
B는 ‘내일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도무지 모른다.’ 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C는 ‘내일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3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위 3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오늘’을 가장 활기차게 살 수 있을까?
C가 ‘오늘’을 가장 생동감 있고, 기쁨이 넘치게 살아갈 것이다.
<내일에 대한 내 관점이.. 오늘의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나의 내세에 대한 전망perspective은, 나의 내세에서의 삶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나의 오늘 삶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에게 큰 상처를 주고 살아간다.
만약 그가 내세를 믿는다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가 정말 내세를 믿는다면.. 이웃과 관계에서도, 보다 넉넉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우리가 현실에 매달려 너무 금전적으로 악착같이 살아가면서
인격적으로 아주 추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 중요한 이유를 파고들어가 보면.. 내세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는 내세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눅16장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살펴보면
▲1. 내세는 죽어서 즉각 가는 곳이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눅16:22
위 구절에 ‘즉각’이란 단어는 안 나오지만,
영어로 보면 and로 연결되어 있다.
that the beggar died, and was carried by the angels
이 말은, 나사로가 죽을 때, 천사들이 즉시and 그를 데리고, 천국으로 갔다는 말이다.
한국의 민간신앙에,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구만리장천을 떠돈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무당을 통해서, 죽은 아버지의/자식의 영혼을 불러내기도 한다는데..
그 무당이 정말 죽은 아버지/자식의 목소리와 99% 흡사하게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귀신의 역사이다.
사람은 죽으면, 즉시 하나님 앞으로 간다. 세상에 떠도는 귀신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 ‘사랑과 영혼 ghost’에서 보면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식으로 그리는 영화가 많지만,
사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왜냐하면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에 앉는다’고 했다.
이 말씀과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는 말을 연결해보면, 눅16:22
‘아브라함의 품’은 다름 아닌, 천국인 것이다.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갔다. 눅16:23
음부hades와 지옥hell은 약간 개념차이가 있겠지만,
예를 들면, 구치소와 교도소의 차이와 같다고 하겠다. 거기가 거기다.
음부나 구치소는.. 마지막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임시로 가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보통 음부-지옥으로, 낙원paradise-‘새 하늘과 새 땅’으로 더 자세히 구분한다.)
▲2. 내세는 의식이 살아있는 곳이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부자는 음부에서 영원히 잠을 잔 것이 아니었다.
부자는 거기서 ‘고통 중에’ 있었다.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부자는 불꽃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뜨겁고, 목마른지.. ‘물 한 방울’을 요청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세는 ‘무의식’의 세상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혹은 무덤에서 영원히 잠을 잔다는.. 소위 영혼수면설을 믿고 있다.
혹은 영혼이 나비가/새가 되어서 날아갔다고 하는 (무덤 주위에 마침 나비/ 새가 있었다.)
윤회 사상과 비슷한 자기 나름대로의 내세신앙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내세는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의/깨어있는’ 세상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지옥의 경우는.. 고통과 괴로움의 깨어 있음이요,
천국의 경우는.. 기쁨과 행복의 영원한 깨어 있음이다.
▲3. 내세 천국은 대조contrast의 장소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5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 것이, 그대로 저세상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데 있다.
이 세상의 부자가, 저세상에서도 부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저 세상의 나사로는,
이 세상의 거지 나사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대조법을 유독 많이 사용하신다.
현세와, 내세의 대조,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조,
천국 아브라함의 품과, 지옥 뜨거운 곳의 대조,
나사로가 받는 위로와, 부자가 받는 괴로움이 대조되어 있다.
부자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곳에 간 것은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은 없다.
거지 나사로 역시 선행을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은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은 없다.
이 본문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두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달랐다.
그런데 <저세상에서는 그것이 정확하게 역전>되어 있다.
이 철저한 대비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이 비유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한다.
예를 들면, 8복의 가르침,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가르침 등
예수님의 가르침은 대부분 '역설의 진리'인데, 신자들 마저 현실의 삶에서 그것을 외면한다.
그리고 세상 논리를 따른다. 그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니까!
그런데 세상에서는 그게 통했는데,
영생에서는, 천국에서는 예수님의 '역설의 진리'가 맞더라는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그런 대조를 보여준다.
세상 순리를 따라 성공한 부자와.. 역설의 진리로 성공한 나사로를!
(나사로는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어쨌든 역설의 진리로 살았다. 실제로 천국에서 역전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높이는 가치들이 있다.
돈 많은 것/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호의호식하는 것.. 이 세상에서는 이게 최고다.
그러나 저 천국에서는.. 그런 가치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보여주는 것이.. 이 세상의 가치와 천국의 가치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는 미련하게 보이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영생과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렇게 살고, 그게 안 보이는 사람은 세상 순리로 -부자처럼- 산다.)
▲4. 천국은 위로의 장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3~4
여러분, 이 땅에서 너무 많은 위로를 다 받으려고 애쓰지 마시라.
부자는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살아서 고난을 받았다.’ :25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다 받은 부자는.. 안타깝게도 지옥에 갔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살게 될 때, 고난이 반드시 따를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셨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위로를 받게 되겠지만,
참된 위로는.. 저 천국에서 영원히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천국을 바라는 내세신앙을 가진 성도는,
이 세상에서 위로를 다 받겠다고.. 절대로 날뛰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부자처럼 될 수 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성도는, 8복의 말씀처럼 사는 것이다.
◑적용
▲실상이 이렇다면, 자기 혼자 천국에 가겠다는 사람,
즉,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이 지옥에 가도록 뻔히 보고 있는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거나
아니면, 이런 실상을 정말 실상대로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부자도 실상을 체험하고 나서, 자기 형제들을 전도하려고 했다.
27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세상이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사람들을 그 고통스런 지옥에 보내시나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들이 구원받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선택’을 잘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모두 천국에 오시기를 소원하시지만,
자기들이 자기 욕심과 죄악에 빠져서, ‘자기가 지옥을 선택’하는 것이다.
절대로 하나님이 그가 지옥을 선택하도록 돕지 않으신다. 천국을 선택하도록 도우신다.
그럼 아예 지옥이 없거나, 지옥을 안 만드시면 될 터인데..
우리는 그것까지 따지려 들 자격은 없다.
그것은 창세 때부터 그냥 원래부터 있는 것이다.
지옥은 원래 사람을 위해 준비한 곳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타락한 천사(마귀)를 따르다 보니까,
그들이 거하는 곳에, 같이 따라가게 된 것이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25:41
▲누가 천국에, 누가 지옥에 가는가? ..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회개한 자는.. 천국으로 가고, 회개悔改가 없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
회개란..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다.
세상과 마귀를 따라서 가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는 것이다.
세상과 마귀의 말과 사상을 따라가던 사람이.. 말씀대로 살기로, 자기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기가 의인인줄 알고 살았지만, 이제는 자기가 죄인 됨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생을 살 동안, 더욱 더 진정한 회개를 하면서, 점점 더 믿음이 성숙된다.
이런 새로 태어남(중생)의 역사는 종종 하나님과 사람 편에서 합작으로 일어난다.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위에서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으면.. 눈이 안 뜨인다.
또한 위에서 아무리 은혜를 부어주셔도.. 자기가 가룟 유다처럼 끝까지 부인하면.. 할 수 없다.
어쨌든 사람은, 은혜 받을 만한 때에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은혜 받을 때는 주로 열려 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 더 읽으실 분 ..................................................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내세에 대한 계산
그는 ‘내세 천국이 있는 줄 알고 살다가, 만약에 진짜 없으면..
그것은 손해이긴 하지만, 그리 큰 손해는 아니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이 진짜 없는 줄 알고 살다가, 만약에 진짜 있으면
그 때는 도저히 만회할 수 없는 대단히 큰 손해이다.’ 라는 계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면서 시간 좀 빼앗기고, 헌금 드리느라 물질 좀 빼앗기더라도
그것은 큰 손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천국이 없는 줄로 생각하고 살다가, 진짜 천국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그는 평소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지만,
아직 교회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라도 교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겠다. ▣ 종말, 내세,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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