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일에’ 주님의 계획 이사야2:1~5 09.08.16.스크랩, 정리
▲‘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은, 사실은 자기 삶의 목표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우리사회는
‘부자로 잘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민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잘 사는 것이 지상 목표이고, 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사회가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돈이 나를 양반되게 한다’는 의식입니다.
물론 풍요하게 잘 사는 건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그게 삶의 ‘목표’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돈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것이 목표인 사회는.. 얼마나 천박하고 비참한 것일까요?
살아가는 이유가, 돈 많이 버는 것인 사회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돈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것은 ..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밥 먹고 살아라’와 같은 인간 본능은,
특별히 안 가르쳐줘도, 다 열심히 먹고 사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 많이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해도,
그것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많이 가지건 적게 가지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목표가 되어야지,
많이 가지는 것, 풍요해지는 것, 그 자체는 목표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뚜렷한) 자기 삶의 목표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잘 살고 싶은 본능에 충실했던 남유다 (본문 배경 : 맨 하단에 배치)
▲이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들이 가야 할 목표, 그들이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알려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 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사2:2
그 방향과 목표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그의 가르침을 배우며, 그 가르치신 길로 행하는 것이
많은 백성이 가야하는 목표요, 방향이라는 거지요.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2:3
▲그런데 사람들이, 이 목표를 잊어버리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몰라서
엉뚱한 데서 엉뚱한 일을 하다가,
결국 그게 자기들의 목표라고 믿어버리게 된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부유하고 풍요한 나라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 목표를 이루고, 그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우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폭력과 살인과 약탈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까?
일본이 아시아를 집어삼키려는 욕심으로 우리나라부터 점령한 것 아닙니까?
그 욕심 때문에 침략을 하고, 그 욕심 때문에 전쟁을 하고,
그 욕심 때문에 학살을 하고, 결국 그 욕심 때문에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던 겁니다. 그들이 왜 그랬습니까?
말로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그랬다지만,
좀 더 큰 나라, 좀 더 강한 나라가 되려고 그런 것 아닙니까?
결국 나라들이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향을 잡지 못하니까 전쟁도 생기고,
여러 가지 엉뚱한 일들이 생기는 거란 말입니다.
요즘 북한이 부쩍 핵개발이나 이런 일에 집중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자기들 나름대로 좀 더 강하고 좀 더 부유한 나라가 되려고 하는 일 아닙니까?
정상적인 경제발전으로는 어렵다고 보고,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는 모양인데,
이것도 목표를 잊어버리고 방향을 잘못 잡아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부국강병 해야죠. 그것은 당연히 해야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목표를 두고서, 모든 다른 가치들을 그 목표에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요?
부국강병이라는 필요를 위해서 일해야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말씀이 흘러나오는 시온산이 되는데’ 있어야 합니다.
그게 모든 인간, 민족의 공통된 목표입니다.
목표가 올바를 때, 모든 결과가 올바르게 됩니다.
목표부터가 틀릴 때, 모든 결과는 틀리게 됩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경륜 계획=우리 삶의 목표
(이사야2:2~3절은, 미가서4:1~2절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말일에 이르러는 ①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②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믹4:1~2, 사2:3
‘말일에’라는 말은.. In the last days 인데
요즘 같은 ‘역사의 마지막 때’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일단 그렇게 보기로 하고,
이런 ‘역사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구원 경륜(계획)은
①예루살렘=시온산=여호와의 전=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이 굳게 섭니다.
(이 ‘시온산’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유대주의자들도 있지만)
'시온산'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시온산/여호와의 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는 곳입니다.
아래 구절이 그 사실을 잘 알려줍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믹4:2, 사2:3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곳은
시온산/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그 시온 산/하나님의 성전은.. 말일이 될수록.. 하나님이 굳게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작은 산들 위에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믹4:1, 사2:2
②그 시온산으로 모든 민족들이 몰려든다는 것입니다.
민족들/만방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믹4:1, 사2:2
오늘 우리가 ‘말씀 사역’에 집중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자 되게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오늘날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주님의 교훈이 들려지는 그 곳이
하나님이 말세에 굳게 세우실 시온산이고,
그리고 열방과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입니다.
이것은 ‘말일에 in the last days’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꼭 외적 성장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외적 성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사역이 외적 성장을 하기도 했고, 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민족들이, 주의 말씀과 주의 교훈을 배우기 위해, 시온산으로 몰려드는 비전입니다.
그 사명이, 지금 우리 한민족에게 있습니다.
(부자되는 사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따라 오는 것입니다.)
③그 결과로 세계평화도 얻어질 것입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2:4, 믹4:3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는.. 목표가 무엇인지, 궁극이 어디인지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그곳을 향해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아오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이 물밀 듯이 그리로 모여들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민족들이 모여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믹4:2, 사2:3
목표도 알고, 길도 알았으니, 이제 가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 길을 가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전쟁도, 싸울 일도 없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가 이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목표를 잃어버리고, ‘잘 사는 것’을 목표하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으로 세계를 섬기면’
그제야 이 세상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진정한 평화가 오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평화는, 군사력으로 이뤄지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건 살얼음입니다.
이 세상의 평화는, 주님의 말씀의 교훈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이것이 말일에 주님의 계획/경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주님의 구원 계획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오래 계속 기도하시게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의 계획과 목표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열심으로!
........................................ 더 읽으실 분 ......................................
▲참고로, 다른 성경에는, 세상 종말이 될수록 세상이 점점 악해져 간다고 했는데,
위 성경구절과 정반대로 갈 것이라고 예언되어있지 않습니까?
‘말세는 노아의 때와 같으리니..’ 등등의 구절에요.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면을 보아야 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하나님의 나라도 승리하고, 사탄의 나라도 승리해 갑니다.
둘 다 윈윈win win을 계속해 갈 것입니다.
그러다가 ‘끓는점’에 다다랐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사탄의 나라는 한 순간에/일시에/하루 만에 패망하고 없어질 것입니다. 재림의 날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최후 승리와 재림’ 직전에
‘마귀가 잠시 놓이는 때’=대환란=사탄의 나라가 잠시 승리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전체의 맥락입니다.
▲잘 살고 싶은 본능에 충실했던 남유다 (이사야 2장 본문의 배경)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2장의 배경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당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분단된 채로 여전히 대치상태에 있었고,
강대국 앗시리아가 항상 침략해 올 기세로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당장은 이스라엘과도 전쟁이 없었고,
앗시리아에 대해서도 공물을 바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남유다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운 평화였습니다.
그래도 당장 전쟁이 없으니 나라 경제는 비교적 풍요로웠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번영은 사회적 불의와 종교적 불신앙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어서,
마냥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침략은 없었지만, 사회 내의 폭력과 차별이 심각해졌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니까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풍요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풍요의 상징인 우상들을 섬기는 일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계속 잘 사는 것이 목표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들처럼 되는 게 목표였습니다.
사회는 잘 사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그들의 삶에서 지워버린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이미 더 이상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울 자격도 없었고,
또 그들 자신이 그걸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행복했을까요?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들은 행복했을까요?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처럼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했을까요?
하나님도, 이웃도 잊어버린 채, 오직 잘 사는 일에 모든 걸 거는 사회는 행복할까요?